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서묵상일기 333 - 작은 목소리에 귀를 여는 자가 성장합니다.

2025. 7. 1. 05:00묵상하는말씀/누가복음서묵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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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서 20:1~8   예수께서 어느 날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기쁜 소식을 전하고 계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 장로들과 함께 예수께 와서 말하였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합니까? 누가 이런 권한을 당신에게 주었습니까? 어디 우리에게 말해 보십시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나도 너희에게 한 가지 물어보겠으니, 나에게 대답해 보아라.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난 것이냐? 사람에게서 난 것이냐?" 그들은 자기들끼리 의논하면서 말하였다. "'하늘에서 났다'고 말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않았느냐'고 할 것이요, '사람에게서 났다'고 말하면, 온 백성이 요한을 예언자로 믿고 있으니, 그들이 우리를 돌로 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났는지를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를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좋은 아침입니다. 7월이 시작되었습니다. 습도 높은 무더위가 우리를 지치게 하지만, 새로운 한 달을 허락해 주신 은혜를 기뻐하며, 어제와는 또 다른 새로운 기회로 오늘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며칠, 몸이 좋지 않아서 묵상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죄송한 마음을 전하고, 여러분들도 늘 건강하시길 간절히 빕니다.

오늘 본문은 당시 유대의 최고 종교 의결 기관인 산헤드린 공의회에서 나온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 그리고 장로들이 예수님께 와서 따져 묻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그들의 질문은 간단명료합니다. 

“당신이 무슨 권한으로 성전에서 상인들을 내쫓고, 백성을 가르치는 겁니까?”

성전에서 장사하는 것을 허락하고 관리하며, 율법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일은 오직 자신들만의 고유 권한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디서 굴러 들어왔는지 모를 한 청년 예수가 성전의 질서를 뒤엎고, 심지어 백성을 가르치기까지 하니, 그들의 눈에는 예수가 자신들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깽판’을 치는 것으로 보였을 겁니다.

이에 예수님은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난 것이냐, 사람에게서 난 것이냐?”하고 되물으십니다. 이 질문은 참으로 지혜롭습니다. 왜냐하면 이 질문이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을 딜레마에 빠뜨렸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늘에서 난 것’이라 답하면, 그들은 세례 요한을 믿고 따르지 않은 자신들의 불신앙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됩니다. 반대로 ‘사람에게서 난 것’이라 답하면, 세례 요한을 위대한 예언자로 여기는 수많은 백성의 거센 저항에 부딪힐 것이 뻔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진리 앞에서 ‘모른다’고 답합니다.

이 모습은 진리가 아닌 자신의 이익과 권력, 기득권 카르텔에 갇힌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정치적’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겠지요. 자신의 유불리를 따지며 이 눈치, 저 눈치를 보느라 정작 가장 중요한 진실을 외면하고 맙니다.

원래 대제사장과 율법학자의 자리는 백성을 위해 섬기라고 주어진 자리입니다. 그러나 어느덧 그들은 그 본분을 망각했습니다. 권력은 더 이상 누군가를 위한 봉사의 도구가 아니라,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어디 이 모습이 그들만의 이야기이겠습니까? 우리 역시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직분과 재능, 영향력을 본래의 목적대로 사용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나의 자리, 나의 권리, 나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그것들을 사용할 때, 그 귀한 선물은 다른 사람을 차별하고 상처 입히는 날카로운 무기가 되어버립니다. 선거철만 되면 온갖 감언이설로 고개를 숙이다가도, 권력의 자리에만 오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 국민 위에 군림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이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곤 합니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우리 자신도 그런 권력의 논리를 내면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어떤 말이 진리인가를 보기보다, ‘누가’ 그 말을 했는가를 먼저 따집니다. 사회적으로 명망이 높고, 화려한 학벌을 가진 사람이 하는 말은 경청할 가치가 있다고 여기지만, 힘없고 내세울 것 없는 평범한 사람의 조언은 아무리 그것이 옳고 사랑에서 비롯된 말이라 할지라도, 나의 알량한 자존심과 이익을 위해 쉽게 무시해 버립니다.

그거 아세요?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가장 미천하고 연약한 자의 목소리로 오셨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만약 오늘날 예수님께서 힘없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모습으로, 혹은 사회적 약자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셔서 진리를 외치신다면, 과연 우리는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수 있을까요? 아마 대부분은 ‘헛소리한다’며 무시하거나, 심지어 오늘 본문의 지도자들처럼 그 싹을 자르려 들지도 모릅니다.

기억하십시오. 생명으로 인도하는 진리의 말씀은 종종 크고 화려한 목소리가 아닌, 가장 작고 연약한 목소리를 통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소수의 목소리, 약자의 신음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큰 사람이 될 수 있고, 영적으로 성장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 주변에서 들려오는 작은 목소리들에 마음을 열어보면 어떨까요? 나의 자존심과 편견을 내려놓고, 그 작은 소리에 담긴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기 위해 노력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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