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7. 16. 04:45ㆍ묵상하는말씀/누가복음서묵상일기
누가복음 3:21~22 백성이 모두 세례를 받았다. 예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시는데,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예수 위에 내려오셨다. 그리고 하늘에서 이런 소리가 울려왔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나는 너를 좋아한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도 복된 날입니다. 그리스도의 은총이 우리 공동체 가족 모든 영혼마다 햇살처럼 빛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누가는 세례 요한의 사역에 대해 설명을 마치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미 누가는 예수님의 성장과정을 누구보다 자세하게 기록한 바 있죠. 그러나 오늘 기록은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는 그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어쩌면 사역에 대한 첫 기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첫 기록이 난해합니다. 얼핏 보기에는 자연스럽지만 깊이 보면 해석이 필요한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내용은 어렵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도 일반 무리들과 마찬가지로 세례 요한 앞에 나와 세례를 받는 장면이 연출되죠. 이를 두고 겸손의 주님을 떠올리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단순한 제례 예식이 아니라 세례라는 점이 문제입니다. 아시다시피 세례는 회개가 필요한 자들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회개의 세례를 받으신다는 것이 어색해 보이죠. 그렇다면 이 세례 예식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사실 누가는 예수님께서 세례 받는 장면에 대해 그다지 자세한 말을 하지 않습니다. 다른 기록에서의 디테일을 고려하면 좀 낯설기도 합니다. 이는 아마도 세례의 장면을 왕의 대관식으로 인식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21절의 말씀보다 22절에 무게를 더 둔 까닭이죠. 이 부분은 내일 다루기로 하고요. 오늘은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님께 우리는 집중하려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가의 본문보다는 이를 더 자세히 기록한 마태의 기록을 차용해 와야 할 것 같아요. 이 세례를 받으시는 장면에서 마태는 당황하는 세례 요한의 모습을 그리고 있죠. 그도 그럴 것이 예수님은 세례가 필요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세례의 주관을 거부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미 자신의 본분을 너무도 잘 아는 요한을 우리는 목격했기 때문이죠. 그때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죠.
마태복음 3:15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지금은 그렇게 하도록 하십시오. 이렇게 하여, 우리가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옳습니다." 그제서야 요한이 허락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의를 위하여 자신의 것을 내려놓는 것으로 말이죠.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자신의 보좌를 내려놓고, 모든 사랑하는 인류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주는 것이 그분의 사역 출발점이었죠.
저는 고등학교 시절 한 선생님으로부터 큰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나름 책을 좋아했던 저는 어느 날 그 선생님께서 요즘 읽고 있는 책에 대해 말해달라는 주문을 받고 그분 앞에서 신나게 책 내용을 설명했던 적이 있었죠. 분위기를 보니 선생님께서 꽤나 흥미로워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짐작건대 그분은 그 책에 대해 잘 모르시는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이야기를 너무 진지하게 경청해 주셨으니까요. 가끔 놀라는 표정과 함께 고개도 끄덕여 주셨죠. 그래서일까요? 저는 더욱 신나서 떠들었던 기억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그 선생님 댁에 놀러 간 적이 있는데 그분의 서재에는 책들로 가득했습니다. 교과 과목이 영어였는데 서재에는 다양한 책들, 특별히 철학 서적이 가득했습니다. 둘러보다 전에 제가 말씀드린 책도 있더라고요. 꺼내보니 선생님의 읽은 흔적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오래전에 말이죠. 그러니까 그분은 자신도 다 아는 내용을 마치 처음 듣는 것처럼 저의 말을 들어주셨던 거죠. 그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몰라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지루한 이야기, 아마 잘못된 해석들도 있었겠죠? 그런 나의 말을 오로지 들어주셨구나? 싶더라고요. 이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이때의 기억이 고스란히 떠올랐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이해해 주시고, 기다려주시고, 참아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그 선생님을 통해 어렴풋이 느꼈으니까요.
누군가를 위하여 낮아지는 것,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하여 참아주는 것, 덕을 세우기 위해서 기다려주는 일,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를 향해 처음 가지신 마음임을 오늘 깨닫습니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주님의 질서를 위해 자존심을 좀 내려놓는 일, 함께 걷기 위해 나의 힘을 조금 빼는 일, 공동체를 위해 조금 기다려 줄줄 아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사역의 첫걸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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