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묵상일기 285 - 눈을 떠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2026. 9. 18. 05:00묵상하는말씀/사도행전묵상

반응형

사도행전 22:11   나는 그 빛의 광채 때문에 눈이 멀어서, 함께 가던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다마스쿠스로 갔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제법 선선한 가을바람과 높고 맑아진 하늘을 보며, 우리의 마음과 시선도 이 가을 하늘처럼 맑고 깊어지기를 소망해 봅니다. 오늘 하루, 내 눈앞에 놓인 얽힌 문제들과 복잡한 관계들 속에서 섣부른 판단을 내려놓고, 주님이 주시는 새롭고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복된 날이 되시기를 간절히 응원합니다.

다마스쿠스로 가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바울은 땅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그를 둘러쌌던 그 강렬한 빛의 광채 때문에 바울은 그만 눈이 멀고 맙니다. 똑같은 사건을 기록한 사도행전 9장에서는 이 대목을, '눈을 떴으나,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고 묘사하죠. 이것은 단순히 바울이 물리적인 시력을 잃었다는 사실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눈을 뜨고 있다는 것과 실제로 제대로 보고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현상을 너무 쉽게 사실 전체라고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굳은 표정을 보고 "저 사람은 나를 싫어해"라고 단정하거나, 한 번의 뼈아픈 실패를 겪고 "나는 안 되는 사람이야"라고 쉽게 좌절합니다. 누군가의 단편적인 행동 하나를 보고 "저 사람은 원래 저런 사람이야"라고 평가해 버리기도 하죠. 하지만 우리가 본 것은 사실이 아니라, 내가 자의적으로 해석한 장면 하나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보는 것은 현실 그 자체라기보다, 내가 가진 얄팍한 경험과 깊은 상처, 그리고 내 안의 기대를 통과한 일그러진 현실일 때가 훨씬 많죠.

우리는 눈을 통해 세상을 투명하게 보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이라는 필터를 통해 세상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곤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경험과 교육, 감정과 가치관을 통해 세상을 해석하죠. 똑같은 상황을 보고도 사람마다 전혀 다르게 반응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누군가의 침묵을 어떤 사람은 차가운 무관심으로 보지만, 다른 사람은 신중한 배려라고 봅니다. 내게 다가온 뼈아픈 실패를 어떤 사람은 인생의 끝이라고 단정하지만, 어떤 사람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전환점으로 바라보죠. 그러므로 우리 신앙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단순히 "내가 무엇을 보았는가"가 아니라, "나는 지금 어떤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가"입니다.

다마스쿠스로 향하던 바울은 자신이 누구보다 옳고 틀린 것을 분명히 안다고 자부했습니다. 예수의 길을 따르는 사람들은 철저히 잘못되었고, 자신만이 하나님의 율법과 뜻을 완벽하게 지키고 있다고 확신했죠. 그런데 그 굳은 확신에 차 있던 바울이 다마스쿠스 길 위에서 눈을 뜨고도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맹인이 됩니다. 이 역설적인 장면은 우리에게 깊은 영적 울림을 줍니다. 바울은 시력을 잃고 보지 못하게 된 그 캄캄한 순간에 비로소, 자신이 그동안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었다는 뼈아픈 진실을 배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진정으로 깊은 안목은, 남들보다 더 많이 보는 능력에서 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다 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능력에서 시작됩니다. 심리학에는 메타인지(Metacognition)라는 개념이 있죠. 이것은 쉽게 말해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정직하게 아는 인지 능력을 말합니다. 성숙한 사람은 항상 모든 정답을 쥐고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을 수 있다", "나의 완고한 판단이 틀릴 수도 있다", "저 사람에게는 내가 모르는 깊은 사정이 있을 것이다"라고 스스로 질문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를 철학적인 용어로 '인식론적 겸손'이라고 부를 수 있겠죠. 과거 고린도전서 말씀을 묵상하며,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그저 나의 좁은 예측일 뿐이라고 나누었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나의 섣부른 판단이 전부가 아님을 인정하고, 함부로 우기거나 이웃을 비난하며 살지 않는 것이 곧, 이해와 용서의 시작입니다.

참된 믿음에는 바로 이러한 인식의 겸손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내가 본 것이 결코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겸손이죠. 왜냐하면 유한한 우리는 무한하신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섭리를 결코 다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깊이 보려는 사람은 결코 쉽게 단정하지 않습니다. 곁에 있는 누군가 실수했을 때 "저 사람은 원래 저래"라고 차갑게 밀어내지 않습니다. 어떤 일이 내 뜻대로 풀리지 않았을 때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고 성급하게 절망의 결론을 내리지 않죠. 단지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초라한 모습만으로 그 사람의 찬란한 미래를 함부로 결정짓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당장 눈에 보이는 것 너머에, 고요히 일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손길이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얕은 시선은 늘 조급하게 판단하지만, 깊은 시선은 숨을 고르고 한 번 더 다정하게 바라봅니다. 이러한 깊은 눈을 갖기 위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마음을 여는 열린 태도입니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판단 자체를 포기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내가 내리는 판단 앞에서 스스로 겸손해지라는 의미죠. 성숙한 믿음은 아무것도 확신하지 못하고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굳건히 확신하면서도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작은 여백을 하나님 앞에 남겨두는 것입니다. 내 생각의 여백이 있어야만 비로소 성령의 인도하심을 온전히 따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만 나의 굳은 고집을 꺾고 부드러운 주님의 음성에 귀를 열 수 있기 때문이죠.

우리는 보통 기도할 때, 내 주변의 답답한 상황을 당장 바꿔 달라고 떼를 씁니다.

"주님, 제발 저 사람 좀 고쳐주세요"
"내 앞을 가로막는 이 지긋지긋한 문제를 없애주세요"
"나를 둘러싼 이 척박한 환경을 제발 바꿔주세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때로 우리에게 더 절실하고 중요한 기도는 이것일지 모릅니다.

"주님, 제가 이 꽉 막힌 상황을 전혀 다르게 볼 수 있도록 새로운 눈을 열어주십시오."

왜냐하면 상황이 단 하나도 바뀌지 않았더라도,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눈이 달라지면 내 삶 전체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깊이 보는 사람은 지식을 많이 아는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내가 다 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쉽게 판단하지 않고, 한 번 더 바라보고, 한 번 더 귀 기울여 듣고, 주님께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오늘 하루, 일터에서나 가정에서 섣부른 판단과 불평의 말이 튀어나오려 할 때, 잠시 멈추고 내 시선을 주님께 조율해 보십시오. 내가 보지 못했던 타인의 눈물과 주님의 숨은 은혜를 새롭게 발견하는, 눈부시게 밝고 아름다운 하루가 되시기를 깊이 축복합니다.

https://youtu.be/QqydnfOlDnU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