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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미가서묵상

미가서묵상일기 19 - 자족이 평화입니다.

미가서 4:4   사람마다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앉아서, 평화롭게 살 것이다. 사람마다 아무런 위협을 받지 않으면서 살 것이다. 이것은 만군의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이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은혜와 도우심 아래서 평안과 감사가 넘쳐나는 좋은 하루 되시길 빕니다.

 

선지자 미가는 그날이 오면 모두에게 평화가 임할 것을 선포했습니다. 서로 싸우던 칼을, 밭을 갈아 생기가 나는 땅을 일구는 쟁기로 바꾸고, 사람을 찌르던 창을, 열매를 수확하는 낫으로 바꾼다고 했습니다. 이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내 안에 여전히 품고 있는 시기와 질투, 다툼과 경쟁, 상처에 대한 날카로운 칼을 부러뜨리고, 좋은 생각과 기대로 채워야 우리 안에 평화가 찾아옵니다. 누군가를 찌르고 쓰러뜨려야 속이 시원한 독기 어린 말들을 축복과 감사로 바꿔야 내 마음에 평안을 얻어요. 그리고 선지자 미가는 4절에서 그런 평화의 상황을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사람마다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앉아서 평화롭게 살 것이다'

 

이는 한 폭의 그림 같습니다. 마치 드넓은 잔디밭에 새들이 지저귀고 산들바람이 부는 가운데 아름드리나무 그늘 아래 옹기종기 모여 두런두런 이야기 꽃을 피우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여기 포도나무나 무화과나무를 등장시킨 것은 아마도 각기 풍요와 평화의 상징으로의 의미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먹을 것 걱정 없고, 관계에 문제없는 생각만 해도 좋은 모습이죠.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저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평화나 위협, 혹은 약속과 같은 단어들이 아니었습니다. 유독 눈에 들어오는 단어가 있었어요. 그것은 '자기'라는 단어였습니다. 원어에 보면 두 나무 다 소유격 형태로 쓰여있죠. 이 구절이 눈에 띈 것은 우리가 평화를 얻기 위해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마음이 바로 그 단어에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바로 나의 포도나무, 나의 무화과나무에 말이죠. 누구의 포도나무가 아닙니다. 누구의 무화과도 아니죠. 자신에게 주어진 먹거리, 자신이 누리는 풍요, 나에게 주어진 사명과 역할, 그리고 받은 상급에 이르기까지 자기 것에 만족할 줄 아는 은혜가 있어야 우리는 평화를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투고 싸우고 모진 말로 찌르고 마음에 불편함이 있는 이유는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이는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나에게는 주지 않으셨다는 불평이 자리합니다. 믿음의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죠. 남에 비해 부족하고, 남이 누리는 것을 못 누린다고 느끼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불만과 부정이 쌓이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어떤 처지에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습니다. 디모데전서에서는, '자족할 줄 아는 사람은 믿음으로 큰 이익을 본다'고도했죠. 이것이 그를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었고, 또 어떤 일에도 낙심치 않는 굳건한 믿음의 사람으로 키웠죠. 뿐만 아니라 결국 그를 의의 면류관에 이르도록 인도했습니다.

 

자족이 평화입니다. 주신 것에 감사할 줄 아는 것이 평화죠. 아니, 내가 자족할 때 나의 분량은 늘어납니다.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큰 것을 받아요. 주신 작은 사명에 최선을 다하는 이에게 더 큰 사명이 주어지고요. 내게 주신 은혜를 기뻐할 줄 아는 사람에게 더 많은 은혜를 부어 주십니다. 그렇게 자족은 은혜의 샘물이고 평화의 기초입니다. 오늘도 나의 인생에서는 작은 하루이지만, 기뻐하고 감사할 줄 아는 여러분에게 주님은 더욱 귀한 날들을 예비하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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