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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골로새서묵상일기

골로새서묵상일기 33 - 죄가 아닌 은혜를 묵상하세요.

골로새서 3:2~4   여러분은 땅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지 말고, 위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영광에 싸여 나타날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위의 것을 생각하라고 말씀하죠. 그렇다면 위의 것은 무엇일까요? 이 구절을 대할 때 우리는 이런 식의 해석을 곧잘 합니다. 위의 것은 무언가 영적이고 지적이며 신비한 것으로, 땅의 것은 육체적이고 물질적이며 세상적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듣죠. 그러나 이는 어찌 보면 위험한 생각일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영지주의자들의 논리였으니까요. 우리는 바울이 말하는 위의 것이 무엇인지를 면밀히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2절에 3절로 넘어갈 때 개역 개정본에는 '이는'이라는 말이 있어요. 이  말은 헬라어 원어 [가르]라는 단어를 번역한 것인데요. 새번역에는 특별히 따로 번역하지 않은 단어입니다. 이 단어의 뜻은 '왜냐하면' 정도의 해석이 가능한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이전 2절의 이유를 3절에서 설명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한 번 2절과 3절을 비교해보죠. 2절의 '땅의 것'은 3절에서는 '이미 죽은 것'이 되고, 2절의 '위에 있는 것은 3절에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진 생명'이 되죠. 조금 더 설명해 볼까요?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죽은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목숨입니까? 육체의 죽음입니까? 아니 우리의 죄입니다. 그분의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가 소멸되고, 그분의 죽으심으로 우리는 구원받았어요. 주님의 십자가를 기준으로 우리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이시나요? 이미 우리는 프레임의 전환이 그리스도인의 기초라고 묵상했죠. 이것은 마치 이런 것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빚을 졌어요. 그것도 갚을 수 없는 어마어마한 빚입니다. 아마도 그런 채무자는 채권자의 낯을 피하기 마련이죠. 늘 들킬까 무서워하죠. 그래서 어디도 나서지 못하고 숨어  지냅니다. 그런데 그가 채권자로부터 면제를 받았습니다. 이제 채무관계가 정산되었어요. 그러면서 새로운 사업을 같이 하자는 제안도 받습니다. 빚을 탕감받은 것은 물론 이제 돈을 벌 기회까지 얻은 셈이죠. 그런데 그가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유는 채권자를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에요. 여전히 자신에게 채권자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머릿속에는 빚이 탕감되지 않은 거죠. 이전의 채권자가 이제는 동역자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그는 채권자의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겁니다. 말하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네요. 조금 바꿔서 다시 설명할까요? 그렇게 채무관계가 정산되었는데도 그가 여전히 숨어 지낸다면 어떨까요? 누군가 자신을 잡아갈 것 같은 두려움에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면 말이죠. 그것이 정상적인 것일까요? 

 

저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심각한 외상을 겪은 후 나타나는 불안증세죠.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꿈에 그 순간의 공포들이 떠오르곤 합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휘몰아치는 것들이 존재하죠. 그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마치 내 생각의 공간을 비워두면 찾아오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그래서 저는 끊임없이 제 마음과 생각을 다른 것으로 채웁니다. 살아 있음과 새로운 시간을 주심과, 또 현실의 은혜를 생각합니다. 그때 그 죽음의 공포를 생각하지 않고 지금 살아서 함께 한 일들,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나고,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을 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저는 축복의 사람이라는 것을 묵상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과거를 묵상하며 살아요. 그리스도인들이 여전히 죽은 죄를 묵상하면서 삽니다. 십자가로 이미 용서받고 소멸된, 그래서 생각조차 하지 않으시겠다는 약속까지 받은 우리의 죄를 늘 묵상하며 사는 이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저보다 더 극심한 PTSD를 앓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에 널려 있습니다. 그것도 마치 그런 죄의 묵상이 믿음 인양, 신앙 인양 착각하면서 말이죠.

 

땅에 있는 것을 묵상하지 마세요. 다시 말할게요. 죄를 묵상하지 마세요. 잘못될 것, 실패할 것, 망할 것들을 묵상하지 마세요. 나를 망치고 괴롭힐 것들을 묵상하지 마세요. 하늘의 것을 묵상하세요. 이미 나를 구원하신 그 사랑, 그리고 끝까지 지키시며 인도하실 그 은혜, 나를 떠나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그 약속, 또 마지막까지 선한 일을 이루실 그 축복을 묵상하세요. 십자가에서 죄가 아닌 은혜를 발견하세요. 십자가에서 심판이 아닌 구원을 찾으시고, 십자가에서 저주가 아닌 사랑을 추구하세요. 무엇을 묵상하느냐에 따라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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