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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이사야서묵상

주님이 날 위해 이 땅에 오심은 고백하는 자에게만 온전한 의미가 있음을 기억하세요

이사야 42:10-17 주님이 날 위해 이 땅에 오심은 고백하는 자에게만 온전한 의미가 있음을 기억하세요.

“한때 나는 길을 잃었어요.
깊은 절망에 빠져 있었죠.
그랬더니 사탄의 올무가 나를 묶어버렸어요.
완전히 사탄의 함정에 빠져 버렸죠.

그런데 주님께서 오셔서 나를 꺼내 주셨어요.
나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으셨죠.
이제 나는 주님만을 따라 삽니다.”

어제 예배를 여는 찬양으로 함께 들은 찬양
Now I’m on my way의 가사입니다.
조금 의역을 하긴 했지만 내용은 얼추 비슷합니다.

이 곡을 부른 브루클린 터버너클 콰이어에 대해 언급해야 할 것 같네요.
이 성가대는 미국 뉴욕의 브루클린 터버너클 교회 성가대입니다.
터버너클(Tabernacle)은 성막이라는 뜻이죠.

지금은 이 성가대가,
미국 최대 음악 시상식인 그래미어워드에서
다섯 차례나 대상을 수상한 바 있고,
오바마대통령 취임식 때 공연을 할 정도로 유명하지만,
그들의 시작을 보면 남다릅니다.

이 교회가 있는 브루클린은 뉴욕의 대표적인 할렘가입니다.
지금은 좀 달라졌다고 하는데 10년 전까지만 해도
일몰 후에는 가면 안 되는 곳 중의 하나가 브루클린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백인 목사가 흑인들을 위해 사역하기 시작하면서
이 교회는 시작되었죠.
주로 알콜중독자, 동성연애자, 에이즈환자, 트랜스젠더 등의
사회적 소수자 혹은 소외자들을 향해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저도 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적이 있는데요.
제 옆자리에 완전히 머리를 밀고, 가죽점퍼에 쇠사슬을 몸에 칭칭 감은,
마치 영화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떼로 몰려다닐 법한 근육질의 남자분이
예배시간 내내 손을 들고 눈물을 흘리면서 찬양을 하는 모습이 기억납니다.

작은 골방에서 홀로 병으로 죽어가던 사람들,
차별받고 소외받아 절망 가운데 놓여 있던 사람들,
냄새나고 더러워 교회마저 거부한 이들을 향해
이 교회는 손을 뻗었고, 그들을 일으키는 방법으로
성가대를 조직해서 찬양했습니다.

그들의 찬양은 딱! 앞서 말한 찬양 가사와도 같았습니다.
절망 가운데 빠져 아무 의욕도 없고,
사탄의 올무에 묶여 어느 때, 어디서나 부정과 낙심,
불평과 저주가 삶을 갉아먹을 때
그들을 알아봐 주시고, 다가와 주시는 주님을 만났다고요.
그리고 이제는 그분을 찬양하며 산다고요.

찬양은 능력이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음악적인 능력이 아닙니다.
기억의 능력이고, 고백의 능력입니다.
내 입술로 시인하는 능력이죠.

어떻게 들리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의 고백은 역사를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바 있는 예언처럼,
우리의 고백은 맡겨놓은 미래처럼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말한 대로, 고백한 대로, 찬양한 대로 나의 미래가 옵니다.
그것이 찬양의 능력이죠.

오늘은 성탄 전날입니다.
예전에는 성탄이브로 밤도 새고, 새벽 송도 돌고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성탄이브가 주는 마음의 감동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도 어제나 다를 바 없는 날이죠.
똑같은 시간, 똑같은 환경과 상황들이 펼쳐지는 날입니다.
그럼에도 성탄이브가 되는 것은
우리가 오늘을 성탄이브로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생일은 있습니다.
그 생일이 특별한 날인 이유는 내가 기억하기 때문이죠.
기억하지 못하는 생일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날 특별한 일이 벌어지거나 놀라운 일이 벌어지지 않습니다.
다만 그날을 기억해 주는 이들이 있기에 특별하죠.
그것은 또한 내가 그들에게 나의 생일을 말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생일이 없는데 생일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요.
생일은 누구나 있습니다.
그리고 옵니다.
다만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의미가 없다는 말씀이에요.
주님의 날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은 그날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날을 기억하는 방법,
그날을 그날답게 하는 방법은
매일 고백하고, 매일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찬양의 능력입니다.

오늘 이 아침에 잠깐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을 태어나게 하신 분이 누구신지,
지금 곁에 있는 이들을 주신 분이 누구신지,
나의 자녀를 주신 분,
그 옛날 낙망하던 시절을 견디게 해 주신 분이 누구신지,
고난의 길을 함께 걸어주신 분이 누구신지,
그리고 지금,
아직도 힘겨운 길이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이기게 해 주시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지…

기억하고 찬양하세요.
찬양하는 입술이 나의 길을 엽니다.
고백하는 입술에 내 미래가 있습니다.
주님이 날 위해 이 땅에 오심은
고백하는 자에게만 온전한 의미가 있음을 기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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