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서묵상일기 201 - 주님과 함께하는 인생은 그 너머에 빛나는 계획이 있습니다.

2025. 1. 9. 04:45묵상하는말씀/누가복음서묵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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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서 9:30   그런데 갑자기 두 사람이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세와 엘리야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 한파라고 하네요. 옷 잘 챙겨 입으시고 꼭 마스크도 하세요. 아시죠? 날씨가 아무리 영하여도 우리의 마음까지 영하로 만들지 못한다는 것을 말이죠. 겨울철 노천탕에 가면 추위가 오히려 좋습니다. 몸은 따스한 온천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죠. 오늘이 그런 날이 될 줄 믿습니다. 내 마음이 따뜻해서 추위가 오히려 기분 좋은 날 말이죠.

 

우리는 지금 변화산에서의 예수께서 기도하시는 장면에 대해 묵상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님과 함께 산에 올랐던 제자들이 목격한 환상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주목되는 점은 이 환상이 혼자가 아닌 제자 세 사람이 다 목격했다는 점입니다. 환상이라는 것이 본래 매우 비밀스럽죠. 그래서 위험하기도 합니다. 내가 본 것이 하나님이 보여주신 환상인지 아니면 착각에 의한 것인지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환상의 부분에 있어서 일정한 원칙을 제시하죠. 그 원칙은 하나님의 환상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한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바울이 유대교 원리주의자일 때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기 위해서 다마스쿠스로 가다가 환상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었죠. 바울과 함께했던 이들은 알지 못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환상이 하나님의 작품이었음을 확인시켜 줍니다. 그 환상을 확인해 줄 다른 사람을 등장시키는 거죠. 바로 아나니아라고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도 하나님은 환상 가운데 나타나셔서 바울이 찾아올 것을 알려주시죠. 그렇게 하나님이 주신 환상을 통한 메시지는 여러 사람을 통해 확증되는 방식으로 증명됩니다. 나 혼자만 아는 식의 환상이 아닌 거죠. 적어도 내가 본 환상을 함께 나눌 사람들이 주위에 생기죠. 그렇게 믿음의 확신을 주시는 방법으로 환상을 사용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다시 제자들이 본 환상으로 돌아가죠. 예수께서 기도 중에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을 본 제자들은 이내 또 다른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는데요. 그것은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와 말씀을 나누는 것을 본 것입니다. 제가 의심이 많은 것일까요? 아님 호기심이 충만한 것일까요? 저는 이 장면에서 유독 엉뚱한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그 질문은, '제자들이 어찌 그들이 모세와 엘리야인줄 알았을까?'라는 거죠. 당시 모세의 사진이나 초상화도 없었을 텐데요. 어찌 그들이 모세와 엘리야인 줄 알았을까요? 

 

이는 그저 우스갯소리고요. 환상이라는 것 자체가 지식을 뛰어넘는 일이기 때문에 그들은 단번에 알아봤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환상 속에서는 오감이 하나님을 향해 있기 때문이죠. 문제는 그들이 누구인가 보다 왜 그들인가입니다. 왜 모세이고, 왜 엘리야인가죠. 

 

아마도 이는 모세와 엘리야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구원역사와 연결된 것이 아닐까 추측이 됩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유대민족에게는 불세출의 인물입니다. 그들은 구원의 역사를 쓴 사람들이죠. 아시다시피 모세는 이집트로부터의 구원을, 엘리야는 폭정의 권력으로부터의 구원을 이루어낸 인물들입니다. 게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연관이 있죠.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모세 신드롬에 의거하여 역사를 서술하기도 했습니다. 헤롯의 유아 학살과 이집트로의 도피가 그렇습니다. 또한 엘리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해 승천을 하죠. 그야말로 예수님의 처음과 끝을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사실 모세는 학자들 가운데 논란이 많은 인물입니다. 그의 역사적 실제성에 대한 의문 때문이죠.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상징성을 담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가 태어나 갈대상자에 싸여 유아학살을 피한 것은 마치 40일간의 홍수 가운데 떠있는 방주와 같은 모습이죠. 실제로 갈대상자와 방주는 같은 의미의 단어를 사용하죠.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난 누우셨던 그 구유와도 연결됩니다. 

 

변화산에서 예수님에 대한 환상은 그분의 구원 시나리오에 대한 메시지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님은 이후 처참한 시간들을 맞이하죠. 제자들 또한 두려움과 낙심에 빠집니다. 즐거웠던 공생애는 끝나고 수난과 처형의 아픔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또한 이로 인해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죠. 그런데 오늘 변화산에서 주님이 보여주신 것은 그 너머의 영광과 찬란한 빛이었어요. 눈앞에는 어둠이 존재하지만 그러나 그 너머에는 빛난 영광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겁니다.

 

시간이 지체되었지만 나중에라도 제자들이 다시 모이고, 초대교회의 역사를 쓸 수 있었던 것은 이 변화산에서의 환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가 수많은 어려움과 두려운 상황을 통과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환상의 영향인지도 몰라요. 비록 지금은 미미하지만 나중에는 창대하리라는 말처럼, 지금 눈앞에는 당장 날카로운 가시로 가득하지만 그곳에 반드시 꽃이 피고 향기가 나리라는 것을 아는 이들은 가시마저 아름답게 보죠.

 

우리의 삶이 지금 위험한 방주여행 같습니다.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 두려움 가운데 있죠. 그런데 그렇게 앞이 안 보이는 방주는 새로운 역사를 쓰는 시작이 됩니다. 헤롯의 칼에 쫓기던 삶은 찬란한 인류의 구원자가 되고, 아합과 이세벨의 억압 속에 쫓기던 삶은 하나님의 돌보심과 이끄심의 능력이 임하는 인생이 되죠. 우리도 그렇습니다. 앞이 안 보여도 괜찮습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인생은 그 너머에 빛나는 계획이 있으니까요. 지금 조금 아파도 괜찮습니다. 주님을 믿고 기대를 놓치지 않는 우리는, 나의 등 뒤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을 경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곁에 아무도 없는 것 같아도 감사와 사랑을 품고 사는 자에게는 보이지 않는 동역자 칠천 명이 있습니다. 그러니 염려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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