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묵상일기 293 - 옳은 말을 하려면 일단 좋은 감정을 가져야 합니다.
2026. 10. 1. 05:00ㆍ묵상하는말씀/사도행전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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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3:3~5 그러자 바울이 그에게 말하였다. "회칠한 벽이여, 하나님께서 당신을 치실 것이오. 당신이 율법대로 나를 재판한다고 거기에 앉아 있으면서, 도리어 율법을 거슬러서, 나를 치라고 명령하시오?"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 말하였다. "그대가 하나님의 대제사장을 모욕하오?" 바울이 말하였다. "동포 여러분, 나는 그가 대제사장인 줄 몰랐소. 성경에 기록하기를 '너의 백성의 지도자를 욕하지 말아라' 하였소."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부터 10월입니다. 한 해의 마지막 분기가 시작되는 첫날이죠. 달력을 한 장 넘기는 이 아침, 지나온 아홉 달의 수고를 먼저 격려해 드리고 싶습니다. 잘 버텨 오셨습니다. 남은 석 달도 서두르지 말고 한 걸음씩 걸어가시면 됩니다. 새 달의 첫 문을 여는 모든 분들의 몸과 마음, 가정과 일터 위에 하나님의 평안이 가득하기를 축복합니다.
어제 저는 바울이 지금까지 '바른 양심'으로 살아왔다고 말한 것을 의도된 연설이라고 묵상한 바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 하나님에 대한 열심인 줄 알고 기독교인들을 무참히 짓밟았던 자신의 오류를 답습하고 있는 유대인들을 향한 날선 경고이자 안타까움이 담긴 조언이라고 말이죠. 그런 해석이 가능하도록 이끈 것은 오늘 본문 때문입니다.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에 대한 폭력을 주문하자 바울은 대뜸 “회칠한 벽이여, 하나님이 당신을 치실 것이오.”이라고 외치죠. 회칠한 벽은, 금이 가고 깨진 벽을 겉만 하얗게 칠해 벽을 말합니다. 겉과 속이 다르다는 뜻이죠. 예수님도 위선적인 종교지도자들을 '회칠한 무덤'에 빗대신 적이 있습니다. 율법대로 재판한다며 앉은 사람이 율법을 어기고 폭력을 명령하는 그 모순과 위선을 정면으로 찌른 것입니다. 곁에 있던 사람들이 대제사장을 모욕하느냐고 따질 만큼 욕설에 가까운 강한 말이었죠. 이 또한 바울의 의도된 어법으로 보여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더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5절에 나옵니다. 유대 공의회 자리에서, 그것도 대제사장에게 욕을 했으니 누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자 바울이 해명합니다. 그런데 그 해명이 뜻밖이에요.
"나는 그가 대제사장인 줄 몰랐소."
솔직히 저는 이 대목에서 웃음이 났습니다. 바울은 가말리엘 문하에서 배운 바리새인입니다. 한때 대제사장의 공문을 들고 다마스쿠스로 향하던 사람이죠. 아무리 오랜 시간 예루살렘을 떠나 있었다고 해도 그 자리에 누가 있는지, 공의회의 상석에 누가 앉는지쯤은 눈을 감고도 압니다. 그런 그가 대제사장이 누구인지 몰랐다니요. 바울의 시력이 나빴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 역시 의도된 말이라고 봅니다. 거짓말이 아니라 계산된 한 걸음이었다는 거죠.
여기에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바울이 몰랐다고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죠. 이미 바울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할 말을 다 했습니다. 그들의 모순을 지적하고 마음을 긁는데 성공했죠.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길을 알릴 차례입니다. 그래서 바로 '몰랐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대제사장에게 욕한 부분에 대해 사과하려는 태도를 취한 것이죠. 이어 출애굽기 22장을 인용하며 "너의 백성의 지도자를 욕하지 말아라"는 율법 앞에 자신을 세웁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이 율법을 거스르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잘못을 알았다면 인정하고 돌아서면 된다는 것입니다. 모순을 지적하는 일과 돌이킴의 본을 보이는 일을 한자리에서 해낸 것이죠.
어제와 오늘 본문을 통해 저는 바울이 매우 지적이고 유능한 달변가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짧은 연설을 통해서 청중을 휘어잡고 이끌어가는 모습에서 그의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었죠. 그런데 제 마음에 남은 것은 말의 기술이 아니라 질문이었습니다.
'나는 말씀으로 남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내 말과 태도도 그 말씀 앞에 세우고 있는가.'
상대가 먼저 잘못했다는 사실이 내 모든 반응을 정당화하지는 않습니다. 부당함에 항의할 권리는 있어도, 상대의 인격을 무너뜨릴 권리까지 생기는 것도 않습니다.
일상에서 이 경계는 쉽게 무너집니다. 아이가 약속을 어겼을 때 "왜 약속을 안 지켰니?"와 "넌 늘 그 모양이지"는 전혀 다른 말입니다. 동료의 보고서에 실수가 있을 때 "이 숫자를 다시 확인해 주세요"와 "이것도 제대로 못 해요?"도 다릅니다. 앞의 말은 문제를 겨냥합니다. 뒤의 말은 사람을 겨냥하죠. 문제를 지적하는 말은 고칠 길을 열어 줍니다. 반면 사람을 깎아내리는 말은 마음의 문을 닫게 하죠.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라'고 했습니다. 말은 진리인데 마음에 사랑이 없으면, 그 진리는 상대에게 닿지 않습니다. 이어서 이렇게 말하죠.
'화를 내더라도, 죄를 짓는 데까지 이르지 않도록 하십시오.'
불의 앞에서 화가 나는 것은 건강한 반응입니다. 문제는 분노가 말투가 되고 태도가 될 때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비슷한 통찰을 남겼습니다. 화를 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땅한 사람에게 마땅한 정도로, 마땅한 때에 마땅한 방식으로 화를 내기는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옳은 말을 해야 하는 순간은 대개 마음이 상한 순간입니다. 바로 이것이 함정입니다. 그러니 말을 꺼내기 전에 감정부터 돌봐야 합니다. 신앙의 품격은 내가 비판하는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 존엄한 존재임을 잊지 않는 데 있습니다. 잘못에는 책임을 묻되, 그 사람을 조롱하는 데서 만족을 얻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꼭 해야 할 쓴소리가 있다면 두 가지를 해 보십시오. 먼저 말하기 전에 숨을 한 번 고르십시오. 그리고 문장의 주어가 '너는'인지 '이 일은'인지 살펴보십시오. 과녁을 사람에서 문제로 옮기는 단어 하나가 말의 온도를 바꿉니다.
옳음을 지키려면, 그 옳음을 전하는 말과 태도에서도 사람의 존엄을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옳은 말을 하려면 먼저 좋은 감정을 가져야 합니다. 정말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좋은 기분으로 말을 해야 합니다. 진심을 전하고 싶다면 기쁜 마음으로 전해야 합니다.
10월의 첫날, 우리의 입술에 진리와 사랑이 함께 머물러 가정과 일터를 살리는 말이 흘러나오는 하루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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