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3. 07:21ㆍ묵상하는말씀/사무엘서묵상일기
사무엘하 10:1~5 그 뒤에 암몬 사람의 왕이 죽고, 그의 아들 하눈이 그를 이어서 왕이 되었다. 다윗은 "하눈의 아버지 나하스가 나에게 은혜를 베풀었으니, 나도 나하스의 아들 하눈에게 은혜를 베풀어야겠다" 하고서, 신하들을 보내어, 고인에게 조의를 표하게 하였다. 그래서 다윗의 신하들이 암몬 사람의 땅에 이르렀다. 그러나 암몬 사람의 대신들이 자기들의 상전인 하눈에게 말하였다. "다윗이 임금님께 조문 사절을 보낸 것이 임금님의 부친을 존경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오히려 이 도성을 두루 살피고 정탐하여, 함락시키려고, 다윗이 임금님께 자기의 신하들을 보낸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하눈은 다윗의 신하들을 붙잡아서, 그들의 한쪽 수염을 깎고, 입은 옷 가운데를 도려내어, 양쪽 엉덩이가 드러나게 해서 돌려보냈다. 사람들은 이 일을 다윗에게 알렸다. 조문 사절이 너무나도 수치스러운 일을 당하였으므로, 다윗 왕은 사람을 보내어 그들을 맞으며, 수염이 다시 자랄 때까지 여리고에 머물러 있다가, 수염이 다 자란 다음에 돌아오라고 하였다.
오늘 본문은 좀 황당한 에피소드가 등장합니다. 암몬의 왕 나하스가 죽었습니다. 나하스가 누구입니까? 그토록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괴롭혔던 그런 인물 아닙니까? 그런 인물이 죽었습니다. 아마도 자연사가 아닐까 추정되네요. 그런데 그 일에 대해 다윗은 조문 사절단을 보내기로 결정합니다. 요즘에도 보통 다른 나라 지도자들의 장례에 국가적인 조문 사절단을 보내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던 것 같은데요. 다윗이 대단한 것이 적국이고 서로 우르렁거리는 관계인데도 조문을 한다는 것이죠. 남의 슬픔에는 언제나 함께 울어주는 은혜가 그에게 있었던 것이 참 부럽고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나하스의 아들 하눈은 그 조문 사절단을 곱게 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그들을 붙잡아 수염을 자르고 옷을 도려내 모욕감을 주죠. 그러니까 조문 사절단을 통해 다윗의 호의를 조롱한 것입니다. 이에는 주변 신하들의 입김이 한몫했습니다. 그들은 다윗이 보낸 조문 사절단이 자신들의 동정을 살필 첩자일 것이라고 조언하죠. 그 첩자들에 의해 자신들은 공격을 당할지도 모르고, 훗날 정복될지도 모른다고 겁을 줍니다. 이 말에 하눈은 확증편향을 갖게 되죠.
여러 가지 생각이 듭니다. 좋은 의도와 호의가 오해를 받을 때가 있죠. 참 마음 아프게도 호의를 가볍게 여기거나 이용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런 말이 회자된 적이 있죠?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고요. 신기하게도 타인 관계에 있어서 그런 경향들이 종종 있죠. 큰소리치고 강하게 나가면 정중하다가도 이해와 배려의 은혜나 호의를 베풀면 우습게 여기거나 함부로 대하는 경향 말이죠.
오늘 저의 묵상에는 대립각을 세웠던 적국 왕의 죽음을 애도하는 다윗의 모습이 다가왔다가, 호의와 배려를 가볍게 여겨 기회를 날리는 하눈의 모습으로 흘렀습니다. 마치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언제나 기다리시고 끝없이 계속되는 사랑을 권리처럼 누리는 우리의 모습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마침내 다른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피해의식'이었어요~~ 하눈이 조문 사절단을 그렇게 모욕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신하들의 헛된 조언이 그에게 먹혔을까요? 그는 왜 팔랑귀가 되었을까요? 그 내면에 피해의식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피해의식은 하눈만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이는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커다란 문제로 자리 잡고 있는 현실을 보게 되죠.
