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18. 04:45ㆍ묵상하는말씀/누가복음서묵상일기
누가복음서 8:51 그리고 그 집에 이르러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그 아이의 부모 밖에는, 아무도 함께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좋은 아침입니다. 요즘 감기가 극심합니다. 모든 공동체 가족들 모두 건강하게 12월을 보내시길 기도합니다.
야이로를 안심시키신 주님은 이제 그의 집에 들어가십니다. 앞서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던 사람은 더 이상 예수님이 필요 없다고 말한 바 있죠. 예수님이 필요했던 상황이 종료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필요에 따라 예수님의 존재를 판단하죠. 우리가 필요할 때는 예수님이 더없이 귀한 존재가 됩니다. 그러나 그 필요가 사라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예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죠. 필요할 때는 세상 누구보다 기다리고 떠 받들다가도 필요성을 잃으면 금세 원망을 쏟아놓기 일쑤입니다. 야이로의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그러나 예수님은 가시던 길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하실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끝났다고 느낄 때에도 예수님은 여전히 일하십니다. 우리가 안 된다고 판단할 때에도 예수님은 여전히 일하시죠. 그렇게 예수님은 그 집에 기어이 들어가십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제자들 중에 단 3명 만을 대동하고 들어가셨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물론 제자들이 몇 명이나 따라갔는지 알 수는 없지만 많은 무리가 동행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아마 거의 대부분의 제자들이 그 길에 함께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유독 예수님은 야이로의 집에 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야고보만을 데리고 들어가십니다. 게다가 심지어 그 외의 사람들은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갈 수 없도록 막으신 것으로 보입니다. 좀 이상하죠? 꼭 그래야 할 이유가 있으셨을까요?
저는 이런 처사에 대해 아는 바 없습니다. 무슨 뜻으로 그러셨는지 알 수 없죠. 그런데 이런 비슷한 상황이 또 있었다는 것을 성경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습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말이죠. 그 첫 번째는 변화산에 오르셨을 때이고, 또 다른 하나는 겟세마네 동산에 가셨을 때입니다. 이때에도 이 세 사람만을 데리고 가셨죠. 그렇다면 이 두 이야기의 공통점을 찾아볼 필요가 있겠죠? 변화산에는 왜 가셨는지, 겟세마네에는 왜 가셨는지 우리는 잘 압니다. 각기 다 기도하려 가신 것이니까요. 이런 의미로 보면 예수님은 지금 기도하러 야이로의 집에 들어가시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기도라는 것만으로는 특별한 메시지를 얻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 기도가 어떤 기도인지, 또 그 기도를 하신 이유가 무엇인지를 조금 더 면밀하게 찾아보아야 합니다. 아시다시피 변화산 사건은 예수께서 변화산에서 기도하실 때 영광의 빛으로 변모하셨던 사건이죠. 그 영광이 너무도 찬란하여 베드로는 '여기가 좋사오니'하며 그곳에 머물기를 소원했습니다. 겟세마네 사건도 비슷합니다. 예수께서 괴로움 가운데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죠. 그러나 그 기도는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주십시오.'로 변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변화의 시점이 되는 것이 비슷하죠.
더 중요한 것은,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죽을 것을 예고하시고 그다음 변화산에서 영광된 모습을 보여주시죠. 또 예수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시며 자신의 희생과 수고 뒤에 올 하나님의 계획을 겟세마네 기도를 통해 알려주십니다.
야이로의 집은 초상집입니다. 그런데 그 초상의 아픔 뒤에 주어질 기쁨이 있어요. 죽음 뒤에 오는 부활은 죽음보다 강합니다. 아프고 아린 마음보다 주님의 은혜는 더 크고 놀랍습니다. 아픔이 끝이라고 여기는 이들에게는 아픔이 상처가 되지만, 그 뒤에 주어질 주님의 놀라운 계획과 은혜를 기다리는 자에게는 아픔을 씻고도 남을 위로와 기쁨이 있죠. 이것이 우리가 기다려야 하는 이유이고, 믿음을 가져야 할 이유입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가 끝이 아닙니다. 아픔이 끝이 아니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한 그분의 일하심은 끝이 없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우리의 고통 뒤엔 반드시 기쁨이 있습니다. 아픔 뒤엔 반드시 은혜가 있고요. 눈물 뒤엔 반드시 위로가 있으며, 흘린 땀 뒤엔 반드시 대가가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초상집이 아닌 잔치집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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