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서묵상일기156 -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도우심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2021. 8. 27. 06:48묵상하는말씀/사무엘서묵상일기

반응형

사무엘하 8:1~6   그 뒤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쳐서, 그들을 굴복시키고,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메덱암마를 빼앗았다. 다윗은 또 모압을 쳤다. 그는 모압 포로들을 줄을 지어 세운 다음에, 그들을 땅에 엎드리게 하고, 매 석 줄 중에 두 줄은 죽이고, 한 줄은 살려주었다. 모압 사람들은 다윗의 종이 되어 그에게 조공을 바쳤다. 르홉의 아들, 소바 왕 하닷에셀이 유프라테스 강 유역에서 자기 세력을 되찾으려고 출정하였을 때에, 다윗이 그를 치고, 그에게서 기마병 천칠백 명과 보병 이만 명을 포로로 사로잡았다. 다윗은 또 병거를 끄는 말 가운데서도 백 필만 남겨 놓고, 나머지는 모조리 다리의 힘줄을 끊어 버렸다. 다마스쿠스의 시리아 사람들이 소바 왕 하닷에셀을 도우려고 군대를 보내자, 다윗은 시리아 사람 이만 이천 명을 쳐 죽이고,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에 주둔군을 두니, 시리아도 다윗의 종이 되어 그에게 조공을 바쳤다. 다윗이 어느 곳으로 출전하든지, 주님께서 그에게 승리를 안겨 주셨다.


통일 이스라엘 재건에 성공한 다윗은 이제 주변의 위험 요소들을  정리합니다. 먼저 늘 으르렁거리던 블레셋과의 전쟁을 치르죠. 여기서 메덱암마를 빼앗습니다. 메덱암마는 성경에서 유일하게 이곳에서만 등장합니다. 그만큼 이곳이 어느 곳인지 불분명해요. 말의 뜻으로 보아서는 어머니와 그 영향력이 미치는 주변을 뜻하는 말인데요. 주로 고대에서는 나라의 중심이 되는 곳을 곧잘 어머니에 빗댄 것을 생각하면 특정한 지역이라기보다 블레셋의 중심부와 여러 도시를 함락시켰다는 뜻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스라엘에 있어서 서쪽이 블레셋이었다면 동쪽은 모압이 자리하고 있었는데요. 역시 모압과도 전쟁을 치릅니다. 이 장면에서는 전쟁의 참혹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전쟁 포로들을 줄을 세워놓고 한 줄은 죽이고 한 줄은 살려주고 했다고 하네요. 마치 러시안룰렛을 하듯 이는 극도의 공포심을 유발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때문일까요? 모압은 이스라엘의 속국이 되어버리죠. 또 북쪽에도 손길을 뻗히는데요. 소바는 지금의 시리아 지역에 세워진 아람 국가였습니다. 당시 신흥국가였던 소바의 왕 하닷에셀은 여러 지역을 정복하며 시리아 지역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는 시기였던 것으로 보여요. 다윗은 그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며 지역 최고의 강대국으로 부상하죠.

 

아침에 이 본문을 읽는 것이 불편합니다. 잔인함 때문이죠. 마치 게임처럼 장난을 하듯 사람을 죽이는 것이나 말의 힘줄을 끊고, 연합군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시리아 사람들을 쳐 죽이는 장면은 생각하기조차 꺼려지는 모습입니다. 이런 구절을 보면서 우리가 잔인하고 무자비한 하나님의 군대를 생각해내는 것은 보기에 따라 정의롭고 멋진 판단력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난독증 환자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이 본문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말은 전쟁의 비참함도, 잔혹함도 아닙니다. 바로 6절의 말씀입니다.

 

"다윗이 어느 곳으로 출전하든지, 주님께서 그에게 승리를 안겨 주셨다."

 

전쟁은 본래 잔혹합니다. 아니, 우리의 삶 자체가 전쟁일지도 모릅니다. 전쟁을 하지 않으면 좋으련만 우리는 어둠과의 싸움을 해 내야 하죠. 매일 과거와 싸워야 하고, 내 마음을 지배하려고 스멀스멀 움틀거리는 부정적인 생각과 우울한 기운을 털쳐 버려야 합니다. 나의 영혼을 위험한 골짜기로 인도하는 속삭임을 무자비하게 잘라내야 하고, 여전히 옛 습관에 휘둘리는 마음을 잔혹하게 도려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그 부분을 우리에게 던져주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요약해 볼까요? 이제 요약을 '전쟁은 비참하다' 정도로 하는 이는 없으시겠죠? '하나님의 군대가 이렇게 잔인해도 되나?' 뭐 이런 요약이 오늘 말씀의 본질이라고 말씀하는 분이 계시지 않길 바랍니다. 아마도 우리는 이렇게 요약해 내야 할 거예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승리했다."

 

여기까지 왔다면 성공한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 억지스러운 질문을 해 보죠. 이 한 마디의 문장을 도출하기 위해 왜 오늘 본문은 장황하게 전쟁의 이야기를 말하고 있을까요? 그것도 듣기 거북할 만큼 세세히 말이죠.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의 잔인함을 그대로 설명하고 있을까요? 저의 해석은 저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습니다. 다만 왜 그런 말을 세세히 전해주었을까를 생각하다가 주신 생각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말이죠.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라는 말씀에는 집중했지만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라는 말에는 소홀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온전히 드러나는 것은 우리가 어디를 가야만 할 때라는 점을 간과한 것이죠.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도우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줄기차게 전진하고, 용감하게 걸어가야 한다는 점을 자주 놓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도우심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은 우리를 통해 드러나고, 하나님의 함께 하심은 우리가 도전하는 길에서 빛납니다.  그분의 축복은 땀 흘린 자에게 주어지고, 그분의 은혜는 용감하게 도전하는 이들에게 임하죠. 분명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일하십니다. 분명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그 이름이 드러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의 도우심을 믿고 지금 용기를 내어 시작해야 합니다. 그것도 치열하게 말이죠. 그것도 목숨을 걸고 하는 전쟁처럼 용감하게 말입니다. 

 

오늘도 용감하게 그리스도인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치열하게 도전하시길 빕니다. 그 속에서 주님의 도우심을 경험하고 이끄시는 인도하심을 느끼는 하루이길 빕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