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묵상45 -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남겨 두세요. 사사기 13:15~25

2019. 9. 5. 07:01묵상하는말씀/사사기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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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본문에서 눈에 띄는 구절을 찾기 힘들었는데요.
오늘은 유독 눈에 띄는 구절이 많네요.
구절을 구분해서 하나씩 말씀드릴 정도로 말이죠.

말씀 묵상을 할 때 보면 곧잘 이럴 때가 있습니다.
주시는 말씀이 많을 때도 있고, 말씀을 찾기 어려울 때도 있죠.
오늘은 그런 생각이 드네요.
말씀이 찾기 어려울 때도 말씀은 존재하고,
말씀이 많을 때에도 오늘 나에게 주시는 말씀 ‘하나’가 있다고요.
우리는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들춰낼 필요도 없습니다.
또한 너무 팩트에 입각해서 우리의 느낌을 배제할 필요도 없어요.
물론 말씀을 팩트에 기초해서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묵상은 말씀을 나에게 적용하는 것이죠.
각자의 상황과 환경은 다 다릅니다.
또한 주시는 말씀도 다 다르죠.
묵상은 그렇게 나에게 하시는 말씀을 찾는 것입니다.
주시는 말씀이 많을 때는 그중 하나만 오늘 적용해서 마음에 새기세요.
주신 다른 말씀은 또 나에게 주어질 기회가 있을 테니까요.

오늘 본문은 마노아가 주님을 대접하는 장면이 나오죠.
예배가 그렇습니다.
은혜에 감사해서 주님을 찬양하고, 주신 복에 감격해서 그 앞에 엎드리는 것이죠.
그런데 마노아는 지금 자신이 만난 분이 누구인지 몰랐던 것 같아요.
이름을 묻는 것을 보면 그래요.
여기서 주님의 자기소개가 나옵니다.
주님의 이름을 스스로 밝히는 장면이죠.
‘나의 이름은 비밀이다’라고요.

이 부분이 조금 오해의 소지가 있네요.
비밀이라는 말이 마치 내 이름을 밝히지 않겠다는 뜻으로 비치는 데요.
새번역에 비밀이라고 번역된 히브리 단어는 [펠레]입니다.
이 단어가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 있죠.
이사야 9:6입니다.
사 9:6    한 아기가 우리를 위해 태어났다. 우리가 한 아들을 모셨다. 그는 우리의 통치자가 될 것이다. 그의 이름은 '놀라우신 조언자',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화의 왕'이라고 불릴 것이다.

여기에는 주님을 표현하는 4가지 이름이 나오는데요.
그중, 놀라운 조언자라고 번역된 단어가 [펠레 야아츠]입니다.
야아츠라는 단어는 상담자, 돕는 자, 조언자라는 뜻이고요.
펠레가 ‘놀라운’으로 번역되었죠.
개역성경에는 이를 ‘기묘라 모사라’라고 번역해 놓았어요.
새번역이 개역 번역보다 한결 나은 것은 사실이지만 오해도 불러일으킬 것 같아요.
오늘 본문의 ‘비밀’이라는 번역을 오히려 ‘신비’로 했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놀라운’이라는 번역도 그저 놀라움이 아니라 신비스러운 놀라움이기 때문이죠.
다른 말로 한다면, 인간의 생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놀라움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일을 우리는 다 알 수가 없습니다.
알아도 이해하기 힘들죠.
가끔 리더로서 결정을 해야 할 때가 있어요.
그때마다 생각이 드는 것이 있습니다.
제가 한 부서를 맡아 일하던 부목사 시절에는 담임목사님의 결정을 이해 못할 때가 많았어요.
분명히 잘못된 일들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덮는 모습을 보면 비겁하다는 생각까지 했으니까요.
저런 것이 처센가 싶을 만큼 불편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 리더의 자리에 서보니 옳은 것만으로 하기가 어렵더라고요.
한 사람의 상처, 한 사람의 아픔에 눈을 감기 힘들어 모호한 결정을 할 때가 있습니다.
혹은 다수의 의견을 따르지 못할 때가 있어요.
많은 비난과 오해를 받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작은 불씨 하나 때문에 변명조차 하지 못하는 때가 있어요.

나의 자리에서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죠.
나의 관점에서는 하나님의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느낄 때도 있어요.
그분의 사랑조차도 그 깊이가 어떤지 알지 못하죠.
그분에게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세요.
‘신비’가 그분의 이름이니까요.
신비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잖아요.
그렇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남겨 두세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데에서 주님의 깊은 사랑이 나오고,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데에서 주님의 십자가의 놀라운 은혜가 주어집니다.
그러니 이해가 정답은 아니에요.
이해가 목적도 아닙니다.
그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공간을 존중하자고요.
다 이해할 수 없어도 그분은 나의 하나님이시고,
다 이해할 수 없어도 그분은 나를 지키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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