피해의식의 사전적인 의미는, 자신의 생명이나 신체, 재산, 명예 따위에 손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감정이나 견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 감정이 드는 이유는 실제로 손해를 입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 느낌으로 받아서 스스로 확정 짓는 태도에서 문제가 드러납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자신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는 경우죠.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끼거나 가진 것이 없다고 느낄 때, 혹은 외모가 떨어진다고 스스로 생각할 때 드러나죠. 가령, 누군가 일을 가르쳐 주거나 지적을 하면 대부분은 자신을 코칭하거나 가이드해 준다고 생각하는 데요. 어떤 이들은 그 상황을 이렇게 생각하죠.
'내가 능력이 부족해서 그러나?' '내가 마음에 안 드나?'
또 누군가 자꾸 쳐다보면
'내 얼굴이 이상한가?' '못생겼다고 놀리는 거 아냐?'
피해의식은 여기에 그치지 않아요. 그렇게 스스로 자신에 대해 가진 부정적인 의식은 이제 남에게 이릅니다. 내가 보는 부정적인 나를 이제는 남이 보는 부정적인 나로 생각한다는 것이죠. 이를 투사라고 하는데요. 그렇게 자신의 생각을 남의 생각으로 투사하여 이제는 남들이 나를 그렇게 본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가령 단톡방에서 내가 말을 꺼냈는데 아무도 반응하지 않으면 이런 생각이 떠오르죠.
'뭐야~ 내가 실수했나? 이 사람들이 나를 안 좋게 보나?'
더 나아가 혹시 나를 빼고 단톡방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의심도 하죠. 동료들이 이야기하는 자리에 가까이 가면 갑자기 다들 말을 하지 않는 것 같고, 저 멀리서 누군가 얘기하는 것을 보면 혹시 내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 싶고, 그렇게 피해의식은 남이 나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러다 보니 이제 타인과의 자리를 피하게 되고, 거리를 두죠. 그러면서 또 이렇게 말하죠.
'사람들이 나를 멀리해~'
이 심각한 병이 바로 피해의식입니다. 하눈에게 그런 피해의식이 있었던 것 같아요. 다윗의 호의를 보면 혹시 흑심이 있는 것 아닐까? 저러다 뒤통수 때리는 것 아냐? 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고, 그런 친절과 호의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이죠.
우리는 어떨까요?
'설마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실까?' '나에게도 기회가 있을까?' '나 같은 것이 행복은 무슨?'
그렇게 스스로를 갉아먹으며 피해의식 가운데 들어가 타인뿐 아니라 하나님의 얼굴도 피하며 살면 좀 나을까요? 내 생각이 전부 맞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사람이 있죠. 전부 이럴 거야 저럴 거야 상상에 상상을 더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죠.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인데 그것을 온갖 부정적인 결과로 채우는 사람들 말입니다. 아직 말도 해 보지 않았고, 아직 해 보지도 않은 일인데 이러면 어쩌나 저러면 어쩌나 걱정에 걱정을 더하는 이들도 있죠. 그냥 한번 물어보세요. 누군가 나를 미워하는 것 같다고요? 그냥 혼자 상상하지 말고 물어보세요. 이것은 정신과 의사분들의 처방이기도 하죠. 닥치지 않은 일을 상상하지 말고 해 보세요. 하고 나서 말하면 어떨까요?
무엇보다도 자신을 좋게 보세요. 기독교인들이 자신을 부정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말을 자꾸 곡해합니다. 그는 자신의 사명, 자신에게 주어진 책무를 다하라는 이야기이지 자기 자신을 비하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물이에요. 하나님은 우리를 온전하게 창조하셨습니다. 나에게 가장 적절하고 아름답게 만드셨어요. 내가 가진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없는 것을 찾기보다 가진 것을 극대화하는 것이 훨씬 나아요. 내가 가진 것도 쓰지 못하면서 남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르죠.
하려거든 좋은 상상을 하세요. 하려거든 좋은 기억만 간직하고요. 하려거든 좋은 기대만 하세요. 정말 내가 가고자 하는 길만 그리세요. 정말 내가 되고자 하는 나만 꿈꾸세요. 지금 내 생각이 다 옳지는 않습니다. 내 생각을 뛰어넘어 일하시는 하나님을 기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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