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서묵상44 - 하나님의 나라는 먼 훗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믿는 우리들을 통해 바로 이 자리에서 이루어집니다.(요한복음11:17~27)

2020. 3. 3. 06:52묵상하는말씀/요한복음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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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나사로의 집에 도착하셨습니다. 5리면 겨우 2Km 정도입니다. 그곳을 오시는 데 4일이 걸렸습니다. 이미 나사로는 죽어 시신의 부패가 시작할 지경에 이르렀죠. 이쯤 되면 모든 이들이 포기했을 것 같아요. 치유라는 것이 살아있을 때 가능한 단어이고, 고침 받는다는 기대도 생명은 붙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니까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 시간을 허비해 버리셨습니다. 그 이유를 어제 함께 묵상했죠. 어제와 다른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이것입니다. 전화위복(轉禍爲福). 화가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된다는 뜻이죠. 생명이 위험한 상황에서 치유를 받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기쁨입니다. 아마도 누구나 그 기쁨을 맛보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 기쁨은 위험한 상황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역전의 기쁨이 있죠. 포기했는데 다시 살아난 희망을 보는 것은 꿈만 같은 일입니다. 그런데 그 감격은 포기의 절망이 크면 클수록 더욱 커지는 것입니다. 참 역설적이죠. 

부활의 능력은 죽음을 전제해야 가능합니다. 내가 낮아질수록 하나님의 일하심이 더 커지고, 내가 엎드릴수록 하나님의 도우심이 강해집니다. 눈물의 골짜기를 걸을수록 푸른 초장과 맑은 시냇물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더 크죠. 요즘은 스토리 있는 인생이 인기입니다. 아픔을 간증으로 바꾸고, 고난을 자랑으로 바꾸는 스토리가 감동적이죠. 그 감동은 홀로 오지 않습니다. 죽음을 알아야 생명의 소중함이 있고, 십자가가 있어야 부활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어쩜 우리에게 주어진 아픔과 고난은 역전을 준비하는 스토리일지도 모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이 땅에서 하나님의 스토리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인지도 몰라요.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가치이고, 또한 살아있는 복음의 증거인지도 모릅니다.

오늘 눈에 띄는 장면은 예수님이 나사로의 누이 마르다를 만나 대화하는 장면입니다. 마르다는 예수님께 이렇게 말하죠. "주님, 주님이 여기에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나는 주님께서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하나님께서 다 이루어 주실 줄 압니다." 너무나 차분하고 믿음 있어 보이는 이 말에는 뼈가 있어 보입니다. 제가 조금 삐딱하게 해석하면 오히려 예수님을 원망하는 듯한 느낌마저 들어요. 예수님이 오지 않아서 오빠가 죽었다는 뉘앙스도 읽힙니다. 이런 해석은 그다음 구절에서 더 확실해지죠. 예수님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에 대한 마르다의 대답은 무엇일까요? "마지막 날 부활 때에 그가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은 내가 압니다." 마치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것처럼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미 자포자기한 대답입니다. 예수께서 다시 살 것이라는 말을 그녀는 그저 형식적인 신앙의 말로 받아버리죠. 나중에 천국에서 다시 살 것이라고 말이죠. 물론 이 또한 대단한 신앙입니다. 천국의 소망이 있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그런 마르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죠.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 너무나 유명한 구절의 말씀이죠. 그런데 앞뒤의 맥락을 통한 이 말씀이 어떤 의미로 들리십니까? 

우리는 아는 것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 아는 것을 일반화시킬 때가 있죠. 가령, 우리는 죽어서 천국에서 만난다와 같은 말입니다. 마르다가 그랬습니다. 부활이란 천국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요. 왜냐하면 상식적으로 이 땅에서 부활이라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이죠. 하나님의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습니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공의가 마르지 않는 샘처럼 넘치는 그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죠. 그러나 또한 수많은 사람이 그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이 아니라 천국에서나 가능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이 땅에서, 나의 손으로, 현실감 있게 만들어질 수 있다고 믿으시나요? 사막에 샘이 넘쳐흐르고 사자들이 어린양과 뛰노는 그 꿈이 지금 내가 사는 이 현실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으십니까? 마치 신앙이라는 것이 지금이 아니라 먼 나라, 저 천국에 가서나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믿지는 않으십니까? 지금 마르다가 딱 그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른 말씀을 하시죠. 이런 말씀입니다. “물론 네가 알고 있는 것처럼 천국 가서도 산다. 그러나 지금 네가 살고 있는 땅,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수 있다. 나를 믿으면 말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 시대에 이 땅에 부름 받아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 말씀은 이 시대를, 이 땅을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꿈으로 만들라는 사명을 받았다는 뜻이죠. 그저 '언젠가는 이루어질 거야~'라는 마음이 아니라 오늘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오늘 우리의 현실에서 기적을 이루시는 하나님, 지금 이 시간에도 일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꿈꾸고 기대하고 현실화시키는 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먼 훗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믿는 우리들을 통해 바로 이 자리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고 믿으면 말이죠. 

오늘도 우리는 오늘 하루를 주님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세워진 존재들입니다. 여러 어려움, 공포와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하나님이 바꾸시고 진정시키시고 고치실 역사를 믿으며 희망을 노래하는 우리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믿으면 오늘 부활이 이루어지고, 오늘 하나님의 나라가 기초를 쌓습니다. 우리 손을 통해서 말이죠. 그렇게 주님의 역사를 이루는 우리의 하루가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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