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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신명기묵상

신명기묵상 62 - 언제나 내가 받기 원하는대로 남에게 행동하세요.(신명기 22:13-30)

오늘 본문은 읽으신 그대로입니다.
건강한 이성을 가지고 있다면 따로 해석을 붙이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죠.
더 나아가 특별히 신앙을 갖지 않는 이조차도
동의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입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사자성어가 있죠.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하라는 뜻이죠.
우리는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에 깊은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나와 상관없는 일에는 큰 관심이 없죠.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어떤 교회의 목사가 이런 말을 해서 공분을 산 일이 있습니다.
‘가난하면 설악산이나 가지 제주도까지 가서 그 꼴을 당하냐?’
아마도 그 세월호 참사를 당한 이들 가운데
자신의 자녀나 가족이 있었다면 그런 말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만약 그럼에도 그런 말을 스스럼없이 한다면
그것은 영혼에 인이 박인 사람이겠죠.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철학자 가운데
아리스토텔레스라는 분이 계십니다.
유명하다 못해 철학자의 대명사쯤으로 여기는 분이죠.
아마도 이런 철학자라면 언제나 옳은 생각만 할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여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그 당시, 여성에 관한 편견과 멸시에도 불구하고
아리스토텔레스 정도 되면 꽤나 진보적인,
아니 적어도 중도적인 인식을 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시죠?
그러나 아쉽게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여성에 대한 인식은
우리의 상상을 무참히 깨버립니다.
그는 여성을 단순히 아이 낳는 기계로 봤으니까요.
더 나아가 그는 여성이 남성에 비해 이성적 사고력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여성은 남성의 지배를 받아야 온전하다고 역설했죠.
오늘날 이런 말을 했다면 아마도 돌 맞았을 법합니다.
게다가 이런 소리가 결코 깊은 자기 성찰과
고뇌의 사고를 업으로 삼는 철학자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죠.
이렇듯, 여성에 대한 차별적 인식은 뿌리가 깊습니다.

이는 여성만을 지칭하지는 않습니다.
여성, 장애, 소수자, 인종 등 다양한 곳에 나타납니다.

축구선수 가운데 악동이라는 별명을 가진 선수가 있습니다.
발로텔리라는 이탈리아 선수죠.
악마의 재능이라고 말할 정도의 실력을 갖췄던 선수였습니다.
그런데 이 선수가 어느 순간 사라졌어요.
실력이 급감하더니 이제는 그저 그런 선수로 전락한 거죠.
보통 유능하던 선수들이 성장이 멈추는 경우가 있습니다.
촉망받는 선수들이 어느 시점에서 더 이상 유망주가 되지 못하는 경우는 허다하죠.
이 선수도 그런 류에 속하는 셈이죠.
그런데 이 선수에게는 조금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이 선수는 터프하고 거칠고, 어디서나 강한 멘트를 내뱉는 그런 선수인데요.
어느 영상에 보니까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그라운드에서 뛸 때마다 관중들의 조롱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인종차별이죠.
그는 흑인 선수입니다.
그를 향해 관중들은 바나나를 던지고, 원숭이 소리를 냈습니다.
그가 공을 잡으면 여기저기에서 동물소리를 내며 조롱했죠.
그런 대접을 받을수록 그 선수는 경기에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벤치에 돌아간 그는 매번 얼굴을 처박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직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요원합니다.
배려는 단순히 동정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가 누군가를 돕는 것은 사명이라고 생각하더라고요.
그런데 그는 사명이 뭔지 잘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사명을 단지, 하고 싶지는 않지만 하라고 하니까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많은 교회가 그렇고 봉사자들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사명이라는 것은,
내가 하고 싶지 않아도 명령이니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명은 행동이 아니라 결심입니다.
사명은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나무라는 힘이에요.
사명은 역지사지하는 능력이고요.

예수님은 탁월한 역지사지의 능력자셨습니다.
그는 아픈 자를 만날 때 자신이 치료자여서 고치신 것이 아닙니다.
그는 그 아픈 자의 마음이 곧 자신의 마음이 되었기 때문에 고치신 거예요.
사랑 또한 어디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역지사지의 능력에서 만들어지죠.
그의 마음이 나의 마음 될 때만이 사랑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의 마음이 나의 마음 되지 못하면 사랑할 수가 없어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그것은 역지사지의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과 공감,
그것 또한 역지사지의 능력으로 통하죠.
하나님이 우리를 역지사지하시면서 사랑하시고, 도우셨듯,
그렇게 용서하시고 이해하시며, 용납하셨듯
우리도 역지사지의 능력을 만들어 가시기를 빕니다.

언제나 내가 받기 원하는 대로 남에게 행동하세요.
언제나 내가 듣기 원하는 대로 남에게 말하시고요.
그것이 영적 능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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