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서묵상일기 272 - 자신을 쳐서 복종케 하는 자가 이깁니다.

2025. 4. 15. 19:22묵상하는말씀/누가복음서묵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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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서 13:28~30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는 하나님 나라 안에 있는데, 너희는 바깥으로 쫓겨난 것을 너희가 보게 될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면서 이를 갈 것이다. 사람들이 동과 서에서, 또 남과 북에서 와서, 하나님 나라 잔치 자리에 앉을 것이다. 보아라, 꼴찌가 첫째가 될 사람이 있고, 첫째가 꼴찌가 될 사람이 있다."


오늘은 [자신을 쳐서 복종케 하는 자가 이깁니다.]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마음을 열어 말씀이 육신이 되는 은혜가 임하길 기도합니다. 


어릴 적 이런 생각 해보신 적 있나요? "왜 저 친구는 나보다 늦게 시작했는데도 나보다 더 잘 되지?"
혹은, "나는 열심히 살아왔는데 왜 자꾸 실패만 반복될까?” 한때 저에게도 그런 생각이 있었습니다. 모범생이었고, 말씀도 열심히 지켰다고 자부했는데, 정작 제 옆자리에 앉은 친구가 갑자기 은혜받고 인생이 바뀌는 걸 보면서 당황스러웠죠. 내가 먼저 하나님께 충성했는데, 왜 저 친구가 더 인정받는 것처럼 보일까?


오늘 본문인 누가복음 13장 28~30절은 우리 인생에 그 반전의 가능성을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서 13:30   “보아라, 꼴찌가 첫째가 될 사람이 있고, 첫째가 꼴찌가 될 사람이 있다.” 

 

언뜻 들으면 불편한 말씀입니다. 지금껏 열심히 신앙생활 해 온 사람에겐 “이게 뭐지?” 싶은 말씀이죠. 하지만 이 말씀에는 하나님 나라의 질서, 곧 겸손과 자기 성찰, 그리고 끊임없이 변화되는 자의 승리에 대한 깊은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먼저된 자는 누구인가?

 

예수님 당시의 “먼저 된 자들”은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들 중에서도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바리새인이나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하나님 나라에 당연히 들어간다고 생각했어요. 오늘 본문 말씀의 에피소드는 소위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제목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기억하십니까? 어떤 한 사람의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었죠. 그 질문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누가복음서 13:23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이 질문의 의도를 지난주간 매일묵상에서 설명드렸죠? 이 질문의 속뜻은 이런 것입니다.

 

“주님, 우리만 구원받는 거 맞죠?”

 

왜냐하면 그들은 선택받은 민족이고, 율법을 지키는 자들이니 구원은 자신의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늘 이렇게 말하고 다녔죠.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율법도 알고, 성전도 지켰고, 예배도 잘 드렸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오늘, 그들에게 충격적인 선언을 하십니다:

 

누가복음서 13:28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는 하나님 나라 안에 있는데, 너희는 바깥으로 쫓겨난 것을 너희가 보게 될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면서 이를 갈 것이다. 

 

※나중된 자는 누구인가?

 

자격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쫓겨나고, 오히려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 이방인, 세리, 창기, 죄인들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고 하셨죠. 왜냐하면 그들은 스스로 죄인임을 인정하고 예수 앞에 엎드렸기 때문입니다. 그 겸손함이 그들을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이끈다고 말씀하시는 거죠. 이건 당시로선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정작 하나님의 나라 문턱에도 못 들어간다니 놀랄 수밖에요.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것일까요? 그 이유는 명확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자격은 혈통이나 전통이 아니라 겸손한 믿음과 회개에 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의롭다고 믿는 사람들이 아니라 오늘도 주님의 뜻을 찾고 나를 말씀에 비춰 깨뜨리고, 고치고, 새롭게 하는 데 있기 때문이죠. 

 

오늘날도 “먼저 된 자”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가 옳다고 굳게 믿는 사람, 자기 경험이 정답이라 생각하는 사람, 남의 말은 듣지 않고,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진정 “먼저 될 자”는, 늘 자신을 돌아보며, 말씀으로 자신을 비추며, 모든 상황에서 배우려는 자라는 것을요.

