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15 - 새로운 부활의 하루를 시작합니다.

2022. 6. 29. 07:01묵상하는말씀/고린도전서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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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5:5~8   게바에게 나타나시고 다음에 열두 제자에게 나타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후에 그리스도께서는 한 번에 오백 명이 넘는 형제자매들에게 나타나셨는데, 그 가운데 더러는 세상을 떠났지만, 대다수는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다음에 야고보에게 나타나시고, 그 다음에 모든 사도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 맨 나중에 달이 차지 못하여 난 자와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도 충만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축복의 비밀들을 찾고 발견하고 감동하는 귀한 하루되시길 빕니다.

 

부활의 역사성을 강조하는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부활을 직접 목격했던 이들을 나열하죠. 게바란 베드로를 의미하는 아람어죠. 예수님께서 직접 베드로를 그렇게 부르신 이름입니다. 반석, 바위라는 뜻이죠. 아마도 베드로를 제일 먼저 언급한 것은 그가 제자들 가운데 수제자였던 이유이기도 하겠지만 사실 부활의 흔적을 가장 먼저 본 사람 중 하나이기도 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열두 제자가 등장합니다. 이 열두 제자라는 표현이 조금 의아하시죠? 이미 가룟유다는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열두 제자라고 말한 것은 아마도 주님의 제자들을 표현하는 대명사로 썼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의 수가 11명이든, 12명이든 그보다, 주님의 제자들을 부르는 통칭으로서의 열두 제자라는 표현을 쓴 것이죠. 

 

다음으로는 500명이 넘는 이들에게 나타나셨다는 증언인데요. 이는 어떤 근거에서 나온 말인지 정확히 잘 모르겠습니다. 성경에서 이 기록을 뒷바침할 만한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예수님께서 40여일 동안 여러 차례 나타나셔서 여러 증거로 자신의 부활을 증명하셨다는 사도행전 1장의 말씀을 조금 더 구체화 한 것이 아닌가 추정합니다. 그들 가운데 더러는 죽고, 대다수는 살았다는 증거는 아마도 바울이 그들의 증언들을 직접 들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능케 하죠. 그리고 이어 나온 야고보는 아마도 제자 야고보가 아닌 주님의 형제 야고보인 것 같아요. 이미 제자들은 열두 제자라는 통칭에 포함되어 있는데 굳이 따로 거명한 것으로 보면 그렇습니다. 그리고 나온 모든 사도는 열두 제자들을 제외한 오늘날 사도의 역할을 하는 주요 인물들을 말하는 것이겠죠. 그중에 바울도 포함되는 것으로 바울은 기록하죠.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을 장황하리만큼 기록한 이유는 이미 말씀드린바와 같이 부활의 역사성을 증거하고자 하는 바울의 의도가 다분히 담겨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아요. 이렇게 증거가 많다고 말이죠. 한편 그 부활이 환상이라고 여기는 이들을 향해 구체적인 반증을 제시한 것이기도 합니다. 

 

오늘날에도 부활의 역사성은 언제나 논쟁거리입니다. 현대적 과학이나 상식으로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의심받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에 대한 증명을 할 지식이나 지혜는 없어요. 다만 믿을 뿐이죠. 그분의 부활이 제게 믿어지는 것 자체를 저는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감사해요. 주님을 창조주로 믿기에 저는 부활 그 이상도 하실 수 있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은 증명의 차원이 아니죠. 그래서 믿음을 가지고 논쟁하거나 증명하려고 노력할 생각은 없습니다. 오히려 그 부활의 역사성만큼이나 더 중요한 것이 우리 앞에 있기 때문이죠. 어쩌면 우리에게는 이것이 더 중요한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우리에게 맡겨진 일이기 때문이죠. 그것은 바로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울이 장황하리만큼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을 나열한 것은 그분의 부활의 역사성을 증명하고자 한 것이겠죠. 그 당시 그 증명이 고린도 교회에 영향을 주는 다른 교리들에 대한 반증이었음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있는 자리에서 읽는 이 본문에서의 바울의 증거는 부활의 역사성보다는 부활의 증인들에 대해 더 초점이 맞춰져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마치 그리스도의 부활은 바로 나를 통해서 완성된다고 말이죠.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는 일은 바로 오늘, 내가 어두운 마음을 밝은 마음으로, 짓눌린 시간을 새로운 시간으로, 막힌 담을 돌파하는 용기로 바꾸는 데서 실재한다고 말입니다. 부활의 시작이었던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부활의 증인된 우리가 부활을 완성시키는 거죠. 

 

오늘도 우리는 부활의 증인으로 삽니다. 새로운 부활의 하루를 시작합니다. 나에게 새롭게 주어진 기회를 살아요. 어제의 내가 아닌 오늘의 나로, 어제의 시간이 아닌 새롭게 선물로 받은 시간을 삽니다. 그것이 부활의 시간이죠. 이미 정해진 시간이 아니라 새롭게 창조하는 시간으로 사는 삶이 부활의 삶입니다. 죽음에서 일어나듯 잠에서 깨고, 어둠에서 빛으로 나오듯 어제의 감정에서 희망의 감정으로 나오는 하루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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