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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골로새서묵상일기

골로새서묵상일기 32 - 찾는 이에게 주어집니다.

골로새서 3:1~2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 주심을 받았으면, 위에 있는 것들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여러분은 땅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지 말고, 위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십시오.


오늘 본문은 '그러므로'라는 말로 시작하죠. 이 단어는 이전의 말들을 전제한 말이고, 또한 그 말들의 결론적인 의미를 가진 말로 이어지는 접속부사입니다. 어제 묵상의 제목이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였는데요. 이는 생각의 프레임을 전환하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신앙은 프레임 전환이 기초입니다. 이전의 생각을 버리고 새로운 생각으로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하죠. 오늘 본문에서 그 전환의 중심을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 주심을 받았으면..."

 

다시 살려주심이란 부활을 의미하죠.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갈 2:20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살고 있는 삶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프레임 전환은 거기서부터 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옛 생각은 죽었고, 이제 새로운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이죠. 그 생각의 중심에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이를 두고 바울은 또 고린도후서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고후 5:17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

 

적절한 비유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의미로만 받아들여 주신다면 좋겠어요. 이런 이야기죠. 우리가 결혼을 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하여 한 가정을 이루죠. 그것은 결단이고 약속입니다. 그리고 그 결혼예식으로 도장을 찍는 순간, 그는 자유로운 영혼이 아닌 한 가정에 묶인 영혼이 되죠. 혼자 있던 시절을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젠 한 가정의 일원이 되었고 그 가정의 새로운 출발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죠. 정상적이라면 분명 생각의 전환이 있을 겁니다. 주님께서도 주로 그리스도와 우리를 신랑과 신부 관계로 설명해 주시곤 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만남을 의미하지 않아요. 완전히 다른 삶, 다른 생각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내가 산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면 우리는 다른 것을 볼 필요가 없어요. 수없이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손 치더라도 내가 가야 할 길은 산의 정상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아름다운 것, 모든 이로운 것은 전부 산의 정상을 향해 오르는 나를 돕는 것으로 작용해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이를 우리는 유혹이라고 부르죠. 예전에 아무리 좋은 것이었을지라도, 또한 모든 사람들이 귀하고 소중하며 가치 있다고 말해도, 지금 내가 걷는 길을 걷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다면 그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나의 프레임이 바뀌었으니까요.

 

생각의 전환만큼 오늘 본문에서 가장 눈에 띄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추구"라는 단어입니다. 추구라는 말은 어렵지만 그래도 멈추지 말고 계속해서 찾으라는 뜻의 단어입니다. 개역 개정본에서는 이 단어를 '찾으라'라는 말로 표현했더라고요. 이는 저절로 되지 않음을 의미하죠. 찾는다는 것은 끊임없는 생각과 집중을 의미합니다. 간혹 집에서 물건을 찾을 때가 있는데요. 그래서 쌓여있는 짐들을 헤집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찾는 시간이 길어질 때가 있어요. 없어서 못 찾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시간을 늘리게 하고 끝내는 찾는 것을 잊어버리게 만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길을 잃을 때입니다. 이것저것 물건을 찾다 보면 오랜만에 보는, 혹은 예전에 찾았던 것들이 보입니다. 때론 옛날 사진 같은 것들도 보이죠. 그것에 눈길을 주는 순간, 나는 애초에 무엇을 찾으려 했는지 길을 잃을 때가 있어요. 그러다 보면 찾는 시간은 늘어나고 어느 때는 포기하게 되죠. 그래서 찾는다는 의미에는 나의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길을 정했으면 그 길을 가기 위해 집중해야 합니다. 선택하고 집중해도 할까 말까인데 거기에 부정적인 생각, 안 될 생각, 귀찮고 힘들고 나태함을 가지는 일들이 함께한다면 그 길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말씀하셨는지도 모릅니다.

 

어떤 일을 하기로 했나요? 그러면 잘 될 것만 생각하세요. 너무 무식해 보이나요? 맹목적으로 보이세요? 그렇다고 그 일을 하지 않을 것은 아니잖아요?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결정했다면 그 일이 이루어질 것만 생각하면 안 될까요? 잘되는지 안 되는지는 이제 곧 밝혀질 겁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그냥 받아들이자고요.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합시다. 그게 뭘까요? 아직 결론이 나기 전까지는 내가 하기로 한 것이 잘 되기를, 좋은 결과를, 또한 즐겁고 아름답고 감사한 일로 받아들이고 생각하며 꿈꾸면 안 될까요? 다른 것을 하기로 하지 않은 이상, 다른 것은 생각하지 말자고요. 결정을 하지 못했다면 고민하세요. 그러나 결정을 했다면 믿고 가자고요. 하기로 했다면, 가기로 했다면 의심하지 말자고요. 괴로워하지도 말자고요. 기뻐하자고요. 가기로 했으니까요. 내 자의식이든, 타의식이든 내가 해야 할 일이라면, 그리고 정해졌다면 마음을 다해, 기쁨을 가지고, 감사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자고요. 그렇게 최선을 다한 이후에 결과를 받아들이자고요. 

 

하나님의 은혜 아래에 우리가 할 일은 많지 않습니다. 그분의 은혜는 우리의 공로와는 상관없으니까요. 우리가 의인이어서 은혜 주시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죄인이어서 그 은혜받지 못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러나 우리의 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딱 한 가지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그 은혜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추구하고 찾는 것입니다. 주신 은혜를 발견하는 거예요. 마치 무엇인가를 찾는 사람에게 그것이 보이듯이, 마치 눈을 씻고 찾는 이에게 더 잘 보이듯이 그 은혜와 기적을 원하고 바라고 기도하는 이에게 은혜와 기적은 찾아옵니다. 그렇게 추구하는 이에게 복이 있습니다. 그렇게 찾는 이에게 주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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