 

심리학자 캐롤 드웩(Carol Dweck)은, 인간의 마음 자세를 두 가지로 구분했습니다. 하나는 ‘고정형 사고방식(Fixed Mindset)’이고요. 다른 하나는 ‘성장형 사고방식(Growth Mindset)’입니다. 고정형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나는 원래 이래”라고 말하죠. “내 성격은 못 바꿔”, “그건 나랑 안 맞아” 이런 식으로 변화를 거부하는 태도를 갖습니다. 그들은 비판을 회피하고 실패를 수치로 받아들입니다. 반면, 성장형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실패했지만, 이것으로 많은 것을 배웠어”라고 말한답니다. 실패를 배움의 기회로 여긴다고 해요. 고난에서도 배우고, 비판을 수용하며, 자기 성찰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놀랍게도, 성경은 오래전부터 이것을 말해 왔습니다:

 

누가복음14:11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면 낮아질 것이요, 자기를 낮추면 높아질 것이다.”

 

히브리서12:6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사람을 징계하시고,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신다.”

 

놀라운 건, 이 작은 차이가 성공과 실패를 갈라놓는 큰 요소라는 것이죠. 배움 앞에서 겸손해지는 사람, 자기 고집을 내려놓고 열린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 그런 사람이 결국 ‘먼저 되는 자’가 되기 때문이에요.

 

오늘 설교 제목은 제가 한 말이 아니라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하신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그의 말씀은 이렇습니다.  

 

고린도전서 9:27   나는 내 몸을 쳐서 굴복시킵니다. 그것은 내가, 남에게 복음을 전하고 나서 도리어 나 스스로는 버림을 받는, 가련한 신세가 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금욕주의적 표현이 아닙니다. 매일 자신을 점검하고, 고정된 생각에서 벗어나 말씀 앞에 자신을 낮추는 태도를 말하는 거죠. 사도 바울은 늘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전한 복음보다, 앞으로 살아야 할 복음이 그에게는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남에게 보여준 것보다, 하나님과 자신에게 보여줄 삶이 더 소중했기 때문이죠. 

 

※끝까지 배우는 자가 결국 이긴다.

 

"배움은 평생이다.”

 

아주 진부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이지만, 살다 보면 이 말만큼 진리를 꿰뚫는 말도 드뭅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일을 시작하고,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키우고, 그 어느 순간에도 우리는 늘 '처음 겪는 일'을 맞이하게 되죠. 몇 년 전에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끈적이 있죠. 저도 그 드라마는 일부러 찾아보았습니다. 드라마도 드라마이지만 1988년이 제 또래 세대를 담고 있어서 더욱 재미있게 보았죠. 더욱 흥미로웠던 것은 드라마 전반에 여러 가지 생각을 일깨우는 것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중 하나가 기억에 남는데요. 가난했던 주인공 가정은 큰딸 생일에 둘째 딸 생일까지 묶어서 세트로 생일파티를 해주는 장면이 나와요. 그것 때문에 둘째 딸이 서운함을 느끼죠. 어디 그것 하나 때문이겠습니까? 지금까지 늘 언니 거 물려받으면서 살았겠죠. 게다가 언니가 공부까지 잘하니 늘 뒷전이었던 마음이 그날 터져 나왔겠죠. 그 때문에 삐져서 밖에 나가 울고 있는 딸에게 아빠가 하는 대사가 있어요. 그 대사가 계속 제 마음에 남더라고요. 그 대사는 이런 겁니다.

 

“아빠가 미안하다. 잘 몰라서 그랬어.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 그러는데 딸이 조금만 봐주라.”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는 말에 ‘그래, 우리는 모든 것이 다 처음이지? 나이가 들던, 경험이 많던, 우리는 모든 시간이 다 처음이라서 서툰거야’ 싶더라고요. 올해 제가 60세입니다. 저는 60이 처음이에요. 60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전 잘 모릅니다. 처음이니까요. 부모들이 다 처음 자녀를 키우는 거죠. 나이가 많아도, 돈이 많아도, 학식이 높아도, 우리는 다 똑같습니다. 문제는 그 모든 처음들 앞에서 우린 ‘배움의 자세’를 가져야만 버틸 수 있고, 또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에요. 처음이니까요. 그러니 배우고 또 배워야 하는 거죠. 멈추지 않는 배움, 그 속에 인생의 진짜 승리가 숨어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인생을 사는 온전한 태도이기 때문이죠.

 

고대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안다.”

 

이 말이 단순한 겸손의 말이 아니라, 끝없는 배움의 시작점이 된다는 걸 아시나요? 예수님이 말씀하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진리는요, 이런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 자신을 돌아보며 끊임없이 배우려는 사람이 결국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고난에서도, 실패에서도, 아픔에서도, “내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를 묻는 사람, 그 사람이 진짜 ‘먼저 되는 자’예요. "나는 맞고, 너는 틀렸다"는 자세는요, 대화도 단절시키고, 관계도 끊고, 결국 자기 성장을 스스로 가로막는 벽이 됩니다. 나는 이미 다 안다"는 순간, 그 사람은 성장이 멈춥니다. 성경도 말해요.

