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4. 4. 06:37ㆍ묵상하는말씀/고린도전서묵상
고린도전서 11:27~31 그러므로 누구든지, 합당하지 않게 주님의 빵을 먹거나 주님의 잔을 마시는 사람은, 주님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니 각 사람은 자기를 살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그 빵을 먹고, 그 잔을 마셔야 합니다. 몸을 분별함이 없이 먹고 마시는 사람은, 자기에게 내릴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여러분 가운데는 몸이 약한 사람과 병든 사람이 많고, 죽은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살피면, 심판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어제 날씨 너무 좋았죠? 오늘도 화창한 봄날이 예보되어 있네요. 이 아침에 우리의 마음도 화창을 예보하며 시작하시길 빕니다.
본문은 성만찬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왜 성만찬의 이야기가 등장했는지 기억하시죠? 초대교회는 식탁 공동체였습니다. 여기에는 성만찬이 중심이었죠. 아마도 매번 모여서 식사를 나누고 성만찬을 행했던 것 같아요. 이는 마치 주님께서 나누신 마지막 만찬과 같은 풍경이었을 거예요. 거기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자신의 살과 피를 나누는 예식을 통해 일치와 사랑을 증명하셨죠. 그것이 초대교회의 성만찬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는 구조적인 차별들이 철폐되었던 거죠. 비록 사회적 구조에서는 주인과 종으로 나뉘었으나 교회에서는 주인도 종도 모두 한 형제요 식구였던 셈이었죠. 아마도 주인과 종은 겸상조차 못했을 테죠. 그러나 교회에서는 서로 먹여주고 나눠주는 그런 사회적 구조 혁파가 이루어졌습니다. 어느 때는 늘 종이 닦아주던 발을 주인이 닦아주기도 했을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초대교회의 가장 큰 특징이자 위대함이었죠.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게 흩어졌던 것 같아요. 점점 무뎌지거나 나태감에 빠져들었던 거죠. 여기에는 거짓 교사들도 한몫했을 겁니다. 그들은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거나 심지어 계층도 하나님이 주신 특권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던 모양이에요. 어떤 경우는 주인이 억울했을지도 모릅니다. 자신들만 손해를 보는 것 같았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래서 공동체 식사가 무너지고 성만찬은 그저 가식이 되어 버린 것이죠.
우리 공동체는 매월 첫 주 성만찬 예배를 드립니다. 그런데 그 성만찬이 2,000년 전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나눴던 성만찬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떡도 다르고 포도주도 다르죠. 느낌도 다르고 분위기도 다릅니다. 당연히 마음가지도 다르고 감동도 다르죠. 뭐든지 기념하는 것들은 그날과 다릅니다.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왜곡되기도 하죠. 그래서 기념하는 일은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희미해지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어요. 그래서 기억하는 일은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죠. 예수님께서 성만찬을 기억하고 기념하라 하신 것은 그 성만찬 의식의 행위가 아닙니다. 그분은 그 성만찬에 담긴 의미와 말씀을 기억하라 명하셨죠. 그래서 우리는 의식 가운데 그때의 마음, 그때의 감정, 그때의 분위기를 떠올리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죠. 쉽지 않지만 해야 합니다. 똑같은 예배당에 앉아 있지만 어떤 이에게는 그곳이 주님과의 단독자로 만나는 장소가 되기도 하고, 어떤 이에게는 그저 매번 보는 공간이 되기도 합니다. 공간이 그 의미를 줄 수 없어요. 의식이 우리의 마음을 정해주지 못합니다. 예배는 나만이 의미를 부여하죠. 기념은 나만이 온전한 기억을 만듭니다. 진정한 믿음은 그래서 나만이 할 수 있는 거예요. 누구도 해 주지 못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일을 한다면 그것은 그들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기억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보다 더 많은 생각과 감정을 쓴다는 의미죠. 다른 사람보다 건강하다는 것은 그들보다 한걸음 더 걸었기 때문이고, 다른 이들보다 더 깊은 신앙에 이르렀다면 그만큼 더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기억하고 기념하고 가치를 부여하고 좋은 생각과 좋은 감정을 유지해야 우리는 평안에 이릅니다. 저절로 되는 법이 없어요. 오늘 하루가 저절로 나에게 평안을 주는 법은 없습니다. 그만큼 평안을 갈구하고 사랑과 은혜를 추구해야 우리에게 평안이 찾아옵니다. 평안은 남이 주지 않습니다. 내가 만드는 것입니다. 이 땅에 없는 평안을 갖기 위해서는 이 땅의 패턴보다 한 발짝 더 움직여야 합니다. 남보다 더 나은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좀 더 일찍 일어나고 좀 더 움직이고 좀 더 뛰어야 하듯이 없는 평안을 얻기 위해서는 조금 더 내 마음과 기분, 감정과 의지를 사용해야 합니다.
오늘도 여전한 하루겠죠? 그러나 내가 어제보다 더 나은 마음을 사용하고, 남보다 더 친절하면, 그 한 발짝 더 움직인 내 마음과 감정 때문에 오늘 하루는 충분히 행복할 것입니다. 평안은 결코 남이 주지 못해요. 내가 하는 좋은 생각, 더 깊고 넓은 마음에서 주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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