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3. 23. 06:31ㆍ묵상하는말씀/고린도전서묵상
고린도전서 10:25~28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한다고 하여 그 출처를 묻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먹으십시오. '땅과 거기에 가득 찬 것들이 다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불신자들 가운데서 누가 여러분을 초대하여, 거기에 가고 싶으면, 여러분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나, 양심을 위한다고 하여 묻지 말고, 드십시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이것은 제사에 올린 음식입니다" 하고 여러분에게 말해 주거든, 그렇게 알려 준 사람과 그 양심을 위해서, 먹지 마십시오.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사랑으로 절제하는 법에 대해 알려준 바울은 조금 구체적인 설명을 덧붙입니다. 당시에는 시장에서 파는 고기들 가운데 일부는 신전에 제사로 쓰였던 고기들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신전의 고기인지, 아니면 판매를 위해 도축된 고기인지 일일이 따져가며 고기를 구입하지 말라고 바울은 권면입니다. 여기서 양심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특이해요. 양심이라는 말은 매우 철학적인 단어인데요. 헬라어의 의미는 [깨달음]이라는 뜻이 강합니다.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한 마틴 루터는 이 부분을 독일어 [게비쎈]이라는 단어로 번역했는데, 그 뜻 또한 '~과 함께 안다'는 의미죠. 문제는 우리가 양심이라는 단어에서 떠올리는 선한 의미가 본래 단어에서는 없다는 것입니다. 아니, [없다]라고 단정하기보다는 그 판단을 유보하죠. 그래서일까요?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3:16에서 선한 양심이라는 표현을 합니다. 그러니까 악한 양심도 있을 수 있다는 뜻인 거죠. 그런 의미에서 보면 오늘 본문에 쓰인 양심이라는 말은 어쩌면 옳고 그름의 기준을 의미하는지도 모릅니다.
좀 어려운 설명인가요? 이 의미를 오늘의 우리에게 적용하면 이런 말이 될지도 모릅니다. 좀 시쳇말로 하면 이렇습니다. '너무 까탈스럽게 굴지 말라'고요. 이 말이 좀 경박한가요? 그럼 이런 말은 어떨까요? '모든 일에 율법의 잣대를 드리대지 말라' 그것도 좀 어렵다면 요즘 우리가 늘 묵상하는 언어로, '잘못된 것을 눈에 불을 켜고 찾아내려는 시선이 아니라 다 좋은 눈으로 바라보는 마음을 가지라'라고 한다면요?
부모가 되어서 자녀를 바라볼 때 저에게 제일 힘든 것이 있어요. '저려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입니다. 경험상으로든 지식적으로든 제게 어떤 원리들이 작용합니다. 그리고 그 원리에 맞지 않는 모습들이 보이죠. 그 생각은 단순히 안 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는 단정에 이르죠. 그래서 권면을 넘어 화를 내고, 강압적으로 지시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말을 하지 않더라도 그 생각이 지배하면 늘 자식을 불만스럽게 바라보게 되죠.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래요. 제 생각이 늘 맞는 것은 아니거든요. 게다가 시대가 바뀌었고, 또 다른 삶의 패턴들이 만들어지죠. 그런 삶의 상황뿐만 아니라 그 삶을 사는 사람 또한 달라졌습니다. 나와 자녀는 다른 사람이니까요. 그의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 저는 모릅니다. 어쩌면 저보다 훨씬 훌륭하게 살아갈지도 모르죠. 그런 믿음보다 불만이 현실에 더 많이 드러나는 것은 어떤 확신이라기보다 노파심인 경우가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그래요. 늘 노파심이 작동합니다.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는 경우들이, 될 것이라는 믿음보다 훨씬 강합니다. 언제나 잘못될 것을 먼저 생각하고, 언제나 실패를 우선으로 바라보죠. 우리의 목표는 넘어지지 않는 것, 실패하지 않는 것,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에 초점을 맞춥니다. 심지어 이것은 나쁜 것 아닐까? 이것은 나를 무너뜨리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마치 나의 신앙의 갑옷 인양 생각하며 살아왔던 것이 사실이죠. 그래서 늘 의심의 잣대를 들이대며 살아왔는지도 몰라요.
일어나지 않은 일은 걱정하지 마세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일은 생각조차 하지 마세요. 내가 바라는 일이 아니면 조금도 머리에, 마음에 담지 마세요. 아무도 말하지 않은 것을 나만 떠올리며 스스로 늪에 빠지는 오류를 범하지 마세요.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데 혼자 괴로워하고 힘들어하지 마세요. 내 양심을 좁고 작은 것으로 만들지 마세요. 더 크고 넓게 이용하세요. 더 많은 것을 포용하고 더 깊은데 이르도록 키우세요. 더 많은 것을 담아도 평안토록 만드세요. 그러기 위해서 좋은 마음과 좋은 눈으로 세상을 보시고요. 좋은 생각과 좋은 감정을 품으세요.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 먼저 웃으세요. 첫 기도를 이렇게 하세요. '오늘도 웃음이 멈추지 않는 하루 되게 해 주십시오.' 선한 양심은 좋은 생각입니다. 어떤 나쁜 의도도 녹여내서 무장해제시키는 능력입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게 하는 권세입니다. 원수도 친구로 만드는 무기죠. 그런 슈퍼 울트라 캡숑 짱인 그리스도인으로 오늘도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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