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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데살로니가후서

데살로니가후서01 - 그리스도인의 경제원리는 '은혜로 받았으니 나누며 사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말씀묵상 01 | 1:2

그리스도인의 경제원리는 '은혜로 받았으니 나누며 사는 것'입니다





몇해전, 야베스의 기도라는 책이 선풍을 일으킨 적이 있죠.

야베스는 역대기에 나오는 인물입니다.

성경은 그의 생애를 2절로 짧게 다루고 있죠.

그중 역대상4:10을 가지고 브루스 윌킨슨이 쓴 책입니다.


대상 4:10,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책은 야베스의 기도를 4가지로 나눴습니다.

복에 복을 더해 주시고,

지경을 넓혀주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시고,

환란에서 벗어나 근심없게 해 달라는 것으로 말이죠.

그리고 이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이 책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쳐

놀라운 폭발력을 우리에게 선사해 주었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이 기도의 매력에 빠졌죠.


이후 후폭풍도 만만찮았습니다.

기복적인 사상이니,

인간의 욕망이 종교적 포장으로 담겼다느니

비판도 거셌습니다.


저는 야베스의 기도가 틀렸다거나

경도된 기도라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와 같은 기도를 

분명히 해야한다고도 생각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기도가 얼마나 어렵고 힘든 것인지,

그리고 얼마나 영적이며, 수고를 동반하는 것인지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복받는다고 하면 좋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이유가 있으시죠.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자녀답게 살도록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건강을 주시는 것은 주의 일을 하라는 것이고,

재물을 주시는 것은 어려운 자를 도우라는 것이며,

지식을 주시는 것은 올바른 지도자가 되라는 뜻이죠.

물론 영적 통찰력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미혹으로부터 지키고, 인도하도록 주신 사명의 도구죠.

복은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까 복을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우리의 할일도 느는 법이죠.


지경은 어떻습니까?

요즘 땅값이 오르고, 부동산 재벌이 있으니

지경이 넓어지면 부자가 될 줄 생각하시겠죠.

하나님은 신명기에서 약속하셨죠.

너희의 발바닥이 닿는 곳은 어디든지 너희 소유가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 말은 내가 그만큼 많은 사역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지경이 넓어지면 할 일도 많아지는 법입니다.


톨스토이의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라는 단편이 있습니다.

주인공은 발이 닿는 곳만큼 땅을 가지라는 말에

더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죽어라하고 걷고 뛰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는 마지막에 피를 토하고 죽고말죠.

그리고 톨스토이는 이렇게 말하면서 글을 맺습니다.

"그가 차지할 수 있었던 땅은 자신의 무덤 넓이밖에 없었다."


야베스의 지경은 욕심의 소산이 아닙니다. 

내가 할 일, 만날 사람, 땅끝까지 이르러 주의 증인될 일을 달라는 기도입니다.

야베스라는 이름의 뜻은 고통스럽게 낳았다는 뜻입니다.

그 고통이 무엇인지 저는 잘 모릅니다.

그런데 그가 형제 가운데 존경을 받았다는 성경의 소개가 있습니다.

유추컨대 그는 다른 사람과 달리 육체적인 어려움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굴하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사람이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사람들에게 존귀함을 받는다는 것은 인간적 욕심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죠.

초대교회 교인들이 사람들의 칭송을 받은 일이 있는데

그것이 인간적 욕심으로 가능한 일이었습니까?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도 

자신보다 남을, 

자신보다 공동체와 하나님을 위한 아름다움이 

존경을 부릅니다.


바울의 모든 서신에서 동일하게 사용한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은혜와 평화'입니다.

은혜란 값없이 주신 선물입니다.

그는 자신이 아무 공로없이 거져 주어진 인생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강력한 그의 삶의 철학이 된 것입니다.


우리에게 경제관념은 '노력한 만큼 번다'입니다.

그래서 내것, 내 소유를 가르치죠.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경제관념은 이것이 아닙니다.

"거저받았으니, 탕감받았으니 받은 것을 나누며 산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경제개념이어야 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월급, 권리는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내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나로하여금 주님의 일을 지속케 하는 도구일 뿐이죠.

그래야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를 수 있습니다.

우리의 경제관념이 변해야 십자가의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경제원리는 '은혜로 받았으니 나누며 사는 것'입니다.

그 은혜가 여러분께 충만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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