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서묵상일기124 - 오직 생명을 위해 산 일만 기억됩니다.

2021. 4. 9. 06:42묵상하는말씀/사무엘서묵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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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31:11~13  길르앗 야베스의 주민들은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에게 한 일을 전해 들었다. 그래서 그들의 용사들이 모두 나서서, 밤새도록 걸어 벳산까지 가서, 사울의 주검과 그 아들들의 시체를 성벽에서 내려 가지고 야베스로 돌아와, 그 주검을 모두 거기에서 화장하고, 그들의 뼈를 거두어다가 야베스에 있는 에셀 나무 아래에 묻고, 이레 동안 금식하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우리가 사는 하루하루가 훗날 모두 기억되지는 않죠. 지나고 보면 어느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유독 기억이 나는 날이 있죠. 주로 기념일 같은 날들이 그렇습니다. 특별한 추억이 담긴 날들이 있고, 그 날은 거의 생생하게 기억되죠. 행복이라는 것이 사실 이 기억에 의존할 때가 많아요. 좋은 추억과 기억들이 나의 머리에 많이 있을 때 우리는 행복을 느낍니다. 반면 나쁜 기억들도 우리의 뇌리에서 잘 떠나지 않아요. 충격을 받았거나 상처를 입은 일들도 우리의 기억에 또렷합니다. 그런 기억이 더 많아지면 우리의 삶은 행복에서 멀어지는 것 같아요.

 

참 감사한 것은 주님께서도 우리를 기억해 주신다는 것인데요. 그분은 분명하게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좋은 날만 기억해 주신다고 말이죠. 우리의 죄, 우리의 잘못은 잊어주신다는 것이죠. 그리고 오직 우리의 선함과 의만 보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의롭게 사는 날들을 기억하시고 기쁨의 노래만을 기억하신다고 하시죠. 이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겠습니까? 다른 사람이 나의 좋은 모습만 기억한다고 한다면 얼마나 기쁘겠어요. 이는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나를 향한 하늘의 기록은 오직 의롭고 감사한 일만 기록될 것입니다. 내가 감사하며 산 날들이 나의 기억에 더 많이 남을 거고요. 그 기억은 우리의 행복으로 이어집니다. 오늘이 그렇게 기억나는 날이 되기를 간절히 빕니다. 감사로 하는 하루, 의로움이 기억되는 하루, 생명을 위해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다하는 하루, 그렇게 하늘과 내 가슴에 새겨지는 뿌듯한 하루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제게는 늘 마음에 품고 사는 성경구절이 있는데요. 시편 27:4의 말씀입니다.

"주님, 나에게 단 하나의 소원이 있습니다. 나는 오직 그 하나만 구하겠습니다. 그것은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살면서 주님의 자비로우신 모습을 보는 것과, 성전에서 주님과 의논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제게도 단 하나의 소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죽는 날, 다른 사람도 아닌, 나를 가장 잘 알고, 내게 가장 가까이 있었던 내 자녀들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내 아버지는 참 그리스도인이셨다"

권력을 가졌을 때는 모든 사람이 친구인 것처럼 보입니다. 자신이 뜻하는 대로 할 수 있는 힘이 있을 때는 모든 일이 옳은 것처럼 보이죠. 그러나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자신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는 그가 죽었을 때야 드러납니다.

사무엘상이 오늘로 막을 내리네요. 사무엘상의 주인공 중의 한 사람이었던 사울의 죽음으로 끝이 납니다. 그가 죽는 자리는 왕답게 전쟁터였습니다.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다 전사한 것이죠. 마지막까지 사울은 이스라엘 민족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주검은 훼손되어 적군들의 전리품으로 전락했습니다. 전쟁에 승리한 쪽은 상대방의 최고 권력을 죽이는 것이 가장 큰 전과인지라 그 주검을 만방에 알리는 것이 다반사였습니다. 블레셋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란 듯 사울의 주검을 벳산의 성벽에 매달아 놨습니다.

이렇게 훼손된 사울의 주검을 수습한 이들이 있었는데요. 그들은 길르앗 야베스 주민들이었습니다. 저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왜 하필 길르앗 야베스 주민이었을까? 하는 것이죠. 사울의 주검이 매달린 곳은 벳산인데요. 벳산은 길보아 산 아래 요단강 서편에 있는 도시입니다. 이에 비해 길르앗 야베스는 요단강 동편에 위치해 있죠. 거리상으로는 그리 멀리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지형상 그 사이에 요단강이 흐르죠. 보통 요단강을 기점으로 이스라엘은 동과 서로 나뉩니다. 그만큼 간극이 있다는 뜻이죠. 그런 의미로 보면 길르앗 야베스는 벳산에서 먼 곳입니다. 그러니 길르앗 야베스의 주민이 가장 먼저 사울의 주검을 수습했다는 것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가까운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수습하지 않았다는 말이 되죠. 자신들의 왕이었는데도 말입니다. 자신들을 위해 전쟁을 하다가 전사한 왕이었고요. 그래도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자 40년간 통치한 왕인데도 말입니다.

권력이나 힘이나 재물은 죽으면 사라집니다. 나의 권위가 어디에 근거했는지는 죽으면 드러납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3:12~13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 이 기초 위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집을 지으면, 그에 따라 각 사람의 업적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 날이 그것을 환히 보여 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길르앗 야베스 주민이었을까요? 그들이 사울과 어떤 연관 관계가 있을까요? 찾아보니 이 해답은 사무엘상 11장이 말해줍니다. 사울이 왕이 되어 암몬의 침략으로부터 길르앗 야베스를 지켜주었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이것을 잊지 않고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오직 생명을 살리는 일만 남습니다. 생명을 위해 산 일만 기억됩니다. 자신을 위한 일은 기억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오직 생명을 위해 일한 것뿐입니다. 하늘의 기록 또한 그렇고, 우리의 기억 또한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의 흔적은 오직 생명을 위해 일한 것만 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기적도 부르고, 모든 역사의 기록도 됩니다. 그렇게 우리의 이름이 새겨지죠. 

우리는 오늘, 무엇을 남기며 살게 될까요? 성문 밖 길거리에 버려진 내가 아닌 주님이 손수 어루만지시는 인생이 되는 것은 바로 오늘 내가 무엇을 남기며 사느냐에 달려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오늘이 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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