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묵상일기 284 - 우리는 같은 길을 다르게 걷는 사람들입니다.
2026. 9. 17. 05:00ㆍ묵상하는말씀/사도행전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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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2:9~10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은, 그 빛은 보았으나, 내게 말씀하시는 분의 음성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그 때에 내가 '주님, 어떻게 하라 하십니까?' 하고 말하였더니,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서, 다마스쿠스로 가거라. 거기에는 네가 해야 할 모든 일을 누가 말해 줄 것이다.'
좋은 아침입니다. 어제는 따스한 햇살이 너무 좋더라고요. 가을의 산들 바람이 마음까지 여유롭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 오늘은 어떨까요? 어제와 다를 바 없는 똑같은 출근길, 매일 반복되는 익숙한 일상처럼 보이지만, 오늘 하루 우리의 걸음 속에 담긴 목적과 마음만은 어제와 완전히 다른 새롭고 은혜로운 하루가 되기를 기원하며 힘차게 응원합니다.
바울은 다마스쿠스로 가던 도중 하늘로부터 쏟아지는 강력한 빛에 둘러싸였습니다. 그 빛은 곁에서 함께 길을 걷던 일행들도 모두 볼 수 있을 만큼 강렬했죠. 그러나 바울의 귓가에 울려 퍼진 주님의 음성은 오직 바울 한 사람에게만 들렸습니다. 철저히 개인적이고 내밀한 영적 체험의 순간이었던 거죠. 바울은 놀라고 당황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묻습니다.
"주님, 어떻게 하라 하십니까?"
저는 이 짧은 물음이 진정한 영접의 정석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무엇을 하면 될까요?"라는 질문은, 납득하기 힘든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주님의 주권을 온전히 인정하고 나에게 주어질 새로운 사명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겸손한 대답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질문에 이어진 예수님의 대답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서 다마스쿠스로 가거라. 네가 해야 할 모든 일을 거기서 누가 일러줄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조금 이상하지 않으신가요? 지금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잡아 가두기 위해 다마스쿠스로 향하던 참이었습니다. 만약 그 끔찍한 계획을 막으시려 했다면, 당연히 발길을 돌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라거나 전혀 다른 낯선 곳으로 도망치라고 명령하셔야 상식에 맞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예수님은 바울에게 원래 가던 그 길, 다마스쿠스로 계속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이 대목이 우리의 신앙과 영성에 대해 매우 중요하고 깊은 통찰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보통 '하나님을 만나 삶이 변화되었다'고 하면 무언가 거창한 것들을 떠올립니다. 살던 환경이 완전히 바뀌고, 직장을 그만두고, 만나는 사람이 달라지고, 내 앞의 골치 아픈 문제들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극적인 반전을 기대하죠. 신앙이 깊어지면 세속적인 직업을 훌훌 버리고 선교사가 되거나, 조용한 수도원으로 들어가야 더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물론 어떤 사람에게는 실제로 장소와 직업이 완전히 바뀌는 특별한 부르심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소의 변화가 곧 영적인 변화를 보장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외부와 단절된 수도원에 들어가서도 여전히 자기중심적인 욕망과 아집에 사로잡혀 살 수 있습니다. 반대로, 복잡하고 치열한 평범한 직장에서 매일 서류와 씨름하면서도 하나님과 이웃을 깊이 사랑하며 묵묵히 살아갈 수도 있죠. 거룩함이라는 것은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느냐'의 장소 문제가 아니라, '그곳에서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가느냐'의 태도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가 걷는 겉보기의 길을 바꾸지 않으십니다. 대신 그 길을 걷는 '우리 자신'을 근본적으로 바꾸십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어제와 똑같이 다마스쿠스로 걸어갑니다. 하지만 핍박자에서 복음의 전달자로 완전히 다른 목적과 마음을 품고 걷게 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같은 회사로 출근합니다. 저녁이면 같은 집으로 돌아가 같은 가족을 만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내면은 완전히 다릅니다. 예전에는 오직 나의 성공과 남들의 인정만을 위해 죽어라 일했다면, 이제는 정직하게 땀 흘리며 내가 맡은 일을 통해 이 세상에 작은 선을 보태기 위해 일합니다. 예전에는 내 기준과 기대에 가족들을 억지로 맞추려 하며 화를 냈다면, 이제는 그 사람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존중하고 긍휼히 여기며 사랑하기 위해 살아갑니다. 인정받고 직분을 얻기 위해 열심히 봉사했던 과거를 내려놓고, 이제는 이름 없이 누군가의 지친 영혼을 살리기 위해 조용히 교회를 섬깁니다. 겉모습과 환경은 그대로인데, 내 삶의 이유와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송두리째 달라진 것입니다.
영성이란 고단한 일상을 도피하여 특별하고 거룩해 보이는 곳으로 떠나는 능력이 아닙니다. 영성이란 다람쥐 쳇바퀴 같은 평범한 일상 한가운데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발견하고 묵묵히 살아내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을 만났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당장 직업을 바꿔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두가 짐을 싸서 오지로 떠나 선교사가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는 내일 아침에도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만원 버스나 지하철에 몸을 싣고 똑같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일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길을 걷는 이유와 방향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무언가를 얻어내고 쟁취할 것인가만 고민하던 사람이, 이제는 내가 가진 무엇을 나눌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남들에게 잘난 척 인정받으려던 사람이, 조용히 주변의 아픈 이들을 살피기 시작합니다. 내 고집과 내 뜻만 이루려던 사람이, 멈추어 서서 하나님의 뜻을 묻기 시작합니다. 길은 그대로인데, 걷는 방식과 목적이 완전히 달라진 것입니다. 영적인 변화는 반드시 다른 낯선 길로 뛰어드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같은 길을, 전혀 다른 사랑의 마음과 은혜의 목적을 안고 걷기 시작하는 것, 그것이 가장 위대한 기적입니다.
오늘 하루, 새로운 곳으로 떠나야만 변화가 시작된다는 생각을 잠시 내려놓으시면 좋겠습니다. 대신 오늘 만나는 사람 한 명에게, 오늘 하는 일 하나에, 조금 다른 마음을 담아 보시기 바랍니다. 출근길에 마주치는 이에게 먼저 눈을 맞추고 인사를 건네거나, 늘 하던 업무를 인정보다 섬김의 마음으로 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같은 길이지만 오늘은 조금 다른 걸음으로 걸어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 걸음 하나하나에 주님이 함께하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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