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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예레미야묵상

예레미야서묵상 83 - 순종은 항복입니다. 예레미야 32:36-44

오늘은 순종의 결과에 대한 말씀입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지만 말씀에 순종하는 자의 결과입니다. 
39절,    “그들 자신뿐만 아니라, 그들의 자손들까지도 길이 복을 받게 하겠다.”
40절,    “그때에는 내가 그들과 영원한 언약을 맺고, 내가 그들에게서 영영 떠나지 않고, 그들을 잘되게 할 것이다.”
41절,    “나의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들이 이 땅에 뿌리를 굳게 내리고 살게 하겠다."
42절,    "그들에게 약속한 모든 복을 베풀어 주겠다.”
이 모든 약속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기를 간절히 빕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순종에는 조건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조건이 아닙니다. 결과일 뿐이죠. ‘열심히 살면 복이 올 거야’라는 말과 ‘열심히 살았더니 복이 오더라’라는 말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말입니다. 조건이 있는 열심은 초점이 복입니다. 그것도 자신이 원하는 복이죠. 그래서 열심의 결과를 자신이 찾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주어지지 않으면 언제든 그 열심을 버립니다. 그런데 열심을 삶의 초점으로 두는 사람에게 복은 보너스입니다. 그는 자신이 찾는 복이 아니라 주시는 복을 감사해하죠. 내가 원하는 복이 아니라 주시는 모든 것이 복이 되는 삶입니다. 순종이 그렇습니다. 순종에는 조건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조건이 있는 것은 순종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순종이 아니라 거래일 뿐입니다. 순종은 삶의 결단입니다. 나의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히브리 단어 가운데 ‘야다’라는 말이 있는데요. 그 본래 의미가 손을 든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시편에 보면 손을 들고 찬양한다는 표현이 많이 나오죠. 이 ‘야다’는 본래 항복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내가 항복을 하는 것입니다. 항복이란, 나의 뜻을 내려놓고 상대방에게 모든 권리를 이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를 죽이든 살리든 그 권리를 너에게 준다’는 의미죠. 여기에는 조건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내가 항복했으니 나를 살려야 한다는 조건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를 어떻게 하든 상관없음을 의미하는 것이 항복입니다. 바로 순종이 그렇습니다. 순종은 항복입니다. 주님께 모든 권리를 드리는 것입니다. 결과가 어떠해도 괜찮다는 의미죠. 그것이 순종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순종의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복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복을 바라지 마시고 그냥 순종하세요. 그러면 복이 옵니다. 결과를 위해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니까 결과가 오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복이 임하는 이유는 내가 모든 권리를 내려놓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나의 욕심과 뜻을 접고 그분의 뜻에 맡겼기 때문입니다. 나의 것으로 가득 찰 때는 하나님이 일하시지 못합니다. 주님께 맡길 때 주님이 일하십니다. 그것이 복을 부르는 것이죠. 순종은 그런 것입니다. 주님께 권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때 주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는 비로소 그의 백성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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