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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에스더서묵상

가질수록 겸손하십시오.

가질수록 겸손하십시오.
에스더 1:1-14

오늘부터 새로운 책을 묵상합니다.
구약의 [에스더서]인데요.
이 책은 주전 5세기 당시 대제국이었던 페르시아에 노예로 끌려온 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구약에서 역사서로 분류되지요.
그러나 그렇다고 그 여인, 에스더의 일생을 다룬 그런 자서전적인 책은 아닙니다.
에스더는 훗날 페르시아의 왕비가 되는데요.
책은 그녀가 왕비로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구약을 읽을 때 우리는 자주 길을 잃습니다.
고대 역사의 줄기를 따라 읽는 것은 쉽지가 않죠.
뿐만 아니라 영적인 흐름조차 깨내기도 힘듭니다.
어느 때는 이런 책을 역사적인 흐름으로 읽으려고도 하고,
어느 때는 주인공 한 사람의 인물됨에 초점을 맞추기도 하죠.
그러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 책을 그냥 소설처럼 읽고 싶습니다.
제가 이미 말씀드렸잖아요.
묵상은 성경공부가 아니라 그냥 묵상이라고요.
묵상은 그 상황과 말씀들 속에서 나에게 비추어진 말씀을 깨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역사를 많이 안다고 묵상을 잘 하는 것도 아니고,
신학적인 분석이 묵상의 기초를 이루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하나의 소설처럼 읽으며 그 상황에 여러분의 생각을 실으며 읽으시면 좋겠어요.

에스더서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대충 4명 정도입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인물은 에스더죠.
페르시아의 노예였던 유대인 출신으로 어릴 적 부모를 잃은 아픔의 여인이죠.
그러나 그 우울과 슬픔 안에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을만한 매혹적인 매력을 가진 인물이기도 합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인물을 모르드개인데요.
그는 에스더의 사촌오빠였습니다.
사촌오빠이지만 나이차이가 많아서 거의 부모와 같은 존재였죠.
에스더는 그 모르드개의 손에서 자랐습니다.
어쩌면 모르드개가 이 이야기를 끌고가는 중심일지도 모르겠는데요.
그는 견실하고 신실할 뿐만 아니라 지각이 있고, 경건하기까지 한 인물이었습니다.

비중은 조금 떨어지지만 중요한 반전을 이룰 인물로 등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에스더의 남편이 되는 페르시아의 왕 아하수에로입니다.
잘 모르는 이름 같지만 아마도 영화 300을 보신 분들은 이 왕을 아시는 분들이 많으실 거예요.
거기에 크세르크세스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있는데요.
그가 바로 성경의 아하수에로왕입니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중요인물은 하만이라고 하는 사람이에요.
재미있는 드라마를 보면 주로 대립적인 구도 속에서 이야기가 진행되죠.
하만 또한 모르드개나 에스더와 대립을 보이는 인물로 등장합니다.
그는 페르시아에 있는 유대인들을 모조리 학살할 계획을 세운 인물이죠.

이 이야기의 구조는 이렇습니다.
내 나라가 아닌 이국땅 페르시아에서 노예로 사는 유대인들이 있어요.
그들은 근근히 자신의 가치와 영성을 지키며 살아가죠.
그런데 하만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그 유대인들을 몰살하려고 합니다.
그 작전을 실행하는 와중에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목숨을 건 저항이 벌어지죠.
그리고 끝내는 반전을 이룹니다.
페르시아에서는 이방인에 속하는 유대인이 정통 페르시아 악인들을 물리치고
끝내는 승리를 거두는 이야기입니다.

이 줄거리를 생각하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아마도 여러가지 다양한 생각을 하시겠죠?
그중에 어쩌면 하늘의 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이 이방의 땅과 같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습일지도 모르겠어요.
끊임없이 굴복시키고, 몰살시키려는 세상의 풍조 앞에서 죽으면 죽으리라하고 버티고 견디는 그리스도인의 모습 말이죠.
그리고 마침내 끝내는 반전을 이루고 승리한다는 스토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이 줄거리의 관점에서 이 에스더를 재미있게 읽어나가길 원합니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페르시아의 왕비였던 와스디가 폐위되는 장면부터 시작합니다.
폐위되는 과정이 정말 어처구니가 없어요.
당시 가장 풍요롭고 최강이었던 페르시아는 부요와 풍요를 즐겼습니다.
휘양찬란한 궁전에서 가무를 곁들인 술판이 벌어지죠.
그 술판에서 흥이 오른 왕은 자신의 왕비를 부릅니다.
그 부름은 왕비에게 잔치를 즐기도록 배려하려는 부름이 아니에요.
많은 대신들 앞에서 왕비의 미모를 자랑하고 싶어서 부르는 것입니다.
술판에서 미모를 자랑하기 위해 불렀다함은 무엇이겠습니까?
자신의 아내를 한낱 눈요기감으로밖에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예나지금이나 성적 차별은 여전합니다.

풍요하다고 인격적인 것은 아닙니다.
놀라운 업적을 이루었다고 인간적인 것도 아니고요.
많은 재물과 높은 지위를 가졌다고 성품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죠.
오히려 가질수록, 높을수록, 많이 얻을수록 사랑을 업신 여기는 경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합니다.

요즘 한창 모항공사 창업주 가족의 갑질에 대한 논란이 많죠.
그들의 행태를 보면 정말 가관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재물을 얻는 것처럼 사람도 얻는 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자신이 자리를 차지하는 것처럼 사람도 차지할 수 있다고 여겼던 모양이에요.
자신의 자리가 높으면 사람들을 함부로 해도 되는줄 안 모양이죠.

높은 자리에 올라갔다는 것은 하는 일이 달라졌다는 의미이지 사람보다 더 위에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권위를 가졌다는 것은 사람들을 마음대로 할 권력을 가진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죠.

사랑하는 여러분,
제가 좋아하는 목사님의 책 제목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너무 바빠서 기도합니다"
기막힌 제목이죠.
우리는 바쁘면 기도를 놓치고, 바쁘면 묵상을 놓쳐요.
왜냐하면 우리는 기도나 묵상을 하나의 일로 보기 때문이죠.
그래서 시간과 동일한 위치에 놓는 것입니다.
어떤 일과 동일하게 여기는 것이죠.
그러나 이 제목의 의미는 궁극적인 기도의 의미를 말해 주는 것 같아요.

저도 비슷하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가질수록 겸손하십시오.
가진 사람들이 아무 생각없이 평범하게 말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가졌기 때문에 그만큼 더 주의하고 말해야 하거든요.
나이가 많은 사람이 말을 조심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나이가 많은 분들의 말은 젊은 분들의 말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갖기 때문이죠.
'나는 그냥 평범하게 이야기했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높아질수록 겸손해야 합니다.
권리가 있을수록 섬겨야 하고요.
풍요로울수록 남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힘이 있을수록 조심해야 하죠.
그래야 주신 것들을 더 오래, 잘 지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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