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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성경본문올바로읽기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성경본문올바로읽기]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요한복음14:13~14,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내가 무엇이든지 다 이루어 주겠다. 이것은 아들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는 것이다.

14 너희가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1. 기도는 어렵다.

기도에 대한 내용을 다루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어려운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요.

첫 번째 어려움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도에 대한 선입견이 너무 강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기도가 어려운 것이 아닌지도 모르죠.

아마도 기도가 뭐냐고 물으면 그리 깊이 생각하지 않고도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을 겁니다.

나의 유익, 나의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갈망하며 절대자에게 비는 행위이죠.

이것은 대대손손 우리에게 주어진 인간의 본성과도 같은 것입니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우리 안에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주셨다는 말을 합니다.

로마서1:19 하나님을 알 만한 일이 사람에게 환히 드러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환히 드러내 주셨습니다.

이것을 철학적 용어로는 신관이라고 하죠.

그러니까 우리 안에 절대자를 향한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이 신관이 꼭 진짜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에덴동산에서 범죄했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는데요.

그런데 사람들은 이 문제를 조금 가볍게 보는 것 같습니다.

그 이야기는 죄의 경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단순히 어떤 죄, 행위에 국한한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우리의 어떤 행위로 하나님께 범죄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지난주일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이것이 틀린 말은 아닌데 꼭 맞는 말도 아니죠.

사실 우리가 범죄했다는 것은 죄라고 표현하는 것보다 다른 의미로 표현하는 것이 훨씬 정확할 것 같아요.

바로, 감염이죠.

제가 독감에 걸려서 고생했잖습니까?

독감이라는 것이 바이러스에 걸린 거거든요.

바이러스가 내 몸의 모든 부분에서 이상증상을 일으키게 되는데요.

팔다리는 떨어져나가는 것 같고, 이불을 덥고, 전기장판을 올려도 춥고 떨리게 하죠.

모든 감각기관의 이상이 생긴 것이죠.

이것을 비정상이라고 하는데요.

범죄가 바로 그렇습니다.

우리 안에 자리잡은 신관에도 바이러스가 침투해 버리죠.

그래서 신관, 즉 하나님을 알만한 것을 심으셨으나 바이러스는 그 신관을 하나님이 아닌 나를 위한 가상의 어떤 절대자를 만들어버리고 거기에 절대화를 시키는 겁니다.

그러니 당연히 기도라는 개념 또한 왜곡되고 말았겠죠?

 

2.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어느 날, 제자들이 있는 곳에서 예수님이 기도를 하셨어요.

제자들은 기다렸다가 기도를 마치신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달라고 요구하죠.

그런데 그렇게 주님께 요구할 때 토를 단 게 있어요.

누가복음11장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누가 물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제자중 하나가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복음11:1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준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그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이 말에서 보면 예수님보다 먼저 사역을 시작했던 광야의 세례요한도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쳤다는 사실이 드러나죠.

이 말은 사람들이 기도가 뭔지 궁금해 하고 있다는 의미도 담고 있지만, 잘못된 기도에 대한 올바른 방향의 기도에 대한 가르침이 필요했다는 반증이기도 하죠.

그리고 예수님께서 공생애기간 내내 제자들에게 기도에 대해 가르쳐주셨어요.

그런데 그 가르침 중에 핵심은 뭘까요?

바로 내 이름으로입니다.

예를 들어보죠.

여러 차례 언급한 바가 있는 마태복음18장에는 어린 아이를 영접하는 것이 나를 영접하는 것이라는 말씀이 나오죠.

하늘나라에서 누가 가장 큰 자인가?라는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셨죠.

그런데 이 말씀을 하실 때 정확한 워딩은 이것입니다.

마태복음18: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 하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하는 것이다."

 

여기서 내 이름으로라는 말이 나옵니다.

또 있습니다.

연속해서 18장인데요.

지난 수요일 말씀의 본문입니다.

마태복음18: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여 있는 자리, 거기에 내가 그들 가운데 있다."

여기도 내 이름으로라는 말이 나오죠.

몇 가지 더 읽어보겠습니다.

누가복음9:39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막지 말아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고 나서 쉬이 나를 욕할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요한복음14:26 그러나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며, 또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

예수님은 기적을 말할 때에도, 성령을 말씀하실 때에도 내 이름으로라는 말을 언급하시죠.

