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 29. 07:12ㆍ묵상하는말씀/요한복음묵상
오늘 본문의 성전 봉헌절은 아마도 하누카인 것 같습니다. 다른 말로 수전절이라고도 하죠. 수전이란 성전을 고쳤다는 의미죠. 이는 구약과 신약 사이의 역사적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바빌론 유수를 끝내고 귀환했지만 이스라엘은 여전히 바빌로니아의 영향 하에 있었습니다. 이후 알렉산더 대제에 의해 바빌로니아는 멸망하고 자연스레 유대 땅도 그 지배하에 놓이죠. 대제국을 이루던 알렉산더가 일찍 죽자 제국은 갈라집니다. 유대 땅은 프로톨레마이 왕조의 지배를 받죠. 식민지배하에 있었지만 오히려 유대문화는 헬라 문화와 만나 번성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식민지배가 셀레우코스 왕조에게 넘어가죠. 프로톨레마이 왕조가 이집트 기반의 왕조라면, 셀레우코스 왕조는 시리아 기반의 왕조입니다. 완전히 분위기가 다른 지배를 받았는데요. 셀레우코스 왕조는 식민지의 문화를 말살하는 정책을 사용했습니다. 이 때문에 유대 땅 예루살렘의 성전은 완전히 이방신의 전유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는 유대인의 정체성을 크게 훼손시켰죠. 그래서 그 유명한 마카비 혁명이 일어납니다. 이는 게릴라 혁명이었어요. 결국 셀레우코스 왕조는 손을 들고 말죠. 하누카는 그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온전히 성전을 되찾고, 해방을 맛본 날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하누카는 이스라엘 최대의 명절입니다.
바리새파 사람들로 대표되는 유대인들과 예수님의 논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확실히 말해달라고 채근을 합니다. 예수님은 이미 말했는데 뭘 더 말하느냐고 대답하시죠. 마치 이런 대화와 비슷합니다.
‘나에게 솔직히 말해줘’
‘내가 조금 전에 말했잖아?’
‘아니 그 말 말고, 내가 듣고 싶은 말을 솔직히 말해줘’
‘아니 네가 듣고 싶은 말을 해 주는 것이 뭐가 솔직한 말이야? 솔직한 말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대답을 정해놓고 이야기를 들으려 하죠.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정해놓고 하나님이 말씀해 주길 바랍니다.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바람을 정해놓고 그것만을 들으려 하죠. 이런 신앙은 이미 자신이 스토리를 짜고 그것에 맞는 말씀만을 골라 듣는 편협함을 갖게 됩니다. 신앙은 나의 바람을 하나님이 성취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바람을 나에게서 성취해 내는 것을 말하죠.
오늘 제게 주신 말씀은 27절 말씀입니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따른다.”
예수님은 목자와 양의 관계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목자와 양의 관계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말씀은 시편 23편이죠. 실제로 목자 출신이었던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시편 23:4 내가 비록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나를 보살펴 주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이 장면을 한번 상상해 보세요. 낮에 목자와 함께 자유로이 풀을 먹고 잘 놀다가 이제 어둑어둑할 즈음에 집으로 돌아갑니다. 해는 넘어가고 이제 달이 떠오를 즈음, 골짜기를 지나가는데요. 골짜기 위 언덕에는 시커먼 그림자가 보입니다. 그 그림자는 머리를 쳐들고 목청 높이 울부짖죠. 그 소리에 양들은 움찔합니다. 음산한 목소리,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늑대의 울음소리죠. 그러면 양들의 머리는 복잡해집니다. 그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양들은 목자와 늑대를 번갈아 쳐다보며 이런 생각을 하죠. ‘저 늑대가 나에게 달려들면 목자가 나를 지켜줄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이 깊어질수록 늑대의 울음소리는 마치 폐부를 찌르듯 심장에 꽂힙니다. 그리고 결단을 하죠. 목자를 믿을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살길을 찾아 도망칠 것인가? 후자의 마음에 결단이 서면 양은 무리에서 벗어나 살길을 찾아 떠나죠. 그런데 문제는 늑대가 노리는 양이 바로 그런 양이라는 점입니다. 늑대가 괜히 언덕에서 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 울음소리에 흔들려서 무리를 벗어나는 양을 기다리는 울음소리죠. 결국 양들은 목자의 피리소리를 듣는가? 늑대의 울음소리를 듣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선택이 주어지죠. 다윗은 이것을 죽음의 골짜기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늑대의 울음소리가 가까워지면 질수록 오히려 주님의 피리소리를 더 의지하기 때문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마음이 복잡하신가요? 결단할 일들이 앞에 놓였습니까? 흔들리나요? 외부의 소리가 크게 들려옵니까? 그때는 주님이 부르시는 때입니다. 주님의 피리소리를 의지할 때죠. 오히려 어느 때보다 주님을 의지할 때입니다. 나는 그분의 양이니까요. 그분의 자녀이고, 그분이 만드신 존재이니까요. 그러니까 무서울 때일수록 그분을 더 찾아야 하고, 흔들릴 때일수록 그분을 더 붙잡아야 합니다. 위험할수록 그분의 목소리가 더 선명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자녀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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