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6. 23. 07:09ㆍ묵상하는말씀/고린도전서묵상
고린도전서 14:34~35 성도들의 모든 교회에서 그렇게 하는 것과 같이, 여자들은 교회에서는 잠자코 있어야 합니다. 여자에게는 말하는 것이 허락되어 있지 않습니다. 율법에서도 말한 대로 여자들은 복종해야 합니다.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으십시오.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자기에게 부끄러운 일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맑은 날이나 흐린 날이나, 거친 날이나 수월한 날도, 우리에게 한결같은 것이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으로 나를 새롭게 창조하는 매일 아침이 그것입니다. 오늘도 어제의 내가 아닌 오늘의 나로 새로운 시간을 만들어가는 우리 되길 빕니다.
고린도전서 11장에서도 그랬죠? 남녀 차별적 발언들을 대할 때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바울이 살던 시대의 사회적 분위기를 생각한다면 그 발언들을 이해 못 할 바 아니지만 우리는 말씀을 오늘의 현실에서 적용하며 삶의 푯대로 삼기에 난감함을 지울 수 없죠. 여자들은 '잠자코' 있으라는 말은 얼굴을 찡그리게 할 만큼 거칩니다. 배우고 싶으면 집에 가서 남편에게 배우라는 말에는 약간의 모욕감마저 들죠. 이 말씀을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먼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울은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말하죠. 그러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품게 하여 그분의 마음으로 적은 것이 성경이라는 뜻입니다. 저는 이 사실을 믿습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이 성경을 읽는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감동이 임함을 믿어요. 그때 하나님의 감동이 오늘날에도 살아 우리에게도 임하시기 때문이죠. 다시 말해 주신 말씀을 하나님의 감동으로 해석하고 이해하고 적용할 힘이 우리에게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본문을 마치 성경을 쓰듯 의미 있게 해석하는 일을 우리가 해야 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말씀을 받아들여야 할까요? 일단 바울은 오늘 본문을 단독적으로 쓰고 있지는 않습니다. 무언가를 설명하기 위해 예로 오늘 본문을 적고 있는 거죠. 주된 메시지는 방언과 예언입니다. 방언과 예언을 질서 있고, 평화롭게 사용하기를 강조하고 있죠. 그 와중에 오늘 본문이 등장하죠. 다른 사본에 의하면 오늘 본문은 고린도전서 14장의 제일 마지막에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주된 메시지가 따로 있다는 이야기죠.
그런 의미로 오늘 말씀을 이해한다면 오늘 본문은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접근이 가능합니다. 여자와 남자의 차이, 그 사회적인 신분의 차이를 근거로 한 본문이 아니라는 것이죠. 가령, 여자를 지금 방언이나 예언하는 우리로, 그리고 남자를 주님으로 대비시키면 어떨까요? 마치 신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신부 된 우리처럼 말이죠. 그리고 교회는 이 사회, 이웃, 대중으로 해석한다면요? 그렇게 대비시킨다면, 우리의 말은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떠들고 싶은 대로,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죠. 나를 자랑하기 위해 방언을 오용하거나, 누군가를 협박하기 위해 예언을 사용하는 것과 같은 일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이죠. 제자라면 생각조차도 하나님 안에 있어야 하고,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신 성도라면 말조차도 주님께 복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질서인 거죠.
이와 더불어 바울이 오늘 본문을 통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이것이 아닐까 싶어요. 말씀은 나에게 먼저 적용하는 것이라고 말이죠. 여자가 남편에게 묻는다는 표현, 여자가 교회에 말하는 것이 부끄럽다는 표현이 그렇습니다. 내게 주어진 말씀은 나에게 적용해야 하는 거지 남에게 적용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죠. 주님이 주신 말씀은 나를 위해 주신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방언이 그렇고 예언이 그렇죠. 방언은 나에게 확신을 주시는 말씀이고, 예언은 내 안에 넘치는 기쁨과 감격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간혹 말씀을 다른 데 적용하는 경향들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사회 탓을 하고, 남 탓을 하는 데 사용하죠. 때론 나와는 무관한, 다른 사람의 얘기처럼 듣습니다. 그런 묵상은 묵상이 아니라 흉내일 뿐이죠. 그래서 저는 매일 아침, 함께 시작하는 이 묵상일기가 좋습니다. 아무도 없는,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서 그분의 말씀에 나를 비추며 새롭게 세워가는 이 시간이 귀해요.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은 나에게 적용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나를 위해 있는 것이고, 말씀은 나를 살리는 도구입니다. 말씀 앞에서는 다른 사람이 필요 없고, 다른 여건이 개입될 수 없어요. 그저 나에게 하시는 말씀, 내 삶에 적용할 말씀일 뿐입니다. 그러니 말씀을 가지고 당시 사회가 어쩌니, 남녀 차별이 어쩌니, 역사적 배경이 어쩌니 따지지 마세요. 하나님의 감동이 임하여 성경을 쓸만한 능력으로 오늘 말씀을 나에게 적용하는 은혜로 말씀을 대하시길 빕니다. 그렇게 말씀 앞에 서는 우리에게 주님은 변화의 물결과 광야에 길을 내는 은혜를 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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