 

우리는 기도할 때, 늘 주님의 이름으로라는 말을 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이유가 있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예수님께서 우리의 변호인이 되어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변론해 주시죠.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분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의 믿는 빽처럼, 보증수표처럼 그분의 이름을 사용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시고 우리를 받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만 대면 모두 무사통과인가 하는 점입니다.

음악회나, 영화관람해 보셨죠?

아무나 극장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극장에 들어가려면 티켓이 있어야 하죠.

여러분이 티켓을 제시하면 극장에 들어가실 수 있는데요.

티켓을 검사하는 이는 그 티켓이 어떤 티켓인가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그 티켓이 정상적으로 산 티켓인지, 아니면 주운 티켓인지, 아니면 빼앗은 티켓인지 분별하지 않아요.

그냥 티켓이면 다 무사통과입니다.

그렇다면 예수의 이름이 바로 그런 것일까요?

우리는 그분의 이름만 대면 우리의 소원을 다 말해도 될까요?

우리 그러잖아요.

내 이름대고 다해~ 내 이름대고 다 먹어....”

이게 대단한 권세잖아요.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내 이름으로 구하면이라고 하신 의미가 그런 것일까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다고 나의 기도는 다 온전한 것일까요?

과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 이름으로 구하면이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것을 우리가 알아야 기도의 의미도 제대로 알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3. "너희가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오늘의 본문인 요한복음14장의 배경을 조금 살펴보아야 합니다.

전장인 13장에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자신이 수난을 당하실 것이라는 사실도 말씀하시죠.

그리고 14장에 넘어와서 근심하지 말고 믿으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고, 자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심을 선포하시죠.

그런다음, 오늘의 본문 말씀을 하시는데요.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말씀을 하신 장소는 어디일까요?

, 마지막 만찬의 때, 그 장소이시죠.

어찌 보면 정말 엄중한 시기, 그리고 비장한 장소에서의 말씀입니다.

생각해보면 조금 사리에 안 맞는 스토리일지도 몰라요.

이제 곧 주님은 배신을 당해 십자가에서 처형을 받을 차례입니다.

그렇다면 아마도 제자들뿐만 아니라 따르던 사람들도 치명상을 입을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런데 그때, 예수님은 내 이름으로 구하면더 큰 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시죠.

왜 제가 사리에 반하는 스토리라고 말씀드렸느냐면,

생각해보세요.

제자들이 그 상황에서 과연 주님의 이름으로 어떤 것을 구하겠어요?

여러분이 제자라면, 주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더 큰 능력도 발휘할 것이라는 사명을 받았을 때, 그 다음날부터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 앞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구하시겠어요?

제자들이 원하는 일이 뭐겠어요?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려오시고, 그를 반대하는 이들은 꺼꾸러지고, 이제 자신들이 꿈꾸는 세상, 자신들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위해 기도하지 않겠어요?

만약 주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이 여러분의 유익을 위한 티켓이라면 말이죠.

 

4. 응답받는 기도의 열쇠

오래전부터 여러분에게 말씀드린 기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응답받는 기도가 따로 있다고요.

많은 이들이 조지 뮬러의 기도에 대해 논합니다.

일만번 기도해서 모두 응답받은 조지 뮬러를 우리는 기도의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기도한대로 응답을 받으니 얼마나 귀하고 훌륭합니까?

여러분도 그렇게 기도의 응답을 받고 싶으시죠?

그러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그런 능력의 기도자가 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외람되게도 기도응답의 능력은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다.

기도의 능력은 주님의 이름으로 구하는데 있어요.

조금 헛갈리십니까?

그러니까 능력은 주님의 이름을 티켓으로 삼는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 주님의 뜻, 주님의 마음이 능력이라는 말씀입니다.

조지 뮬러가 100% 기도의 응답을 받은 것은 그가 능력자여서가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는 주님의 마음, 주님의 이름이 거할만한 기도를 했을 뿐입니다.

주님의 이름이 어울릴만한 기도를 했을 뿐이죠.

주님이 기뻐하시고, 주님이 기꺼이 행하실 기도를 골라서 한 겁니다.

자신의 유익이나, 자신의 마음, 자신의 뜻을 기도한 것이 아니라 말이죠.

