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7. 30. 07:15ㆍ묵상하는말씀/사사기묵상
요즘 한일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자발적인 불매운동들이 벌어지고 있는데요.
어제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어느 세차장에서는 일본 자동차에 대한 세차를 거부했다는 겁니다.
‘그렇게까지…’라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나름 의미가 있더라고요.
이 불매운동이 단순히 형식적인데 그치지 않고, 자기들이 서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 생각하다 보니 세차장에서까지 거부운동이 일어난 거죠.
사람에 따라서 이런 상황에 대해 여러 생각이 존재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민족주의나 우리 편, 이런 것 강조하는 것이 낡은 사고처럼 보이기도 하죠.
그러나 이 일을 정의의 측면에서 보면 또 다른 생각이 들기도 해요.
이번 불매운동을 단순히 민족적 대결로 보기보다, 오히려 정의에 대한 외침으로 보인다면 어쩌면 지당한 것이 될지도 모르죠.
이 사건을 촉발시킨 것은 부당노동행위를 한 일본 전범 기업들에 대한 배상 판결 때문이죠.
일본의 대표적인 전범기업들은 한국의 노동자들을 데려다가 강제로 노역을 시키고 이에 대한 임금을 지불하지 않았습니다.
기업으로서는 노동력 착취죠.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일본이 한국 지배를 정당화했기 때문이고,
한국은 일본은 노예였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노예에게 임금을 줄 필요도 없고요.
아직도 일본은 한국 강점을 침략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죠.
오히려 일본의 지배로 한국이 복을 받았다는 논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논리는 일본의 지원을 받는 한국 지식인들의 오래된 레퍼토리가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군부가 불법적인 방법으로 정권을 잡아도 경제를 일으켰으니 좋은 것 아니냐는 논리와 똑같습니다.
그러니 소위 위안부라는 성노예 피해자들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이 되어버리죠.
괜히 아침부터 일본에 대한 말로 열 받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아무튼 이 문제는 한국 대 일본의 문제가 아니라 옳고 그름의 문제이고요.
지금 한국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그 옳고 그름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작지만 내가 일하는 자리에서 말하겠다. 일본 너희가 틀렸다고..” 이런 느낌으로 다가오네요.
오늘 본문도 드보라와 바락의 노래가 이어집니다.
오늘 본문은 시작은 이렇습니다.
10 흰 나귀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아, 양탄자를 깔고 사는 사람들아, 길을 걸어가는 행인들아, 사람들에게 전하여라.
나귀 탄 사람들은 신분이 높거나 부유한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양탄자라고 번역된 단어가 있는데 이것은 말 위에 담요를 깔고 타는 것을 의미하죠.
그러니까 다르게 번역한다면 안장쯤 되겠습니다.
이에 비해 길을 걷는 행인도 있는데요.
대비한다면 신분이 높거나 부유한 사람들에 비해 평범한 사람들을 의미하겠군요.
이는 높던 낮던, 많던 적던, 모든 사람들이 주님을 찬양하라는 외침입니다.
또 11절에는 이렇게 되어 있네요.
11 물 긷는 이들 사이에서 들리는 소리, 활 쏘는 사람들의 요란한 저 소리, 거기서도 주님의 의로운 업적을 들어 말하여라.
물 긷는 곳은 삶의 필수적인 곳이죠.
다시 말하면 자신의 삶의 자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활 쏘는 사람들의 요란한 소리,
저는 이 부분이 이렇게 들리네요.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 소리라고요.
그러니까 일상의 모든 생활 속에서, 또한 내가 일하는 터전에서 주님을 찬양하라고 노래는 외칩니다.
주님을 찬양하는 자리는 그런 자리예요.
나의 일상의 자리, 나의 삶의 터전에서죠.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렸죠.
나의 믿음이 드러나는 때는, 가장 힘들고, 어렵고, 벽에 부딪쳐 움직이지도 못할 그때라고요.
주님을 찬양하는 자리는, 우리가 다 모여서 예배하는 교회의 자리가 아니라
내가 열심히 일하고, 내가 삶의 터전으로 생각하는 그 자리죠.
예배는 그곳에서 빛을 발합니다.
왜 그래야 할까요?
11절은 계속 말합니다.
11 … 이스라엘 용사들의 의로운 업적을 들어 말하여라. 그때에 주님의 백성이 성읍으로 들어가려고 성문께로 내려갔다.
그때에 주님의 백성들이 성읍으로 들어가고 성문으로 내려갔다고요.
그때에 사람들이 주님을 알고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였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주님을 찬양해야 할 곳은 여러분의 사무실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이고, 학교이고, 친구들과 만난 자리예요.
가장 평범한 그 자리, 가장 많은 시간을 갖는 그 자리,
그 자리에서 주님을 찬양하세요.
그 자리에서 주님이 하신 일을 외치세요.
그렇게 승리의 노래를 부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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