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묵상19 - 오직 하나님만 믿고 서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애달픔이 큰 법입니다. 사사기 6:32-40

2019. 8. 6. 07:12묵상하는말씀/사사기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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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나왔습니다.
아마도 기드온에 있어서 300 용사의 전투만큼이나 유명한 에피소드라면 이걸 겁니다.
기드온의 양털 뭉치 기도 말이죠.
어쩌면 여러분들도 이런 기도를 해 보셨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려주세요.”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만나는 사람에게, 제일 먼저 듣는 말로 길을 알려주세요.”
“나에게 3번 똑같은 일이 일어나면 주님의 뜻인 줄 알겠습니다.”
뭐, 이런 식의 기도 많이 해 보시지 않으셨나요?

저는 기드온이 왜 이런 기도를 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의 의도가 불신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두려워서 그런 것인지 결론을 짓기 힘듭니다.
왜냐하면 시간상 흐름이 그래요.
물론 기드온의 양털 뭉치 기도가 다분히 의도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시험하는 것처럼 보이죠.
그런데 성경은 그가 양털 뭉치 기도를 하기 전의 상태를 적고 있는데요.
34절입니다.
“주님의 영이 기드온을 사로잡으니, 기드온은 나팔을 불어 아비에셀 족을 모아 자기를 따르게 하고,”

이미 기드온이 양털 뭉치 기도를 하기 전,
그는 주님의 영에 사로 잡혀서 나팔을 분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이미 사사로서 마음을 먹고, '스타트’를 한 사람이라는 거죠.
그런데 느닷없이 36절에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참으로 주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나를 시켜서 이스라엘을 구하시려고 하십니까?”

인간의 마음이야 조변석개의 원흉 아닙니까?
조금 전까지 괜찮다가도 지금 이 순간 변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죠.
좀 전까지는 믿음이 충만하다가도 어느 한순간 싸늘하게 식어버리는 것이 우리가 갖은 믿음이죠.
그런 의미로 본다면 기드온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갑자기 두려움이 몰려와서 기드온을 흔들었을 수도 있고요.
얼떨결에 밀려와서 확인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아무튼 상황은 그렇습니다.

이런 정황 증거에도 불구하고 저는 기드온의 의도를 판단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기드온의 불신이나 두려움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이죠.
오늘 제가 주목하는 장면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즉각적인 하나님의 반응이죠.

누군가 나를 의심하고 확인하기 위해 내일 아침 증거를 내놓으라 한다면 기분 어떠시겠습니까?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그런다면요.
그런데 하나님은 두말하지 않으시고 기드온의 요구를 들어주십니다.
이것을 보면 마치 하나님이 더 간절한 것처럼 보이죠.
어쩌면 기드온이 포기할까 봐 하나님이 전전긍긍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쯤 되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 소돔과 고모라로 가는 장면이죠.
그때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거래를 합니다.
의인의 명 수에 따라 이루어지는 구원에 대한 거래죠.
그때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청을 다 들어주십니다.
마치 아브라함보다 더 간절한 소돔과 고모라의 구원을 원하시는 듯 말이죠.

저는 오히려 오늘, 
기드온의 행동보다 주님의 마음에 집중하게 됩니다.
‘왜 하나님께서 더 애가 다셨을까?’
‘왜 하나님께서 기드온의 기도에 즉각적으로 응답하실까?’
이는 다르게 말하면,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는 비결이 되기도 하겠네요.

물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바라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의롭고 복된 길을 가길 원하시죠.
그래서 우리보다 더 우리를 위해 애달프신 것은 맞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콕 집어 기드온의 요구에 반응하시는 것은, 딱 한 가지 이유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앞서 말씀드렸듯이 기드온이 이미 ‘스타트’를 끊은 후이기 때문이라는 거죠.

배수진이라는 말을 아시죠?
물러설 곳이 없는 막다른 길에서의 전투를 말합니다.
기드온은 이제 물러설 곳이 없습니다.
이미 바알의 제단을 허물고, 이름이 알려졌거든요.
이 때문에 미디안과 아말렉이 쳐들어오는 상황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뒤로 빼죠.
자신들하고는 무관하다고, 
기드온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고, 
마치 죄인에게 달아주는 명패처럼 이름도 지어줬습니다.
이런 상황에서의 기드온의 기도가 양털 뭉치 기도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더 애가 다셔서 우리에게 개입하시는 인생을 살아야 하죠.
그러려면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배수진을 치는 것 밖에 없습니다.
믿은 것은 하나님밖에 없는 이들을 하나님이 도우시니까요.
오직 하나님만 믿고 서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애달픔은 커지니까요.
이것이 주님께 응답받는 비결인지도 모릅니다.

주님이 오히려 애가 닳아 전전긍긍하는 인생이 되시길 빕니다.
주님만을 뒷 배경을 배수진을 친 인생 말이죠.
이미 마음의 결정을 하고, 주님의 깃발을 든 인생 말입니다.
그 인생이 주님의 도우심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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