2025. 1. 10. 04:45ㆍ묵상하는말씀/누가복음서묵상일기
누가복음서 9:32~33 베드로와 그 일행은 잠을 이기지 못해서 졸다가, 깨어나서 예수의 영광을 보고, 또 그와 함께 서 있는 그 두 사람을 보았다. 그 두 사람이 예수에게서 막 떠나가려고 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우리가 여기서 지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가 초막 셋을 지어서, 하나에는 선생님을, 하나에는 모세를, 하나에는 엘리야를 모시겠습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말하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많이 춥습니다. 그래도 생각보다는 견딜만하네요. 아마도 추위에 대해 적응이 되어서 그렇겠죠? 사실 외부의 추위보다 더 춥고 몸을 굳게 하는 것은 내 마음의 추위죠. 마음과 생각의 싸늘한 기운이 우리의 건강도 해칩니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마음만은 지키시면 좋겠습니다. 생각과 마음에 냉기가 흐르게 하지 마세요. 가슴이 따뜻한 사람은 세상을 녹입니다.
이제 환상을 본 사람과 상황이 등장하네요. 베드로와 제자들은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본 것입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제자들이 기도할 때만 보면 잠에 빠졌다는 거죠. 이게 한두 번이 아니죠. 사실 기도를 오래 한다고 좋은 것은 아닙니다. 어디 공부가 오래 앉아 있는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말이죠. 어떤 기도를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도하려고 하면 어떤 기도를 해야 하는지 머리가 하얗게 되죠.
기도는 기술이 아닙니다. 기도는 사랑이에요. 대화는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향한 기도는 내 요구의 장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장이 되는 거죠.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화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고린도전서 5:18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내세우셔서, 우리를 자기와 화해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화해가 되신다는 거죠. 그런데 화해라는 것이 우리에게는 어색합니다. 이게 일방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죄인인 우리를 주님이 용서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좀 거칠게 말하면 주님도 조금 양보하고 나도 조금 양보하는, 그래서 서로의 마음을 조율하여 푸는 것을 우리는 화해라고 하죠. 이는 우리의 일방적인 요구도, 하나님의 일방적인 명령도 아닙니다. 서로가 서로의 마음에 합한 교제로 이루어지는 거죠. 기도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는 주님의 마음을 느끼고 그분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계신지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누군가와 좋은 관계를 맺으려면 그 상대방을 믿는 것처럼 말이죠. 중보기도를 할 때도 그렇습니다. 그 사람의 상황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아픔을 알아야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 제목이 있다고 기도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상황이 얼마나 힘든지, 그 아픔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느껴야 그것이 기도가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제자들이 그런 게 없어요. 예수님께서 수난과 고난을 말씀하셔도 아무 감이 없습니다. 그러니 겟세마네에서 그렇게 눈물과 땀으로 부탁하셔도 그들은 잠을 자는 거죠. 왜냐하면 그게 얼마나 힘들고 아픈지 아무 생각이 없으니까요. 그저 주님은 알아서 다 하시겠지라고 생각하니까요. 그저 주님보다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으니까요.
오늘도 그런 모습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모세와 엘리야를 보고, 예수님의 변모하신 모습을 본 제자들은 그 모습에 매료되죠. 어찌 안 그렇겠습니까? 그곳이 마치 천국처럼 보였을 테니까요. 그래서 그들은 '여기가 좋사오니'하며 이곳에 눌러살자고 요구합니다. 이게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 우리가 잠시 지난 묵상을 돌아보면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지금 보여주시는 영광이 무엇 때문입니까? 변모산에서의 사건이 주는 메시지는 진정 무엇이었나요?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를 목격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단지 그들의 놀라운 인생, 능력 때문입니까?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세계 최강의 나라 후계자가 아닌 작은 이스라엘의 고난을 짊어지는 결단 속에 피어난 결과가 지금 보는 영광의 자리입니다. 엘리야는 로뎀나무 아래서 자신의 인생이 힘들고 비참해서 죽는 것이 더 낫다고 인생을 포기하려 했습니다. 내 편은 아무도 없는 듯, 모든 세상이 다 자신에게서 돌아선 듯한 절망에 주님은 보이지 않는 동역자가 여전히 남아 있음을 말씀하시죠. 그때 엘리야는 죽지 않고 살아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겠다고 선언합니다. 그 결과가 바로 이 영광이에요.
우리가 뿌리는 것은 영광이 아닙니다. 그저 힘들고 어렵고 아픈 현실을 따뜻한 마음으로 매일 하루하루 살아가는 거예요. 그렇게 씨를 뿌리는 우리에게 영광이라는 열매가 주어집니다. 고난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문제를 마다치 마세요. 이 세상을 살면서 당하는 고난과 문제는 나를 영광으로 인도하는 길잡이입니다.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면 부쩍 성장한 나와 마주합니다. 거친 파도 앞에서 여전히 희망을 잃지 않을 때 우리는 주님 주시는 열매를 맛보죠.
삶이 늘 즐겁지는 않습니다. 그게 현실이죠. 그러나 그 힘든 삶을 즐겁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능력입니다. 우리에게 그런 능력이 있을까? 그런 걱정 마세요.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됩니다. 능력은 주님이 채워 주실 거예요. 오늘도 우리는 즐겁게 주님 주신 하루를 시작하면 됩니다.
'묵상하는말씀 > 누가복음서묵상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가복음서묵상일기 207 - "괜찮아. 잘 몰라도 돼" (0) | 2025.01.17 |
---|---|
누가복음서묵상일기 206 - 여러분의 인생은 혼자가 아니에요. (0) | 2025.01.16 |
누가복음서묵상일기 205 - 믿음은 주께서 일하시는 통로입니다. (0) | 2025.01.15 |
누가복음서묵상일기 204 - 몸을 아끼세요. (0) | 2025.01.14 |
누가복음서묵상일기 203 - 오늘도 주님은 나와 함께 하십니다. (0) | 2025.01.13 |
누가복음서묵상일기 201 - 주님과 함께하는 인생은 그 너머에 빛나는 계획이 있습니다. (0) | 2025.01.09 |
누가복음서묵상일기 200 - 좋은 생각과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빛이 납니다. (0) | 2025.01.08 |
누가복음서묵상일기 199 - 우리는 이 땅에 세워진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0) | 2025.01.07 |
누가복음서묵상일기 198 - 우리의 최고 가치는 주님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1) | 2025.01.06 |
누가복음서묵상일기 197 - 사랑이 본질입니다. (1) | 2025.0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