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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데살로니가후서

데살로니가후서06 - 믿음은 하나님의 큰 그림 아래 놓이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6-12

요한일서 3장에 보면,
‘죄는 곧 불법’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도 불법이라는 말이 나오죠.
같은 말입니다.

불법이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아노미아]인데요.
이 단어를 파자하면, ‘아+노미아’로 된 합성어입니다.
여기서 [노미아]라는 단어가 법입니다.
영어에도 있죠.
Astronomy(천문학=별+법), Economy(경제=집+법) 등이죠.
앞에 붙은 [아]는 당연히 반대의 의미를 가진 단어이겠죠.
그래서 [아노미아]는 불법이 되는 것입니다.
사실 아니 불(不)보다 없을 무(無)자를 써서
무법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나은 번역이기도 하죠.

그렇다면 무법자란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단순히 법 자체가 없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뜻하는 것이겠죠.
그러니까 법이 있어도 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 말은 또 무슨 의미일까요?
법이 있지만 그 법을 지키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한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무법자란,
자기 마음, 자신의 뜻이 곧 법이 되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쯤 해서 이런 질문이 가능할까요?
우리는 죄인입니까? 아닙니까?
보통 죄를 도덕적인 죄로 오인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건을 훔치거나 나쁜 행동을 하는 것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죄를,
하나님의 법 아래 있지 않는 것,
자기가 곧 법인 사람들을 일컬어 하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 10절에는
왜 죄가 존재하는지, 왜 무법자가 나타나는지를 설명합니다.

10 또 온갖 불의한 속임수로 멸망을 받을 자들을 속일 것입니다. 그것은, 멸망을 받을 자들이 자기를 구원하여 줄 진리에 대한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죄는 주님과 멀어지는 것입니다.
죄는 주님의 뜻, 주님의 생각 아래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하죠.
그 사랑을 떠나는 것,
그래서 자신의 마음대로, 자신이 법이 되는 것이 죄입니다.
빛에서 멀면 원치 않아도 어둠이 오듯이
주님에게서 멀어지면 우리가 원치 않아도 죄의 그늘이 옵니다.
그런 죄 아래 있으면 자주 속습니다.
그런 죄 아래 있으면 마음이 출렁이죠.
평안을 잊어버리고, 외부의 작용에 의해 내가 흔들리죠.
이것이 다 속는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무법자입니까?
사람들을 판단하는데 얼마나 무법자입니까?
현실을 읽는데 얼마나 무법자인가요?

큰 그림이라는 말이 있죠?
큰 그림의 계획 아래서는 아직 이해 못할 부분들이 존재합니다.
아직 전체가 보이지 않아서 그려지지 않는 현실이 존재하죠.
그 현실에서 나의 뜻이 동원되면,
그 큰 그림 아래에서 무법자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큰 그림 아래 놓이는 것입니다.
오늘도 여러분의 하루는 주님의 큰 그림을 믿는 하루이길 빕니다.
무법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생각 아래 놓이시기 바랍니다.
나의 판단은 조금 미뤄두시고,
주님의 생각과 뜻을 살피는 여러분이 되시길 빕니다.
그렇게 주님을 조금씩 알아갈 때,
우리는 합법자가 되죠.
바로 주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자녀로 합당한 삶을 사는 여러분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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