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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예레미야묵상

예레미야서묵상 85 - 모든 소망은 바로 예수를 품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예레미야 33:14-26

30장서부터 이어진 회복의 말씀은 오늘 본문으로 마무리됩니다. 어쩌면 회복의 결론이라고 해도 될 것 같네요. 이미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이스라엘 역사의 회복을 선포하셨습니다. 포로 된 이들이 돌아올 것을 예언하셨죠. 잃었던 땅을 되찾고, 억압받던 삶에서 해방의 자유를 만끽하는 미래도 예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최종적인 회복의 결말을 말씀하고 계시죠.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15절에 ‘한 의로운 가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 같아요. 다윗 가문에서 태어난 예수께서 세상에 공평과 정의를 실현한다고 선포합니다. 그를 통해 구원이 이루어짐도 선언하시죠.

이것을 새 언약이라고 합니다. 이 부분을 조금 설명해야 할 것 같네요. 로마서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롬 5:15. 한 사람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으나,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더욱더 넘쳐나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란 최초의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겠죠. 그를 통해 이 땅을 다스리게 하셨으나 그가 죄 가운데 빠짐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죄의 굴레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를 기준으로 삶을 가르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율법이죠. 그러나 이 율법은 완전한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었습니다. 법은 죄인을 정죄할 수는 있어도 의인을 만들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잘못하지 않는다고 좋은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죠. 그래서 새로운 언약이 필요했습니다. 우리의 행위로 얻어지는 구원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구원을 계획하신 것이죠. 이유는, 우리의 행위로는 구원에 이를 가능성이 적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바라셨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습니다. 마치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닌, 그분의 이름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이게 좀 도둑놈 심보처럼 보이죠? 아무 노력 없이 얻는 것처럼, 혹은 예수님의 이름을 빙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본래 사랑이 그래요. 사랑은 받을 권리가 있어서 받는 것이 아니거든요. 사랑스러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이방인도 할 수 있다잖아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거기에 초점이 있습니다. 사랑받기 어려운 사람,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에게까지 그분의 사랑이 미치기를 원하셨다는 것이죠. 그것이 새 언약입니다.

말이 좀 어려운가요? 제 말로 이해를 구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짧은 소견으로 그리스도의 크고 은밀한 비밀을 다 말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 모두에게 이해의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런 은혜를 믿고 더 어려운 이야기를 하나 하고 오늘 묵상을 마칠까 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새 언약이 어떻게 실현되는가? 하는 점이에요. 많은 분이 교회의 십자가를 쳐다봅니다.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을 떠올리기 위해서죠. 그러나 그 십자가에는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교회에 걸린 십자가는 그저 나무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십자가에 능력이 있는 이유는, 그 십자가를 바라보는 우리들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품은 우리들이 바로 십자가로 살기 때문에 십자가에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고, 다시 하늘 보좌로 가신 이유는 우리를 믿으셨기 때문이에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품고 살아갈 것을 믿으셨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에게 이 땅을 다시 위임하신 것입니다. 한 사람에 의해 죄가 들어왔듯이 한 사람에 의해 은혜가 시작됩니다. 그 은혜는 오늘도 한 사람에 의해 퍼져 나가죠. 그래서 하나님의 언약은 오늘도 우리, 바로 나를 통해 성취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십자가가 십자가에 머문다면 그것은 율법이나 다름없습니다. 십자가는 내 마음에 머물고, 또한 내가 가는 곳, 내가 서는 곳에 드러나야 비로소 십자가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성경책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분의 이름이 곧 나의 이름이 되어, 나의 이름이 곧 그분의 이름 되어 살 때,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의 새 언약이 성취되는 것이죠. 예레미야의 예언은 어쩌면 오늘 이 글을 읽는 나에 대한 예언인지도 모릅니다. 나로 인해 공평이 이루어지고, 정의가 실현되며, 모든 이들의 구원을 이룰 오늘을 말하는지도 몰라요. 아직 밖이 어둡습니다. 해가 나고 밝아져 오겠죠? 또다시 뜨는 해는, 우리에게 주신 또 다른 기회입니다. 혹여 어제 실패했어도, 오늘 새롭게 이룰 예언의 성취를 위해 주신 하루이길 빕니다. 우리가 바로 예언을 성취하는 주인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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