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서묵상9 - 은혜는 내 일상의 삶에 있고, 감사는 늘 누리던 반복된 삶 속에 있습니다. 요한복음3:9~15

2020. 1. 22. 07:09묵상하는말씀/요한복음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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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니고데모와의 대화입니다. 니고데모와의 대화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그런데 말씀의 내용이 중요해서 짧게 끊어감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은 제게 그리 중요하게 읽지 않았던 본문인데요. 오늘 아침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21절까지 묵상할 계획을 수정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어제의 묵상을 조금 더 견고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니고데모는 기적이나 현상에 주목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놀라운 일들이 마치 초능력이나 되는 것처럼 신기해하면서 예수님께 묻는 것이죠. 그러니까 예수님의 거듭남에 대한 말씀도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가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거듭남이 남의 일이 아니라고 말씀하시죠.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요. 네가 바뀌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고 어제 묵상했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베푸는 기적과 현상들을 배우고자 했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도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싶었을 테니까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에게 기적과 현상보다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라고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사람들을 사랑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죠. 우리들도 그렇습니다. 뭔가 놀라운 일들을 배우고 싶어 하죠. 어디서 음식점이 대박 났다고 하면 그 방법을 배우려고 합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좋은 음식을 주고자 하는 마음에서 끊임없는 노력과 수고를 하는 그 모습은 배우려고 하지 않죠. 오늘 본문이 그 포인트입니다.

12절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않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이 말씀이 강하게 제 마음에 꼽혔어요.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어쩌면 저는 하나님의 일이 저 멀리 하늘나라에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는지도 몰라요. 지금 나의 자리,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말과 행동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살았는지도 모르겠어요. 어쩌면 영지주의자들처럼 영적인 상상은 거대하고 놀라운 것인데 비해 나의 현실의 시간들은 중요하지 않은 사람처럼 현실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 이 땅에서 땀을 흘리며 수고를 다 하는 것은 영적인 것과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제 묵상의 댓글 중, “네가 잘 살기를 바란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적은 분이 계신대요.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저도 선교사로 떠나기 전 그 두려움에서 잘 해낼 수 있을까? 떨고 있을 때, 주님이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무슨 위대한 일을 하려고, 놀라운 성과를 거두려고 하지 말고, 그 자리에서 평온하게 잘 살아내라고요. 지금과 다른 그 땅에서 너의 삶을 살아내라고요. 그것이 가장 위대한 선교사의 삶이라고요.    

사랑하는 여러분, 위대한 영적인 삶은 없어요. 지금 나의 자리에서 감사하며 사는 삶이 가장 위대합니다. 누구를 위해서, 누구와 나누며 사는 삶, 돕고 사랑하며 사는 삶,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노력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에요. 정말 남을 돕는 사람, 남과 나누는 사람은 형식이 아니라 삶입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남도 사랑할 수 있고, 자신의 삶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남도 도울 수 있어요. 주님 주신 지금의 삶에 만족하는 사람이 남에게 나누어줄 수 있고요. 자신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은혜를 본 사람만이 이웃과 은혜를 나눌 수 있어요. 은혜를 다른 곳에서 찾지 마세요. 무슨 행위나 놀라운 일에서 기적을 찾지 마세요. 은혜는 내 일상의 삶에 있고, 감사는 늘 누리던 반복된 삶 속에 있습니다. 그 은혜를 누릴 때, 그 감사를 고백할 때 우리에게 기적이 일어나는 거예요. 남을 위한 눈물의 기도가 충만할 때 이적도 일어나는 거고요. 사랑하는 마음이 충만할 때 그들의 마음도 따라오는 것입니다. 자신의 자리에서 출발하세요. 그곳에서 나의 영성도 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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