 

주님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은, 주님의 이름을 티켓화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존재와 그분의 가르침과 그분이 상징하는 것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라는 것은 그분의 뜻대로라는 의미입니다.

이에대해 사도요한은 이렇게 이야기하죠.

요한일서5:14~15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가지는 담대함은 이것이니, 무엇이든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청을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하나님이 우리의 청을 들어주신다는 것을 알면, 우리가 하나님께 구한 것들은 우리가 받는다는 것도 압니다.

 

5. 온전히 기도하기 원한다면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

호세아선지자가 여호와를 힘써 알자고 외쳤죠?

왜 우리가 여호와를 알아야 합니까?

바로 우리가 구해야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분을 알아야 가능하기 때문이죠.

여호와를 알아야 우리의 갈 방향과 삶의 방향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우리의 개인적 의견과 욕구를 충족케 하는 도깨비방망이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내가 알아야할 하나님의 뜻입니다.

아마도 우리는 각자의 삶이 다 다를 겁니다.

하나님은 일괄적으로 우리를 대하시지 않으시죠.

그러기에 신앙과 삶 또한 일률적이지 않죠.

다만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구하는 일은, 그것은 직접적으로 내 삶을 바꾸는 일이 됩니다.

내 가정에서 내가 어떻게 서야 하는지,

내 삶의 자리에서 내게 원하시는 바는 무엇인지,

내 주위사람들과 만나게 하시는 분들 앞에서 하나님의 바람은 무엇인지를 구하고 또 구해야죠.

 

요즘 영화 1987년이 화제입니다.

1987, 저는 대학교 4학년이었습니다.

소위 610항쟁이라는 그 때, 저는 서울역 앞, 지금은 통행이 폐쇄된 고가도로 위에 있었습니다.

최류탄 연기와 수많은 사람들이 뒤엉킨 그 현장에 있었어요.

1987년 영화의 기초는 박종철이라는 한 학생의 죽음에서 시작되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그는 저와 같은 나이이고, 부산 토성초등학교 동창생입니다.

엊그제 인터뷰를 하나 들었습니다.

최초로 박종철씨를 검안했던 의사의 인터뷰였어요.

당시 한 대학병원의 전공의였답니다.

처음 갔을 때, 느낌이 물고문에 의한 사망이라는 생각을 했데요.

그러나 너무 엄중한 시기라 말은 못했지만 그가 한 일이 몇 가지 있더라고요.

일단 병원으로 옮기자는 대공수사팀의 의견을 막고, 대공분실에서 숨진 것으로 조서를 꾸몄답니다.

숨진 장소가 달라지면 사건의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었답니다.

그리고 물에 의한 익사라는 소견을 냈데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유명한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그때, 기자들의 인터뷰에서 이분은 사인이 물고문이라는 사실을 처음 밝혔답니다.

그로 인해서 미행과 감시, 며칠간의 조사와 협박을 받았데요.

인터뷰이가 왜 그 때, 그 무서운 시기에 그런 솔직한 말을 했느냐고 묻더라고요.

안 무서웠느냐고...

그랬더니 이 분 이야기가 무서웠는데... 나중에 내가 비겁하게 침묵하고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게 더 자신을 괴롭히고 무섭겠다 싶더래요.

제가 이분의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이 말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지금은 개인병원을 하고 계신 분이었는데요.

마지막으로 인터뷰이가 이런 질문을 했어요.

어떤 나라를 꿈꾸십니까? 어떤 나라가 선생님이 바라시는 나라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분의 대답이 저의 귓가에 머물렀습니다.

나 같은 의사는 의사의 자리에서, 선생 같은 분은 선생의 자리에서, 정치인들은 정치의 자리에서 자신에게 맡는 소임을 다하는 사회, 그리고 그렇게 작은이들이 서로 맞아서 융합하고 서로 돕는 사회, 그것이 정말 아름다운 사회가 아닐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사역에는, 신앙에는 무슨 구별된 상이 없습니다.

정말 가장 귀한 상급을 받는 신앙은 바로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통한 하나님의 마음을 실천하고 사는 것이죠.

저는 저와 여러분이 주님의 이름으로 구할 때, 그것이 주님의 마음으로 구하고, 주님의 뜻에 따라 구하고, 주님의 계획에 따라 행하는 주님의 사람이 되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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