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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에스더서묵상

여러분의 매일이 부림절이 되게 하세요.

에스더 9:20-10:3 여러분의 매일이 부림절이 되게 하세요.

에스더서의 내용은 간단하죠.
페르시아에서 노예와 소수민족으로 살던 유대인들이
몰살 당할 위기에 빠지는데요.
오늘날로 말하면 인종차별이나 민족청소와 같은 일을
당하는 것과 같은 셈이죠.
그 일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하만은
제비를 뽑아 그 학살의 날을 정합니다.
이런 사실을 알게된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목숨을 걸고 왕께 하소연을 하죠.
그 하소연은 기적적으로 받아들여져서
그 제비뽑은 날에 도리어 유대인이 아닌 하만의 무리들이
처형을 당한다는 내용입니다.

가볍게 보면 인과응보, 권선징악의 스토리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스토리의 토대는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그림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어둠의 자녀로 살아가야 했던 우리들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셔서 오히려 죽음에서 생명으로 바꾸신 그 구원의 역사를 닮았기 때문이죠.

이미 말씀드렸던 바대로 유대인들은 이 날을 절기로 지켰습니다.
제비를 뽑는다는 의미의 단어 '부르'에서 따온 '부림절'로 지킨 것이죠.
부림절은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우리들을 기적적으로 살리신 하나님께 감사와 기쁨의 제사를 드리는 절기입니다.
구원의 기쁨을 찬양하고, 그 기쁨을 이웃에게 은혜로 베푸는 절기가 부림절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원수는 모래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막을 걷던 두 친구가 타는 목마름과 지침으로 신경이 날까로와져서 서로 싸웠습니다.
급기야 친구가 다른 친구의 뺨을 때리고 말았죠.
그때 뺨을 맞은 친구가 모래에 이렇게 적었답니다.
"이 친구가 오늘 나의 뺨을 때렸다."
다시 길을 걷다 오아시스를 만났습니다.
너무 기쁜 나머지 두 친구는 물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물 속에 늪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뺨을 맞았던 친구가 그 늪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다른 친구는 그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졌습니다.
가까스로 늪에서 나온 친구는
이번에는 돌에다 이렇게 새겨 놓았습니다.
"이 친구가 오늘 나의 생명을 구했다."
그 광경을 본 친구가 물었답니다.
"왜 아까는 모래에다 쓰고, 지금은 돌에다 새기는가?"
그때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다죠.
"원수는 모래에 적어서 바람이 불면 금방 씻겨 가도록 하기 위한 것이고, 은혜는 돌에 새겨서 영원히 간직하려고 하는 것이라네."

주님께서 성만찬을 제정하시면서
이를 기억하고 기념하라고 하셨죠.
우리는 주님께서 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그 기억으로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불평들을 더 많이 기억합니다.
마치 은혜는 모래에 새기고,
불평이나 불만은 돌에 새기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아 새로운 삶을 얻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아마도 우리의 삶을 불평으로 허비하지는 않을지 모릅니다.
우리가 값없이 은혜를 입었음을 기억한다면 아마도 우리는 얻지 못한 것에 불만을 품으며 분노에 사로잡혀 살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에스더서에서 딱 한가지 주제를 정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은혜를 가슴판에 새겨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수많은 일들이 우리 삶에 있지요.
어둠도 고단한 삶, 지치고 힘겨운 삶이 우리에게 있죠.
또한 기쁘고 행복한 삶도 있습니다.
미움을 받을 때도 있지만 사랑을 받은 때도 있죠.
원수가 될 때도 있지만 같은 마음으로 서로 응원하고 받을 때도 있죠.
우리의 삶은 종합예술입니다.
너무도 다양한 경험과 감정이 어울어져 있죠.
그러나 우리의 기억에는 그 모든 것을 다 담을 수가 없습니다.
아니 다 담을 필요가 없죠.
선택과 집중이 중요한 것처럼 우리도 기억해야 할 것과 망각해야 할 것들을 잘 구분해야 합니다.
그래서 받은 은혜와 사랑, 용기와 응원의 메시지는 돌에 새겨 언제나 남아있도록 해야 하고요.
아픔과 고통, 슬픔과 상처는 모래에 새겨서 시간이 흐르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도록 해야 하죠.

여러분의 매일이 부림절이 되게 하세요.
우리가 생각했을 때는 슬픔이었으나
하나님이 만지시면 기쁨으로 바뀜을 기억하며 사세요.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두렵고 힘겨운 것들이
하나님과 함께하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상처도 귀하게 쓰인다는 것을 명심하세요.
아직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섭리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앞으로도 수많은 반전의 기회들이 주어질 것입니다.
기억하세요.
나의 하나님은 부림절의 하나님이심을....
나의 하나님은 전화위복의 하나님이심을...

좋은 기억만 남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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