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서묵상일기 15 - 내가 누군지 알면 이깁니다.

2023. 9. 15. 06:50묵상하는말씀/여호수아서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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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서 2:1   의 아들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정탐꾼 두 사람을 보내며 일렀다. "가서, 몰래 그 땅을 정탐하여라. 특히 여리고 성을 잘 살펴라." 그들은 그곳을 떠나, 어느 창녀의 집에 들어가 거기에서 묵었다. 그 집에는 이름이 라합이라고 하는 창녀가 살고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훌쩍 일주일이 지나간 느낌입니다. 그래도 그 시간 가운데 수고를 다하고 최선을 다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그저 지나가는 시간은 없어요. 그 속에 우리의 수고와 땀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칭찬해 주는 것도 우리는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아침은 자기 자신을 먼저 축복하며 시작하시면 어떨까요?

 

어제 이어 같은 본문을 묵상합니다. 어제는 싯딤이라는 장소를 주목했다면 오늘은 정탐에 대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정탐꾼 이야기는 이미 유명한 이야기가 있죠? 모세가 바란광야에서 가나안을 코 앞에 두고 있을 때죠. 바란광야는 현 이스라엘과 시나이반도 사이에 있는 곳으로 가나안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던 때였죠. 그때 정탐꾼 12명을 가나안 땅에 보내죠. 그리고 그 유명한 '메뚜기 같은 존재'라는 희대의 유행어를 만든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 사건은 민수기 13장에 기록되어 있죠. 이후 그들은 가까운 길을 뒤로하고 또다시 먼 길을 돌아서 요단강 동쪽으로 우회하게 되죠. 

 

그런데 오늘 또다시 정탐꾼을 보냅니다. 이제 시대가 변해서 지도자는 모세가 아닌 여호수아입니다. 그리고 정탐꾼은 12명에서 2명으로 줄었죠. 이렇게 2명을 보내는 것이 혹시 민수기 13장의 10대 2로 나뉘었던 결과와 관련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렇게 지금 정탐꾼을 보내는 여호수아는 그때 소수의견을 밝혔던 2명 중의 하나였죠. 그래서 민수기의 정탐꾼이야기와 여호수아의 정탐꾼 이야기는 여러모로 비교가 됩니다.

 

정탐이라는 것이 그리 좋은 의미는 아닙니다. 적진에 몰려 들어가 내부 비밀을 캐내는 일이기 때문에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일이죠.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속고 속이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일이 옳고 그름은 입장에 따라 다를 수 있을지 몰라요. 내 편에서 이루어지면 영웅이지만 상대편 입장에서는 간첩에 해당되기 때문이죠. 다만 저는 이 부분을 정탐꾼의 자세에 대한 부분으로 국한해서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민수기의 정탐꾼 이야기도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분명하죠. 정탐꾼이 어떤 시각을 가졌는지, 어떤 관점에서 보고를 하는지에 따라 엄청난 영향력을 가졌음을 우리가 본 바 있죠. 이것을 성경이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시기 위함이라고 저는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번 정탐꾼의 이야기는 민수기의 이야기처럼 정탐꾼에게 크게 주목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의견은 그리 많지도 않죠. 특별히 그들이 정탐한 내용을 말하는 장면도 없습니다. 그것이 민수기와의 큰 차이죠. 그렇다면 이 정탐꾼은 한 일이 없을까요? 저는 여기서 행간에 숨어있는 정탐꾼의 태도를 찾아보고자 해요. 그들은 여호수아의 말에 일언반구 토를 달지 않고 순종합니다. 거기에는 한 가지 사실이 있어요. 이제 자신이 누구인지를 안다는 것입니다. 민수기의 정탐꾼 10명은 자신들이 어떤 존재인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거대한 가나안 민족들을 보며 쫄았죠. 그들은 엄청난 군사들 같았고, 그에 비해 자신들은 초라한 존재처럼 여겨졌죠. 이는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들의 눈은 틀리지 않았어요. 이미 가나안 민족들은 당시 철기문화를 이룬 선진 민족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무기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기에는 어마무시할 정도였죠. 그들은 상대방을 정확히 보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들이 누구인지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정탐꾼 이야기의 핵심이 있습니다. 손자병법에 유명한 말이 나오죠.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남을 알고 자신을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중심 되는 말은 무엇일까요? 상대방을 알면 이긴다는 뜻이 아닙니다. 상대방도 알아야 하지만 나도 알아야 한다는 뜻이죠. 그래서 손자병법의 이어지는 말은 나를 모르면 반드시 패한다고 되어 있죠. 정탐은 남을 알기 위해서 하는 행동입니다. 그런데 그 행동에 나를 모르면 생각이 완전히 달라지죠. 나를 모르고 보면 그 보는 시각이 완전히 바뀝니다. 아마도 민수기의 정탐꾼들은 보는 것마다 탄성이 터져 나왔을 거예요. 그 탄성은 자신과 비교해서 우월하다는 탄성이었음이 틀림없습니다. 나보다 잘하는 것이 보이는 거죠.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원리입니다. 내가 가진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모르면 남의 것이 더 좋아 보이죠. 내가 가진 것이 얼마나 귀하고 큰지를 알지 못하면 남의 작은 것이 탐나는 법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랑하는 존재인지 알고 계신가요? 나에게 주신 은사가 얼마나 크고, 나에게 베푸신 은혜가 얼마나 귀한지 알고 계십니까? 내가 누구의 자녀이며 우리를 돕는 분이 어떤 분인지 아시나요? 나에겐 어떤 일도 할 수 있는 힘이 있고, 나에겐 어떤 불가능도 없는, 모든 권세와 영광과 능력의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아십니까? 이집트의 압제도, 앞길을 막는 홍해도, 거친 광야와 거센 가나안의 적병들까지 물리치고 돌파하며 끝끝내 승리하시는 주님의 도우심이 있음을 아십니까? 결코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버리지도, 떠나지도 않으시며, 늘 함께 하시는 주님이 계심을 믿으시나 요? 누구도 나를 정죄할 수 없고, 누구도 나를 그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는 그런 귀한 존재가 나임을 알고 계십니까? 

 

내가 누군지 알면 이깁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면 넉넉해요. 내가 누구인지 알면 어떤 문제도 작습니다. 두려움에서 해방시키는 것은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떤 존재인지, 내가 얼마나 사랑받는 사람인지 아는 것에서 시작되죠. 그게 믿음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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