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묵상하는말씀/예레미야묵상

예레미야서묵상 111 - 믿지 않는 이웃이 더 잘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예레미야 48:1-25

오늘 말씀은 모압의 멸망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46장부터 이웃 나라들에 대한 멸망의 선포가 이어져 오고 있는데요. 이 말씀들이 조금은 듣기 거북하기도 하고, 또 지루하기도 합니다. 멸망에 대한 이야기보다 축복의 이야기가 더 듣기 좋기 때문이죠. 게다가 우리와는 상관없어 보이는 이방인들에 대한 이야기니 더욱 그래 보입니다. 그러나 말씀이 기록된 그 나름의 이유가 다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이해하기 힘든 말씀 앞에서는 더욱 나의 생각을 내려놓는 것이 필요하죠. 오늘도 겸손하게,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믿고 본문은 천천히 여러분 정독했습니다.

모압은 이스라엘과 한 뿌리의 민족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이야기 가운데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이야기가 나오죠. 그들이 소돔과 고모라를 뒤로하고 빠져나올 때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다 소금기둥이 되고, 겨우 롯과 두 딸이 빠져나옵니다. 두 딸은 자신들의 후사를 위해 몰래 아버지 롯과 근친상간을 하여 아들을 낳았는데요. 그들이 모압과 암몬입니다. 같은 뿌리이면서 이스라엘과는 적대관계를 유지했던 이웃 민족이죠. 어제 블레셋을 우리로 보면 일본쯤 되지 않을까 했는데요. 모압은 어쩌면 우리에게는 북한쯤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말이죠. 

모압에 대한 예언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작부터 잘못된 출발이었거니와 그들은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고, 늘 하나님과 적대관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스라엘이 모압을 벌레 보듯 한 이유도 있었겠지만 어쩌면 같은 가족인데도 오히려 틀어지고 다투면 남보다도 못한 악한 감정이 있듯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조차 그들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존재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주님을 떠나 돌아오지 않는 이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는 당연해 보이죠. 그런데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어떤 결과보다 메시지이기에 모압의 멸망에 대한 예언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를 묵상하고 싶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모압이 굉장히 잘 나는 나라였던 것 같아요. 2절에 보면, ‘모압의 영화’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모압이 한때 잘 나갔다는 의미겠죠. 7절에는, "모압아, 네가 너의 손으로 만든 것들과 너의 많은 보물을 의지하였다.”라는 내용도 나오죠. 그들에게 많은 보물도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만든 문명들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발달한 문명을 지니며 발전한 나라라는 것이죠. 그뿐만이 아닙니다. 11절에 보면, "모압은 일찍부터 안전하게 살았으며, 포로가 되어 끌려가 본 적이 없었다.”라는 말이 나와요. 이는 이스라엘과 매우 비교되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은 늘 외세의 공격에 시달렸고, 끊임없이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게다가 결국 포로로 끌려가는 일들도 겪죠. 그런데 모압은 이스라엘과 비교될 만큼 안전했습니다. 늘 평안했고, 포로로 끌려가는 수모나 어려움도 없었어요.  

여기서 모압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이유를 저는 발견합니다. 아무리 잘 나가도, 아무리 많이 가져도, 하나님 없이는 그 심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의미죠. 이미 블레셋의 문제에서 묵상한 대로 자신의 힘만을 믿는 교만은 자신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도우심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는 기도 없이 살 수 없습니다. 만약 나의 잘나감이 기도하지 않게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잘나감이 아닙니다. 나의 편안함이 하나님을 잊게 만든다면 그 편안함은 우리에게 독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삶이든, 어떤 일이든, 우리는 주님과의 관계가 긴밀히 연결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분의 도우심을 받고, 또한 그분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하죠. 문제가 생겨서 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 그 문제의 삶이 축복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문제가 없는 평안이라 할지라도 그로 인해 주님께 기도하지 않는 삶이라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의 삶일지도 모릅니다. 
 
때론 우리와 가까운 이웃이 더 잘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믿지 않는 이웃이 더 잘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예수 안 믿어도 잘 나가고, 돈 잘 벌고, 잘사는 이웃들이 있어요. 그에 비하면 우리는 늘 어렵고, 늘 눈물 없이는 못 살고, 늘 주님께 애원해야 하는 삶을 사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그게 복이에요. 늘 주님이 필요하고, 그분을 부르짖고, 그분을 붙잡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삶,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축복인지도 모릅니다. 결국 그 삶이 주님의 구원이 마치는 삶이기 때문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아무 문제 없이 지나가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 아무 문제 없음이 나를 주님과 관계없고, 주님께 묻지도 매달리지도, 생각나지도 않게 하는 삶이라면 차라리 문제 많은 삶이 더 낫습니다. 그래서 아무 문제 없고,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면 우리는 주님께 감사할 수 있어야 하는 거죠. 그 감사가 우리의 편안을 평강으로 바꾸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의 편안은 교만이 될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모두 안전하고 풍요로운 하루이길 빕니다. 더 나아가 그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임한 축복으로 여기는 감사가 넘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주님의 은총을 품고, 주님과 교제하며 사는 하루가 되시길 빕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