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서묵상39 - 우리에게 주신 자리는 사명의 자리입니다. 요한복음9:35-41

2020. 2. 26. 06:54묵상하는말씀/요한복음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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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침 받은 소경이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추궁을 당하다가 쫓겨났습니다. 그 이야기를 예수님이 들으신 모양이에요. 그리고 다시 그를 만나시죠. 이 장면을 조심히 읽어보면 예수님이 찾아가신 것 같아요. 메시지 성경은 직접적으로 그렇게 번역했네요. 그를 찾아가 만나셨다고 말이죠. 이는 바리새인들이 그를 대하는 모습과 은근히 비교됩니다. 그들을 고침 받은 소경을 오라 가라 마음대로 다루지만 예수님은 그를 찾아가시죠. 그리고 물으시네요. "인자를 믿느냐?"고요. 그는 바로 대답합니다. "주님, 내가 믿습니다" 분명하고도 확고한 대답입니다. 그런데 이 대답이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그의 처지를 생각하면 말이죠. 그는 바리새파 사람들과 논쟁을 했습니다. 그리고 내쫓겼어요. 이는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밉보였다는 말입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그 사회를 쥐락펴락하는 사람들입니다. 심지어 사람들의 목숨까지도 결정할 만큼 존재감 있는 이들이죠. 그런데 그들에게 밉보였습니다. 이유는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였죠. 그 상황에서의 대답이라면 이 대답이 얼마나 큰 변화이며 확고한 믿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 또한 바리새파 사람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죠. 다가올 메시아를 자신들의 종교적 확신에 묶어두며 그분에게 나를 내어드리기보다는 자신의 입맛에 맞는 메시아를 고르려는 모습이 묘한 신앙의 대조를 이룹니다. 

이런 말씀 드린 적이 있죠? 미신적 신앙과 기독교적 신앙의 차이가 있다고 말이죠. 미신적 신앙이란, 내가 하나님을 내 마음대로 다루려는 것이고, 기독교적 신앙은, 하나님이 나를 마음대로 다루시도록 나를 내어드리는 신앙이라고요. 우리의 신앙은 어떨까요? 나의 감정이나 경험에 비추어 하나님의 말씀을 입맛에 맞게 고르지는 않나요? 원하는 말씀만 들으려 하고, 원하는 축복만 바라지는 않습니까? 이미 내 머릿속에는 규격화된 신앙이 자리 잡고 있지는 않습니까? 지금까지 배워온 대로, 지금까지 경험한 바의 종교적 신념으로 가득 차 있지는 않나요? 그래서 새롭게 말씀하시고, 새로운 꿈과 사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주저하게 되지는 않나요? 여전히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아는 하나님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죠. 여전히 우리는 그분 앞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보다 그분의 생각이 더 넓기 때문입니다.  

몇몇 바리새파 사람들은 이 장면조차도 쫓아와 보았나 봐요.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또 반발을 합니다. "우리도 눈이 먼 사람이란 말이오?" 또 이런 것은 잘 아네요. 눈먼 자란 소리는 듣기 싫은 모양입니다. 그들이 눈먼 자들을 조롱하고 무시한 만큼 눈먼 자가 되고 싶지 않은 것은 당연하겠죠. 편견은 내 마음의 분량입니다. 내 태도의 증거죠. 내가 싫어하는 마음과 생각이 클수록 편견은 견고해집니다. 우리가 모두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내가 증오하는 만큼 편견이 자라고, 내가 섞이고 싶지 않은 만큼 편견이 우리 속에 자리하죠.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은 우리의 뼈를 때립니다. 차라리 눈이 멀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씀하시죠. 이 말씀이 어떻게 들리시나요? 저는 이렇게 들립니다. 차라리 권력자가 아니었다면 좋았을 것을, 차라리 부유하지 않았더라면, 높은 자리에 있지 않았더라면, 차라리 몰랐더라면… 이렇게 들립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자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권력을 가졌다면 그 권력을 주신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부유하고, 우리가 알았다면 그것은 다 뜻이 있어요. 나의 권력, 다스림의 자리, 또 부유와 지식, 그 모든 것은 그만한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통해 누군가를 세우고, 섬기고, 이끌기 위한 사명의 축복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런 자리에서 자기의 배만 채우고, 자기의 자리만 누린다면 그것은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다는 뜻이죠. 그것을 예수님은 죄라고 칭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자리는 사명의 자리입니다. 우리가 지금 서 있는 곳은 주님이 맡기신 자리죠. 우리가 먼저 예수님을 믿게 된 것도, 우리가 기쁜 것도, 또는 슬픈 것도 모두 하나님이 맡기신 이유가 있습니다. 나를 통해 주님이 드러나기를 바라시는 것이죠. 나를 통해 이웃에게 주님의 마음이 전해지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잃으면 죄가 됩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뜻을 저버리는 결과이니까요.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면 눈먼 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나의 자리가 주어집니다. 높든 낮든, 많든 적든 나의 자리는 사명의 자리입니다. 금 그릇이든 질그릇이든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 쓰임 받는 존재들이죠. 그것을 잃고 나의 욕심과 욕망을 위해 오늘을 산다면 우리는 눈먼 자일 지도 모릅니다. 주님의 사명을 잃고 받은 은혜와 주신 권리를 나의 편견과 아집으로 휘두른다면 그것이 소경이죠. 오늘, 우리는 눈을 뜬 자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만나는 모든 이들이 주님이 허락하시고 만나게 하신 이들임을 인지하면 좋겠어요. 오늘 하루가 주님께서 맡기신 시간임을 선포하면 좋겠습니다. 주님이 맡기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때 우리는 주님께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일컬음 받을 것입니다. 그 축복이 가득한 하루 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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