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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에스더서묵상

받은 은혜를 권리로 사용하지 마세요.

에스더 8:14-9:4 받은 은혜를 권리로 사용하지 마세요.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알지못할 우울이 몰려왔습니다.
"우리들은 왜 그럴까?"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죽을것처럼 절망하는가 하면,
조금만 높아지면 온 세상이 제 것인냥 방자해지는 모습이 씁쓸하기까지 합니다.

어제까지 고양이 앞의 쥐꼴이었던 유대인들에게
반전의 날이 왔습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이들이 기뻐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기쁨의 정도가 지나침을 보여주죠.
유대인이 아닌 이들이 유대인처럼 행동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오히려 유대인이 아닌 이들이 위험해졌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유대인들은
그들을 위험에 빠뜨렸던 이들을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권세가 주어지자 유대인들은 기고만장했습니다.

이 본문을 읽는 도중,
예전에 읽었던 역사 기록의 한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일제 강점기를 겪었던 한국 땅에 드디어 광복이 찾아 왔습니다.
무려 36년간이나 강제 지배를 당했던 민족들은
기쁨에 찬 만세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곳곳에서는 피비린내 나는 살육도 있었습니다.
한국 땅 거주 일본인들을 무참히 처형하거나
보복하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일제에 동조했던 이들도 그 바람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지독한 36년간 강점기의 울분과 수모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
그러나 광복이, 자신들에게 타민족을 죽여도 된다는 권리를 준 것은 아니죠.

중국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중국 남부에서는 희생당한 일본인들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당시 권력자였던 장개석씨가 국민들에게
일본인을 해하지 말라고 부탁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이렇게 중국 자국민들에게 부탁한 이유는
단 한가지였습니다.
당시 중국에서 고아들을 상대로 선교활동을 벌였던 일본인 선교사
가가와 도요히꼬(賀川豊彦 1888. 7.10~1960. 4.30)목사님 때문이었죠.
중국인들은 그의 헌신적인 빈민 구제활동과 선교사역에 감동했습니다.
그래서 일본이 패망한 후 장개석은
가가와목사님을 봐서라도 일본인들을 해하지 말라고 부탁했던 것이죠.
그래서 많은 일본인들이 무사히 귀국할 수 있었답니다.

성경은 한 사람으로 인해 우리가 죄에 빠지기도 하고,
또한 한 사람으로 인해 우리가 구원에 이르기도 한다고 말합니다.
그야말로 중국내 일본인들은 한 사람의 귀한 사역으로 구원을 얻은 셈입니다.

많은 설명이 필요한 이야기입니다만
저는 한 사람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받았듯이 말입니다.
우리교회가 주일공동체예배 전에 함께 모여 기도하는데요.
저는 이런 기도를 자주 드립니다.
"여기 모여 먼저 기도하는 우리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제 모일 우리 공동체 가족들을 구원해 주십시오."
그것이 중보기도이고, 그것이 예비하는 기도이기 때문이죠.

어쩌면 우리 그리스도인이 이렇게 기도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아직 믿지 않는 이들을 위해 주님께 기도할 때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이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비그리스도인을 향한 마음이어야 합니다.
그들이 돌아와 주의 백성이 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런 기회를 얻지 못했거나, 혹은 거부하는 이들을 향해
우리는 긍휼을 버려서도 안 됩니다.
그래서 중보기도는 주님께 나의 믿음을 담보로 이웃에 대한 구원을 간구해야 하죠.
그것이 이웃 사랑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높아졌다는 것이 곧, 낮은사람들을 핍박할수있는 권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해방되었다는 것이 곧, 나를 구박하고 억압했던 이들에게
복수를 할 권리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이 곧, 비그리스도인을 차별하거나 저주하는 권리가 되는 것도 아니죠.
우리가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은
모든 생명을 귀하게 여기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믿지 않는 이들도 사랑하라는 메시지이죠.

주님의 은혜를 받았다면 또한 은혜를 베풀며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었으면 남도 구원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권력을 잡은 것은 사랑하기 위함이지,
복수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가 축복을 받은 것은 나눠주기 위함이지,
자랑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가 높아진 것은 겸손을 실현하기 위함이지,
권리를 누리기 위함이 아닙니다.
받은 은혜를 권리로 사용하지 마세요.
받은 은혜는 용서와 사랑, 그리고 긍휼로 승화시키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은혜가 멈추지 않고 흐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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