  
잠언 16:18   교만에는 멸망이 따르고, 거만에는 파멸이 따른다.

 

성장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능력이 아니라 배움의 태도에서 시작됩니다. 실수했을 때, 스스로 탓하기보다 배우려는 사람, 실패했을 때, 포기 대신 의미를 찾는 사람, 타인의 조언 앞에서 방어하지 않고, 귀를 열어 듣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결국에는 내면이 단단해지고, 관계가 깊어지고, 삶이 풍성해져요.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인 최인철씨가 쓴 책 [프레임]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와요.

 

‘나는 세상을 강자와 약자, 성공과 실패로 나누지 않는다. 나는 세상을 배우는 자와 배우지 않는 자로 나눈다.’

 

그는 절대 겸손을 인생의 키워드로 삼으라고 우리에게 말하죠. 우리 교회는 주일 오후에 목장 나눔을 해요. 주일 말씀을 가지고 자신의 생각을 나누죠. 뭐, 보니까 말씀가지고 나누기보다 자기 얘기 하느라 더 바쁜 것 같기도 한데요. 상관없습니다. 누군가 서로 생각을 나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위에 언급한 프레임이 있습니다. 강자와 약자, 성공과 실패로 나누는 나눔이 있다는 거죠. 내 말이 인정받아야 하고, 내 주장이 먹혀야 하고, 내 말이 맞아야 하는 거죠. 간혹 내 말이 안 먹히거나 무시당하면 빈정이 상하기도 합니다. 왜 그러느냐면 모든 삶의 태도가 이기냐 지느냐, 맞았냐 틀렸냐로 나뉘기 때문이에요. 제가 바라는 나눔은 이렇습니다. 누군가를 가르치고, 변화시키고, 계몽하기 위해 목장 모임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늘 말씀드리잖아요? 나만 잘하면 된다고요. 누굴 가르칠 처지가 아니라고 말이죠. 그렇다면 목장 모임을 하는 이유는 분명하죠. 내가 깨지려고 하는 겁니다. 깨진다는 것이 이기고 지는 게 아니죠. 결국은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고, 누군가에게 손을 뻗어 나를 도와달라고 배움을 구하는 겁니다. 우리의 예배가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보시는 중심은 이런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오늘을 처음 맞이하잖아요? 누가 오늘을 이미 경험하신 분 계신가요? 그렇다면 처음 맞이하는 오늘, 겸손히 오늘을 배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주님이 주신 오늘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이고, 그것이 믿음의 본질인 거죠.

 

※끝까지 배우는 자가 복되다.

 

잠언 3:5   너의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의뢰하고, 너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아라.

 

하나님은 우리가 자기 생각에만 기대지 않고, 늘 배우고 의지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배움은 단순히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태도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셨는지도 몰라요. 어린아이의 특징 가운데 가장 중요한 특징이 바로 배움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미 아는 사람이 먼저 되지 않습니다. 여전히 지금도 배우는 사람이 먼저 되는 거예요. 이미 믿은 사람이 천국에 가는 게 아닙니다. 지금도 여전히 믿음을 새롭게 배우는 사람이 이깁니다. “돌은 굴러야 둥글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멈춰 있는 돌은 날카롭고 각지지만, 흘러 다니며 닳고 깎이면서 부드럽고 둥글게 변하죠. 사람도 그래요. 끊임없이 배우고 부딪히고 때로는 실패하면서 진짜로 깊어지고, 단단해집니다. 배우는 걸 포기하지 않는 사람, 자기 확신으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아니라 주어진 시간을 겸손히 받아들이는 사람, 그런 사람이 진짜 인생의 승자입니다.

 

혹시 요즘, 뭘 해도 뜻대로 안 되는 분 계신가요? 그럼 이렇게 한번 물어보세요.  

 

“내가 이 일에서 뭘 배울 수 있을까?”

 

그 질문 하나만으로 삶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할 수 있어요. 끝까지 배우는 자, 늘 겸손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자, 하나님께 배우고 사람에게 배우는 자, 그 사람이 결국 이깁니다. 그 사람이 결국 빛나고, 사랑받고, 쓰임 받게 되어 있어요. 그렇게 자신을 쳐서 복종케 하는 자가 이깁니다. 진짜 이기는 사람은 매일 자신을 돌아보며 겸손히 모든 순간, 모든 일, 모든 사람, 모든 시간 속에서 배우는 사람이란 걸 잊지 않는 여러분 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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