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서묵상일기 77 -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2023. 12. 15. 06:50묵상하는말씀/여호수아서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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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서 14:1~5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에서 받은 유산을,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우두머리들이 다음과 같이 분배하였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들은 제비를 뽑아서 아홉 지파와 둘로 나뉜 한 지파의 반쪽에게 땅을 유산으로 나누어 주었다. 모세가 이미 요단 강 동쪽에서, 두 지파와 둘로 나뉜 한 지파의 반쪽에게 땅을 유산으로 주었으나, 레위 지파에게는 분깃을 주지 않았다. 요셉 지파는 므낫세와 에브라임 두 지파로 갈리었다. 레위 지파에게는 거주할 여러 성읍과, 그들의 가축과 가축을 기를 목장 외에는 분깃을 주지 않았다. 이스라엘 자손은,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그 땅을 나누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비교적 포근한 한 주를 보내셨죠? 그런데 주말에는 강추위가 있을 것이라는 예보가 있네요. 또 갑자기 추워지면 모두 힘들 텐데요. 여기서 또 우리의 선택이 필요하죠. 추위 때문에 불만이 아니라 한 주간 포근함을 감사하는 우리였으면 좋겠습니다. 겨울은 본래 춥잖아요. 그러니 추위를 탓하기보다 견딜 수 있음에, 추위가 주는 유익에, 서로의 따스함을 나누는 시간에 더 감사하고 기뻐하는 우리였으면 합니다.

 

오늘은 묵상할만한 내용들이 많습니다. 먼저는 이스라엘의 민주적 지도력인데요. 이스라엘은 가나안 정복을 끝내고 이제 정착을 위한 작업을 진행합니다. 맨 처음, 각 지파별로 자신들이 거주할 땅을 분배하죠. 이는 이미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사안이었죠. 그런데 이 작업을 오늘 본문은 세 권력 기구가 연합하여 추진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세 권력이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지도자 여호수아와, 또 이스라엘의 정신적인 지도자인 제사장 엘르아살, - 엘르아살은 광야시절부터 제사장 역할을 담당했던 아론의 셋째 아들이죠. - 그리고 이스라엘의 각 지파 지도자들이 그들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스라엘에 가장 영향력이 있고 강력한 지도자는 여호수아입니다. 하지만 그는 혼자서 자기 멋대로 결정하지 않고 서로 합의를 도출하는 방식으로 땅을 분배하죠. 마치 서로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방식이죠. 이는 우리에게 주는 바 의미가 큽니다. 공정과 공평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그렇게 지도력은 공평과 공정 위에 세워지는 거죠. 이는 공평을 뜻하는 [미쉬파트]와 공의의 [체데크]라는 큰 틀의 이스라엘의 신앙적 전통을 낳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공평을 근거로 삶의 습관을 만든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그들이 이 과정에서 제비 뽑기로 그 공평을 실현했다는 점이죠. 오늘날 제비 뽑기는 뭔가 좀 낯설죠? 뭔가 좀 없어 보입니다. 마치 가벼운 운에 맡기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는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 역사하시고 섭리하시는 주님을 믿는 믿음을 근거한 것입니다. 오늘날 이 제비 뽑기를 우리가 어떻게 해석하고 또 삶에 어떻게 적용할지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만 오늘 우리가 묵상할 주제는 따로 있으니 차후로 미루기로 하죠.

 

이렇게 기득권을 내려놓는 민주적 협력도, 하나님의 섭리에 주도권을 넘기는 제비 뽑기도 제치고, 오늘 당당하게 저에게 다가온 묵상의 말씀은 레위인에 관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에는 12지파가 있습니다.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단, 납달리, 갓, 아셀, 잇사갈, 스불론, 베냐민, 그리고 요셉지파인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그들이죠. 이 가운데 11지파는 모두 땅을 소산으로 분배받았습니다. 그러나 레위지파는 땅을 분배받지 못하죠. 레위 지파는 주로 종교적 의무를 수행하고 제사장과 같은 임무가 주어졌어요. 지금의 목회자 그룹이라고 이해하시면 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현 교회 제도의 목회자로 해석하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많다는 것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다만 당시에는 예배와 말씀이 이스라엘 민족의 삶에 중심이었기 때문에 이를 돕고 준비하는 이들을 특별히 구별하였던 것이죠. 그래서 그들은 따로 일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니 일을 하는 땅이 따로 필요하지도 않았던 거죠.

 

그렇다고 또 그들에게 땅이 없었던 것은 아니에요. 그들에게는 가축을 돌보는 초원과, 죄를 지은 자들의 피난처라고 할 수 있는 도피성이 그들의 소유 땅이었죠. 이는 목자 되시며 모든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미를 담는 상징과도 같습니다. 그런데 그 땅들은 사실 레위 지파에게 분할된 땅이 아닙니다. 레위 지파를 제외한 11지파들이 레위 지파에게 자신의 것에서 나눠준 땅이죠. 그러니까 11지파는 그들의 몫을 나눠 레위 지파에게 준 것입니다. 온전히 레위 지파는 다른 지파의 도움을 받아서 그들의 땅과 도피성을 운영했던 것입니다.

 

제가 이 제도의 깊은 내막을 다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또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해요. 다만 저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선물, 우리에게 주어진 유산을 어떻게 사용하고 가꿔야 하는지에 대한 표준으로 이 구절을 묵상합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또한 내가 누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선포하는 가장 중요한 행위가 바로 감사요 나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11지파의 나눔은 그 감사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들이 누군가에게 나누고, 자신이 돌보아야 할 이들을 돌보는 것은 나에게 거저 주신 은혜를 기억하는 행위였다는 거죠. 게다가 특별히 주님을 예배하고 말씀을 듣는 자리를 거룩하게 만드는 나눔은 가장 큰 감사임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참 욕심이 많죠. 가진 것에 만족하는 법이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은혜를 입어도 그것을 기억하기가 쉽지 않아요. 때론 감사하고 싶어도 어떻게 그 은혜를 나눠야 할지, 감사를 표해야 할지 모를 때가 많죠. 부모님의 사랑에 감사할 만큼 철이 들 즈음이면 이미 부모님은 곁에 안 계십니다. 그래서 감사할 방법을 잃기도 하죠. 간혹 우리는 감사가 기쁨을 준 당사자에게 갚아야 할 빚으로 여길 때가 있어요.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감사를 레위인에게 합니다. 가장 가까이 자신이 책임지고 돌보아야 할 사람에게 베풀죠. 이것은 하나의 하나님께서 정하신 제도입니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내가 잘되는 이유, 내가 잘 나가는 이유, 그것이 주님의 선물이라면 내가 잘되는 것을 통해 내 곁에 돌봐야 할 사람을 돌보도록, 내 이웃의 아픔을 감싸도록, 가까이 있는 이들과 평화를 누리도록 이끄시는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모든 것이 은혜죠. 그것을 믿는 자는 그 은혜 속에 담긴 하나님의 계획을 압니다. 바로 나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입니다. 나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 땅 위에 임하게 하는 거죠. 그 사랑, 그 은혜, 그 축복이 내가 나눈 나눔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것이 감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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