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묵상하는말씀/베드로전서묵상

(18)
'항상 복음을 전하라. 꼭 필요하다면 언어도 사용하라.' 베드로전서 3:1-6 '항상 복음을 전하라. 꼭 필요하다면 언어도 사용하라.' 간혹 오늘 이 본문이 오해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아내들, 즉 여인들에게 하는 말이죠. 남편에게 순종하고, 순복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얼핏 보면 여인들은 무조건 남편들에게 머리를 숙이라는 말처럼 들립니다. 게다가 분량도 문제입니다. 남편에게도 권면을 하는데요. 고작 한 절뿐이고, 여인들에게 권면하는 말은 여섯 절입니다. 여인에게는 순종을 강조하지만 남편에게는 이해를 권면합니다. 이 또한 마치 아내를 봐주면서 살라는 것처럼 들립니다. 이 때문에 이 구절은 페미니즘 신학자들에게 종종 공격을 받는 본문입니다. 분명 베드로가 당시 여성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으로 인해 영향 받지 않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또한 남성들이 미..
신앙의 길은 본래 억울한 길입니다. 베드로전서 2:18-25 신앙의 길은 본래 억울한 길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해 보셨습니까? 억울함이란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오해받고 누명을 쓰는 일입니다. 억울함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는 남다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커다란 후유증을 동반하는 단어이기 때문이죠. 홧병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미국정신과협회에서는 1996년부터 홧병을 정신질환의 일종으로 공인했습니다. 병의학 사전에는 우리말 발음인 홧병으로 기록해 놓은 이 병을, 한국인에게만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이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병의 발병원인이 바로 억울함에 있다고 분석하죠. 보통 알려진 한국인의 문화적 특성이 있는데요. 인내와 절제, 양보를 미덕으로 삼아 심리적인 갈등을 속으로만 삭여야 하는 문화적 배경이 바로 그것입니다. 혹자는 홧..
정말 내가 하려고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늘 점검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13-17 정말 내가 하려고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늘 점검해야 합니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의 시작은 성경을 번역하는 것이었습니다. 라틴어로만 되어 있던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작업이었죠. 중세시대 당시 라틴어는 배운 사람들, 특히 목회자들만이 익숙한 언어였습니다. 따라서 일반 사람들은 성경을 읽을 수조차 없었죠. 예배시간에도 목회자들은 성경을 라틴어로 읽었습니다. 회중들이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말이죠. 그리고는 성경에 대한 해석을 목회자들이 해 주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목회자들이 아니면 성경을 읽지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목회자들 뜻대로, 그들 마음대로 성경이 전해졌습니다. 성경은 특별한 자, 목회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모두가 읽고, 이해하고, 묵상할 ..
말씀에 내 자신을 계속 노출시켜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6-12 말씀에 내 자신을 계속 노출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왜 하나님을 예배할까요? 우리는 왜 매주일 교회에 나올까요? 우리는 왜 말씀을 읽을까요? 참 복잡한 질문이기도 하고 단순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오늘 아침에는 목사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나는 설교를 할까?’ ‘왜 나는 묵상을 나누고, 말씀을 나눌까?’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부터 ‘주님의 제자로 만들기 위해서’까지 많은 대답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아주 단순하고 간단한 대답이 마지막에 남았습니다. 내가 이렇게 말씀을 나누고, 생각을 공유하는 이유는 “여러분들을 설득하기 위해서”입니다. 조금 더 거친 표현을 쓰자면 여러분들을 ‘세뇌시키기 위해서’죠. 이것을 ‘의식화작업’이라고 하죠. 어쩌면 어떤 분들에게는..
거듭나셔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1-5 거듭나셔야 합니다. 며칠 전, 묵상 글에서 ‘보이지 않는 것에 집중하라’고 말씀드리렸는데요. 외형보다 내면을 만들라는 말씀이었죠. 그랬더니 외형도 중요하지 않느냐는 반문이 들어왔어요. 뭐라고 해야 하나요. 아마도 그 말이 어떤 이에게는 면죄부를 주는 말처럼 느끼셨던 것 같습니다. 가령, 예배에 참석하지 않아도, 남을 돕는 일에 참여하지 않아도, 마음으로는 주님을 사랑하고, 따른다고 믿으면서 아무런 거리낌을 느끼지 않는 이들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제가 여러 번 그런 말씀을 듣는데요. 가끔 제가 이렇게 말할 때가 있죠.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내면에 주님이 계시고, 그 분의 마음을 품으면 그것이 믿음이고, 그것이 영성이다‘라고요. 그런 말을 드릴 때마다 걱정하는 분들이 있습니..
우리가 할 일은 순종뿐입니다 베드로전서 1:22-25 우리가 할 일은 순종뿐입니다. 한번은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다가 그만 냄비를 태우고 말았습니다. 이 덕분에 냄비가 까맣게 타버리고 말았어요. 그 냄비를 원상복구하기위해 저는 세제와 수세미를 동원해서 아주 박박 닦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세제를 가지고 닦아도 지워지지가 않더라고요. 멀쩡한 냄비 하나 버리게 생겼구나 할 때, 집사람이 보더니 자신이 하겠다고 그러는 겁니다. 제가 힘을 들여 닦아도 안 되는데 집사람이라고 용빼는 재주 있겠어요? 그런데 집사람은 세제가 아니라 베이킹 소다와 식초를 가져오더라고요. 그리고는 적당량을 넣고 끓입니다. 아니, 그랬더니 그렇게 닦아도 지워지지 않던 냄비가 감쪽같이 새것이 되어 버리지 뭡니까? 다들 아시는 방법이셨죠? 그런데 저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행복입니다 베드로전서 1:17-21 보이지 않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행복입니다. 최근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말이 뉴스에 자주 등장합니다. 이 이슈가 사회를 뒤덮을 만큼 논쟁이 치열하죠. 여기에 최저임금문제도 한 몫을 합니다. 그런데 이 문제들이 복잡해서 뭐가 뭔지 잘 모르는 분들이 많죠. 한 나라의 경제가 간단치 않은 것은 물론이고, 계획과 진행과정, 그리고 결과에 대한 판단은, 방법과 시기마다 다 다릅니다. 그래서 해설이 필요하죠. 그 해설을 맡은 이들이 바로 언론인데요. 만약 언론이 편향되어 있다면 잘 모르는 우리들은 어떻게 될까요? 지금 저는 언론이 편향되었다고 지적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슨 정책에 대한 해석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에요. 제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우리의 이해를 돕기 위해 책임을 ..
세상 사람들이 우리 모습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크고 놀라운 선교입니다 베드로전서 1:10-16 세상 사람들이 우리 모습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크고 놀라운 선교입니다. 창세기1장은 창조의 관한 내용입니다. 모든 만물들과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 특이점이 있는데요. 하나님께서는 만물들을 창조하실 때와는 달리 인간을 창조하실 때는 밑그림을 그리셨는데요. 그러니까 미리 모델을 정하신 것이죠. 그 모델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이것을 라틴어로 ‘이마고데이’(IMAGO DEI)라고 합니다. 인간이 특별한 존재가 되는 이유는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그 형상이 곧 하나님은 아닙니다. 내게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고, 내가 하나님은 아니라는 뜻이죠. 이는 내가 하나님을 닮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아니 엄밀히 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