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서묵상33 - 우리는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요한복음8:31-38

2020. 2. 19. 07:16묵상하는말씀/요한복음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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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유명한 구절이 나오네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 말을 들은 유대인들은 반발을 합니다. 자신들은 그 누구의 종이 된 적도 없다고 말하죠. 종이 된 적이 없으니 자유를 추구할 이유도 없다는 것이죠. 그러니 이 말은 기본적인 사실에도 부합하지 않습니다. 일단 그들은 이집트에서 오랫동안 종으로 살았습니다. 물론 이런 물리적 종에 대한 메시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아마도 자신들은 누구에게도 억압되거나 혹은 사로잡히지 않은, 그야말로 자신들의 뜻과 의지를 언제나 펼칠 수 있다고 여겼던 것 같아요.

우리도 그렇습니다. 누가 감옥에 갇힌 것도 아니고, 내 마음대로, 내 의지대로 움직이는 자유가 있다고 생각하기 십상이죠. 그러나 우리가 정말 자유로울까요? 사람들이 주는, 사회가 주는 감정적 반응에 우리는 자유로울까요? 가령, 누군가 나를 기분 나쁘게 하는 상황에서 감사할 자유가 있을까요? 우리의 습관에서도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담배 피우지 않을 용기, 커피 마시지 않아도 될 자유가 우리에게 있을까요? 그것도 나의 자유라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자유를 가장한 습관이 혹시 나를 조정하고 있지는 않나요? 더 나아가 죄에서 우리는 자유로울까요? 내 안에서 끓어오르는 분노에서, 탐욕과 경쟁과 질투에서 우리는 자유로운가요? 

우리는 법치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죠. 그런데 나의 행동이 누군가의 판단에 의해 규정되어 버린다면 그것이 자유일까요? 300명의 국회의원에 의해 정해진 법률에 나는 맞춰 살아야 하고, 3,000명 정도 되는 판사들에 의해 우리의 모든 행위의 진위가 판결을 받는 세상에서 삽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많이 자유가 없어요. 사회의 전통이라는 시선과 관습이라는 규범이 개인의 개성은 물론, 사고까지도 지배를 하는 세상에 삽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을 들으며, 사회에 묻혀 조용히 살기를 강요받기까지 하죠. 그렇게 길들여져 갑니다. 그런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과연 자유할까요?

사실 수많은 법률과 규정들은 단순합니다. 출발점이 하나라는 뜻이죠. 공동체의 질서, 혹은 서로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 정해진 규범들입니다. 그 상황들이 복잡하고, 관계들의 사례들이 많아지면서 늘어났을 뿐이지 본질로 돌아가면 단순한 하나의 출발점에 이르죠. 그것이 무엇일까요? 어쩌면 사랑 아닐까요? 우리가 사랑하며 살기 위해 수많은 규칙이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요? 그 사랑을 문서화하고 명문화하려고 한 것은 아닐까요? 그 모든 인간의 영적 육체적 진리들이 담겨져 있는 그 사랑을 규범화하려다 보니 말이 길어지고, 케이스가 많아져 복잡해진 것은 아닐까요? 

사람들이 복잡해지면 길을 잃을 때가 많습니다. 말이 길어지면 무슨 말을 하려고 시작했는지 잊을 때가 있죠. 그렇게 산으로 갈 때가 있습니다. 왜 불륜을 저지른 여인에게 돌을 던져야 하는지, 왜 안식일에 병을 고치면 안 되는지, 그 본질의 목적을 잃으면 우리는 죽이는 데만 관심하게 되고, 율법적인 상황만 드러나게 되죠. 그 본질은 무엇인지 잊은 채 말이죠. 그런 우리에게 예수님은 본질을 상기시키고 계신지도 모릅니다. “네가 하려고 하는 본질이 무엇이냐?” 좋은 일로 시작했다가 감정이 상하고, 마음이 다치면 결국 좋은 일은 나쁜 일이 되어 버리죠. 그때 내가 왜 시작했는지, 무엇을 위해 시작했는지, 본래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되새길 수 있다면 어쩌면 우리는 헤매는 것을 멈출 수 있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우리에게 예수님은 외치시는 것 같아요. “네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랑하도록 보내신 존재입니다. 이 땅을 평화롭게 조화를 이루는 매개체로 보내셔서 만물을 다스리도록 보내셨죠. 그런데 그 일을 하다 보니 지배하고 억압하고 다스리게 되어 버렸습니다. 거기서 욕망이 드러나고, 거기서 자신의 자아가 드러납니다. 그것은 주님의 계획과 의도를 벗어난 죄가 되어버리죠. 우리는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하도록 보내진 존재이고요. 조화를 이루도록 보내진 평화의 사도입니다. 그것이 진리예요. 

나의 뜻이 왜곡되어서 화나세요? 억울해하지 마세요. 하나님의 진리에는 이미 억울함이 계산되어 있어요. 억울함이 오히려 높임 받을 기반이 될지도 모릅니다. 일이 잘 안 되세요? 그래도 낙심하지 마세요. 하나님의 진리에는 주님의 도우심이 있어요. 내가 이루지 못해서 기적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르죠. 그 본질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믿음이고 인내이고, 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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