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서묵상일기 181 -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은 축복입니다.

2024. 12. 12. 04:45묵상하는말씀/누가복음서묵상일기

반응형

누가복음서 8:34~37a   돼지를 치던 사람들이 이 일을 보고, 도망가서 읍내와 촌에 알렸다. 그래서 사람들이 일어난 그 일을 보러 나왔다. 그들은 예수께로 와서, 귀신들이 나가버린 그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이 들어서 예수의 발 앞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였다. 처음부터 지켜본 사람들이, 귀신 들렸던 사람이 어떻게 해서 낫게 되었는가를 그들에게 알려 주었다. 그러자 거라사 주위의 고을 주민들은 모두 예수께, 자기들에게서 떠나 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들이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좋은 아침입니다. 우리는 회개와 평화의 대림절 주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는 이 모든 혼란이 일개의 사람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정의나 대의보다 이익과 욕심에 차 행동했던 바로 나 자신 때문임을 고백한 바 있죠. 이로 인해 경제는 한없이 추락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 국가의 채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공동체 가족들 마음에는 평화가 흐르길 기도합니다. 잘못이 드러나고 혼란이 가중되는 것은 다른 말로 새로운 질서가 세워지고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입니다. 괴로움과 슬픔이 있다는 것은 이제 그 너머에 다가올 기쁨과 평안이 가까워졌다는 말이기도 하죠. 그 기대와 함께 오늘도 최선을 다하는 우리였으면 좋겠습니다.

 

'한 사람'에게 들어있던 귀신들이 돼지 떼어 들어가 몰살을 당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 돼지를 치던 사람들이 놀라서 사람들에게 알렸죠. 그 말을 듣고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귀신 들렸던 거라사의 광인이 앉아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옷을 입은 채, 제정신으로 말이죠. 이에 대해 처음부터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던 사람들이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죠. 그 이야기를 다 들은 사람들이 두려워했다는 거예요. 이 두려움은 경외심의 두려움이 아닙니다. 놀라운 이적을 보고 그에 대해 놀라워하며 위대한 주님 앞에 무릎 꿇는 두려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두려움이 어떤 두려움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그들의 태도를 보면 됩니다. 그들은 예수께 '자기들에게서 떠나 달라'고 간청을 하죠. 왜요? 왜 자신들을 떠나 달라고 했을까요? 

 

사람들은 거라사의 광인 그 '한 사람'이 제정신이 된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비정상이 정상이 되는 것에는 관심이 없어요. 더 나아가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로지 나의 이익이 얼마나 지켜지는지, 나에게 얼마나 더 큰 유익이 되는지에만 급급합니다. 생명이 돌아오고 진리가 바로 서는 것보다 내 손해가 더 중요하죠. 어쩌면 그들은 예수님으로 인해 자신들에게 돌아올 손해를 먼저 따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의 두려움은 내게서 이익이 사라지지는 않을까, 더 큰 손해를 보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의 발로였던 셈입니다.

 

우리는 진실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왜냐하면 진실이 나에게 불이익을 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진실을 싫어합니다. 그런데 그 진실이 우리를 자유하게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모르죠. 언젠가 전국을 돌며 도둑질을 일삼아 대도라고 별칭까지 붙었던 이가 있었습니다. 전국이 발칵 뒤집어질 정도로 떠들썩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결국 잡히고 말았는데요. 잡힌 후 제가 아직도 기억하는 그의 첫마디가 이것이었습니다.

 

'잡혀서 다행이다.' 

 

그는 잡히지 않았다면 계속 도둑질을 했을 것이라고, 오히려 잡혀서 다행이라고 했던 거죠. 들키는 것은 재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까지의 잘못을 멈추고, 이제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은혜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이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듯 돼지의 떼죽음은 전 재산을 잃은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 새로운 삶의 시작인 겁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허탈한 한 주를 보냈습니다. 저도 어떻게 이런 일이 21세기에 벌어질 수 있을까 황망함으로 며칠을 보냈습니다. 또한 생명을 무력으로 짓밟는 위험천만한 일 앞에서도 편을 가르고 진영논리에 휩싸인 대한민국을 보면서 그 처참함에 또 며칠을 울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아침에 감사가 몰려왔습니다. 이 아픔이 우리나라에게 가장 좋은 시나리오이고, 이 위험이 우리나라에 가장 좋은 축복이라고 말이죠. 왜냐하면 이제 잘못된 관습과 생각을 바로잡고 새로이 삶의 기초를 쌓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더 곪기 전에, 더 악화되어 회복 불능이 되기 전에, 더 인간의 존엄이 훼손되기 전에 정신을 차리고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하기로 했습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때가 주님께 돌아올 때이기 때문이죠.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은혜예요. 내 마음대로 되면 우리는 되돌아올 수 없는 지경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감사하세요.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기뻐하세요. 그리고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우리의 이익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