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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골로새서묵상일기

골로새서묵상일기 31 -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골로새서 2:20~23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서 세상의 유치한 원리에서 떠났는데, 어찌하여 아직도 이 세상에 속하여 사는 것과 같이 규정에 얽매여 있습니까? "붙잡지도 말아라. 맛보지도 말아라. 건드리지도 말아라" 하니, 웬 말입니까? 이런 것들은 다 한때에 쓰다가 없어지는 것으로서, 사람의 규정과 교훈을 따른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꾸며낸 경건과 겸손과 몸을 학대하는 데는 지혜를 나타내 보이지만, 육체의 욕망을 억제하는 데는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어디서 한 번쯤 들어 본 말이죠? 이 말은 2004년 조지 레이코프가 쓴 책의 제목입니다. 조지 레이코프는 미국 버클리대학에서 오랫동안 인지언어학을 가르쳤던 교수입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우리 사고방식에 핵심적인 영향을 주는 프레임 이론을 본격적으로 제시했죠. 그가 제시한 프레임 이론은 이 책 제목에서처럼 간단합니다. 누군가 사람들에게 코끼리는 생각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의 목적은 그야말로 코끼리를 생각에서 지우라는 의미인데요.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그들의 머리에 코끼리를 주제화하게 되죠. 말한 사람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코끼리를 더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는 말이 오히려 코끼리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버린 결과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기르다 보면 당면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상하리만큼 하지 말라는 것을 더 하는 경우들을 보게 되죠. 이때 청개구리라는 말을 하게 되는데, 생각해보면 청개구리는 기분이 나쁠 것 같아요. 청개구리에 대한 동화 하나로 청개구리는 반항아의 대명사가 되었다는 것이 좀 서글퍼 보입니다. 아무튼 하지 말라는 것에 더 눈길을 주는 것은 그것이 하나의 프레임이기 때문이죠. 게임을 하지 말라고 말하는 순간, 의도는 게임을 멀리하는 것이지만 아이들에게는 게임이 그 사고에 각인된 프레임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게임이 생각의 중심이 되어 버리죠. 게임을 하느냐 마느냐가 기준이 되어 버리고, 게임으로 인해 부모님과의 관계가 결정되며, 게임으로 자신의 현재를 판단해 버립니다. 선과 악의 기준이 되기도 하고, 죄와 벌의 중심이 되기도 하죠. 그렇게 사고의 중심에서 어느덧 뿌리내려 버립니다. 그래서 게임을 하지 말라는 말은 부모의 의도와 상관없이 아이들에게는 사고에 더욱 강한 영향을 주는 프레임이 되어 버립니다.

 

율법에는 하지 말라는 것들이 많습니다. 본래 법이 그렇습니다. 법은 공동체의 규율이기 때문에 제재가 많아요. 서로 조심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하지 말라는 것을 하지 않았다고 의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착각이죠. 마치 게임을 하지 않으면 착한 어린이가 되는 것과 같은 착각이에요. 게임이 나쁜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안 하는 것이 그 인격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잖아요? 문제는 그 하지 말라는 것들이 우리의 사고를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하지 말라는 것을 안 하는 것으로 우리의 인격이 정해져 버리는 것이죠. 법을 지키면 착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인간적 도리를 다하는 것은 기본이지 의인의 지름길은 아니잖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법이 프레임이 되면, 우리는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것에 몰입을 하고 말죠. 그 사람의 본심이 어쨌건, 인격이 어떻건 법을 지키면 선하고 옳은 사람이 되어 버리는 프레임은 우리로 하여금 법망을 피해 가는 묘수들을 찾게 만듭니다. 어떻게든 법으로 걸리지 않는 일은 괜찮은 것으로, 심지어 옳은 것으로 둔갑해 버리죠.

 

우리는 좋은 것보다 나쁜 것을 생각하는 데 더 익숙합니다. 잘 될 것이라는 상상보다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훨씬 많죠. 때론 예측으로, 때론 대비로 그런 생각들을 합니다. 그러나 그 생각은 더 좋은 나를 만들기 위한 준비의 과정이라기보다, 우리의 프레임일 가능성이 훨씬 큽니다. 인생은 어렵고, 되는 것이 없고, 원하는 대로 되지 않고, 늘 방해를 받는다는 프레임 말이죠. 심지어 그 프레임은 사탄이라는 객체를 상정해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실패를 조장합니다. 

 

"실패는 생각하지 마!" 좋은 말이 아닙니다. 여전히 우리의 머리는 실패를 전제할 테니까요. "미워하지 마!" 이것도 우리 버리자고요. 미움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인식밖에는 우리에게 남는 것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이러면 안 될 거야... 저러면 틀릴 거야... 이런 생각의 프레임에서 벗어나면 어떨까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새로운 계명을 주셨는데, 그것은 '서로 사랑하라'였습니다. 미워하지 말라도, 죄를 짓지 말라도 아니었어요. 오히려 회개하라였습니다. 죄를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묵상하고, 지나간 잘못에 눈물짓는 것이 아니라 돌아갈 아버지 집을 그리워하는 것이 그분의 뜻이었습니다. 바둑에서 복기는 내 패배를 곱씹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있을 대전을 기대하는 거예요. 우리의 프레임을 전환해야 합니다. 믿음은 거기서부터 출발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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