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묵상하는말씀/데살로니가후서

데살로니가후서04 - 나름대로 믿지 마세요

2019.01.21.월] 데살로니가후서 2:1-5
1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일과 우리가 그분 앞에 모이는 일을 두고 여러분에게 간청합니다.
2 여러분은, 영이나 말이나 우리에게서 받았다고 하는 편지에 속아서, 주님의 날이 벌써 왔다고 생각하게 되어, 마음이 쉽게 흔들리거나 당황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3 여러분은 아무에게도 어떤 방식으로도 속아넘어가지 마십시오. 그 날이 오기 전에 먼저 믿음을 배신하는 일이 생기고, 불법자 곧 멸망의 자식이 나타날 것입니다.
4 그는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이나 예배의 대상이 되는 모든 것에 대항하고, 그들 위로 자기를 높이는 자인데,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서,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주장할 것입니다.
5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이런 일을 여러분에게 거듭 말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합니까?

[BCJC 가난한 묵상] 나름대로 믿지 마세요.

데살로니가후서는 데살로니가교회에 보내는 바울의 두 번째 편지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의 믿음과 신앙에 격려를 목적으로 첫 번째 편지를 보낸 바 있습니다.
두 번째 편지는 데살로니가전서와 시차가 조금 있습니다.
약 1년 정도의 시차로 여겨지는데요.
데살로니가전서와 후서 사이에는 차이가 좀 있습니다.
내용상의 차이도 있지만 가장 먼저 바울의 어조가 차이가 납니다.
전편이 격려와 위로였다면, 후편은 경고와 질책의 어조가 강합니다.
과연 1년 동안 데살로니가교회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요?

오늘 본문에서 그 이유를 조금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 후편의 편지를 쓰게 된 동기로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일에 대해 언급합니다.
그러니까 예수 재림에 대한 문제가 동기였던 것이죠.
아마도 사람들에게는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가 떠돌았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 바울의 이름을 도용한 편지들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데살로니가교회에 혼란을 주는 일을 빈번했던 모양입니다.

문제는, 왜 예수 재림에 관한 인식이 데살로니가교회에 혼란을 준 것일까?입니다.
어떤 잘못된 인식들을 했던 것일까요?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문제는 초대교회의 최대 이슈였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부활하신 주님을 본 이들이 재림도 볼 것이라는 뜻의 말씀도 있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사람들은 곧 예수께서 재림하실 것이라고 믿었죠.
그것을 신학적 용어로 ‘임박한 종말론’이라고 합니다.
바울 또한 곧 예수께서 오실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을 적은 복음서 가운데
가장 먼저 쓰였다고 여겨지는 마가복음이 쓰인 시기를
대부분의 학자들은 AD55~60년경으로 봅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역사적으로 볼 때,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2~30년이 지나서야
주님의 행적이 담긴 기록을 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왜 그랬을까요?
기록을 담으려면 생생한 기억들이 남아 있을 때 기록하는 것이 맞을 텐데요.
이는 초대교회가 주님의 재림을 염두에 두었다는 뜻이기도 하죠.
곧 오실 것을 믿었기 때문에 기록의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데살로니가교회에도 임박한 종말론으로 인한 혼란이 생겼습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신실한 삶을 이루던 이들이 하나둘 낙오를 합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곧 주님이 올 텐데 내가 일해서 뭐하나?’
‘곧 세상이 끝날 텐데 남은 시간 즐기자!’
이런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던 것이죠.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것은 중요합니다.
분명히 주님이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일은 나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종말에 대해서 저는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그때가 언제인지, 어떤 모습일지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종말은 내가 걱정한 문제가 아니라 주님이 하시는 일이니까요.
누군가는 내일 종말이 오더라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죠.
다만 종말이든, 주님의 재림이든,
나의 자리에서 주신 사명을 다하는 것이 나에게는 더 중요한 일이죠.

오늘 본문을 통해 묵상 되는 것은 종말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임박한 종말론에 빠져 자신의 사명을 잃어버리는 태도가 오늘날 우리에게도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습니다.
그것은 자기 나름대로 믿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의 하실 일을 자기 뜻대로 해석하는 모습이 그렇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자기 입맛에 맞게 이용하는 태도가 그렇습니다.
바울은, 그런 자들이 자신을 하나님으로 칭한다고 말합니다.

오늘, 나는 이런 태도가 없는지 살펴보길 원합니다.
‘이쯤은 괜찮을 거야~’
‘말씀 안 읽는다고, 교회 빠진다고, 섬기지 않는다고, 무슨 일이 벌어지겠어?’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다고 설마 삐뚤어지겠나?’

나름대로 믿지 마세요.
제멋대로 해석하지 마세요.
신앙에 관한 한 어린아이처럼 믿으세요.
엄마의 말을 철칙처럼 믿으며 똑같이 따라 하는 그 어린아이처럼 말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그 순종이란 내 멋대로, 내 뜻대로 하지 않는 것을 말하죠.

오늘도 이 하루는 나의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주신 하루며, 주님이 주신 사명의 하루죠.
나의 기분 따라, 나의 성질 따라 오늘 하루를 평가하지 마세요.
어떤 일이 있어도, 어떤 문제가 있어도,
여러분에게 오늘 하루는 주님이 주시는 소중한 시간일 것입니다.
월요일, 다시 한번 힘차게 주님의 자녀답게 사시기 바랍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