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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신명기묵상

신명기묵상02] "우리에게 공평과 균형의 기준은 저울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신1:17)

"우리에게 공평과 균형의 기준은 저울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신1:17)

 

 

 

 

 

잠언기자는 “교만이 패망의 선봉”(잠16:18)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패망이란 곧 하나님을 떠난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교만이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를 떠나게 하고, 하나님과 단절케 하는 도구라고 말하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교만이 무엇인가를 알아야하지 않겠습니까?

 

가끔 우리는 자기자랑이 교만인 줄 압니다. 그러나 요즘 같은 PR시대에 자기자랑을 하지 않으면 자신을 알릴 기회가 없습니다. 겸손하다는 사람들 중에는 자신에 관한 PR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면 해야 하고, 알려야 합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뒤로 빼는 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적극적으로 자신의 사명을 알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치를 알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분명 교만이 아닙니다. 비록 자기에 대한 자랑이 지나쳐 부풀렸다면, 그것은 과장의 죄이고, 없는 말을 하면 거짓의 죄일 뿐입니다. 우리는 과장도, 거짓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교만은 분명 과장과 거짓 이상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아이성 전투에서 대패를 하고 말았습니다. 여리고성이라는 난공불락의 요새를 일주일만에 함락한 기세에 비한다면 아이성은 그저 입김만 불어도 쓰러질 작은 성이었는데, 이스라엘백성은 예상외의 패배를 맛보아야 했습니다. 여기에 제1의 교만이 있습니다. 나의 기준으로 남을 평가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여리고성을 정복한 후 아이성을 바라보면서 3,000명쯤이면 된다느니, 아니 2,000명으로도 충분하다느니, 자신들 스스로 아이성을 평가합니다. 죄에는 크고 작은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떤 죄든 회개는 철저하고 확실하게 해야 합니다. 사자도 토끼새끼 한 마리 사냥할 때, 최선을 다합니다. 사냥은 그냥 사냥이고, 전쟁은 그냥 전쟁입니다. 쉬운 전쟁, 어려운 전쟁이 없습니다. 영적인 싸움에서도 그렇습니다. 내가 이길 수 있는 영적 싸움과,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영적 싸움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영적 싸움 앞에서는 언제나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하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나의 평가와 판단을 근거로 앞뒤를 재는 일, 이것이 제1의 교만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대할 때도 그렇습니다. 언제나 사람을 평가합니다. 첫인상이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그것처럼 교만한 말이 없습니다. 첫인상, 그 몇 초, 그 몇 분의 시간에 그 사람을 평가하는 못되고, 황당한 버릇이 그 말에 다 들어가 있습니다. 어찌 우리가 그 짧은 시간에 그 사람을 평가할 수 있고, 다 알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 사람이 어찌 변하고, 어찌 성장할지를 알고, 오늘 그를 판단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판단하시는 눈으로 보셨다면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 있지도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다리심은 우리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생명을 판단한 기준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우리가 가진 생명에 대한 판단의 기준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그분이 생명을 사랑하라시면 사랑해야하고, 생명을 구하라시면 구해야 합니다. 나의 호불호와는 전혀 상관없이 말입니다.

 

여호수아서의 아이성사건은 더 큰 교만에 대해서 계속 설명합니다. 바로 아간의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리고성의 모든 물건에 대해 손대지 말라 명하신 것을 아간이 지키지 않고 도둑질을 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이스라엘백성은 아이성에서 패배를 맛보아야만 했습니다. 아간이 전리품을 훔친 사건은 단순한 도둑질이 아닌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 아간이 어긴 일은 단순한 탐심 이전에 스스로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 재단하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쯤이면 괜찮겠지, 이 작은 것을 뭐라고 하시겠어?”

 

간혹 우리는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하나님이 너무 하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까지 하셔야하는지에 대한 불평이 들기도 합니다. 그 원망과 불평의 근거가 다 나의 상식과 판단입니다. ‘내 생각에는 그런데 왜 이렇게 되지 않는가?’에 대한 원망과 불평입니다. 언제나 문제는 하나님의 길과 생각을 재단하고 판단하여 각색했던 사람들에게서 나옵니다. 이것이 제2의 교만이고 우리 인생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패망의 길의 선봉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생명에 관한한 하나님은 차별하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계층을 나누고, 사람을 차별한다면 그것은 사회문제가 아니라 교만의 문제이고 영적인 문제입니다. 우리들은 세계적인 약속을 철칙처럼 믿습니다. 저울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약속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저울이 정확하다 외쳐도, 그리스도인의 저울은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빈부의 차이를 어쩔 수 없다고 세상이 소리칠 때, 교회는 차별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을 걸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패망의 선봉이 되는 교만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앞에, 사람 앞에 두려워하지 말고, 균등과 균형의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나 그리스도인이 양극화에 동조해서도 안 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계층간의 갈등과 차별의 문제를 해소하는 길에 나서야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사회적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교만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나라와 민족이 이 교만의 문제에 부딪쳐 패망을 했습니다. 우리나라, 한국교회가 바로 그 문제 앞에 놓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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