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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성숙시리즈03]길 THE WAY

3. 권력에 대항하는 길


마태복음21:23~27,

23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고 계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다가와서 말하였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시오?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
24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나도 너희에게 한 가지를 물어 보겠다.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를 말하겠다.
25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왔느냐? 하늘에서냐? 사람에게서냐?” 그러자 그들은 자기들끼리 의논하며 말하였다. “‘하늘에서 왔다’고 말하면, ‘어째서 그를 믿지 않았느냐’고 할 것이요,
26 또 ‘사람에게서 왔다’고 하자니, 무리가 무섭소. 그들은 모두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니 말이오.”
27 그래서 그들은 예수께, 모르겠다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내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를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어제 성전에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던 것을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날 밤을 베다니에서 보내신 예수님은 다음날 다시 성전을 찾으셨습니다.
다음날의 성전은 잠잠했습니다.
대신 전날 광경을 목격했던 사람들은 단번에 예수님을 알아봤습니다.
그들은 자석에 끌린 듯 예수님 앞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이 몰려오자 예수님은 늘 해 오셨던 대로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무엇을 가르치셨는지, 어떤 메시지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성경에 자세한 내용이 적혀있지 않고, 그저 “가르치셨다”라고만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말씀일지에 대한 유추는 가능합니다.
아마도 전날에 있었던 일과 관련된 말씀을 하셨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는 성전의 의미, 그리고 신앙의 의미에 대해 말씀을 나누셨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 말씀에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에 대한 비판이 담겨져 있음은 불 보듯 뻔하죠.
영화나 드라마에 보면 이런 장면에 꼭 등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군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라치면 꼭 그 누군가가 그 자리에 오죠.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 드라마처럼 꼭 등장하는 그들이 왔습니다.
바로 ‘대제사장들과 백성들의 장로들’입니다.

그들은 지금 예수님께 와서 이렇게 따졌습니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시오?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
어제의 예수님의 행동은 웬만한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일이죠.
이것은 단순히 자격에 대한 시비를 거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매우 고차원적인 시비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행동하시는 이면에는 하나님의 특권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들은 지금 예수님으로부터 “하나님께서 이런 특권을 주셨다.”라는 말을 기다린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를 신성모독과 이단으로 정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니라고 한다면 자격이 없는 자의 객기로 처벌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를 잘 아셨던 예수님은 그들에게 되물으셨습니다.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왔느냐? 하늘에서냐? 사람에게서냐?”
세례요한은 당시 유대인들에게 가장 유명한 영적지도자였습니다.
특별히 제야인사로 모든 이들에게 존경을 받던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헤롯으로 인해 처형을 당한 이후에는 더더욱 그에 대한 존경심은 커져갔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를, “돌아온 엘리야”라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이를 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질문에 대답하기가 곤란했습니다.
왜냐하면, 세례요한은 하나님의 예언자가 아니라고 말하면 백성들에게 지탄 받을 것이 확실했고요.
그가 하나님의 예언자라고 말한다면 왜 그의 말을 믿지 않느냐고 공격당할 것이기 때문이죠.
참고로 세례요한은 회개를 외쳤고, 종교지도자들의 문제들을 비판해 왔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말씀의 전부 다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중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데요.
사실 대제사장은 여러 명이 아니라 단 한명입니다.
마치 카톨릭에 교황이 단 한명인 것처럼, 유대교의 대제사장은 단 한 명이죠.
그런데 성경은 대제사장들이라고 복수로 쓰고 있습니다.
엄밀히 보면 어법에 맞지 않는 말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이 표현은 의도된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대제사장은 가야바였습니다.
그런데 안나스라고 하는 전임 대제사장이 당시 살아있었습니다.
그는 가야바의 장인이기도 하죠.
당시 가야바가 대제사장이었지만 실세는 여전히 그의 장인인 안나스가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고 맨 처음 끌려간 곳은 대제사장의 관저였는데요.
그 관저 앞마당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는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앞에 나타난 인물은 가야바가 아니라 안나스였습니다.그만큼 막강한 실세였다는 것을 증명하죠.
마태는 그들 모두를 대제사장들이라는 표현으로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권력은 집안끼리 세습이 되었습니다.

이 본문 말씀을 가지고 오늘 여러분과 나눌 묵상은 권력에 관한 것입니다.
권력이라 함은 ‘부와 명예, 권한과 힘’을 다 내포하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권력을 탐합니다.
왜냐하면 권력이 편안함을 가져다주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권력을 추구합니다.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하고, 권한도 많이 갖고 싶어 하죠.
돈을 왜 많이 벌고 싶어 할까요?
권한은 왜 많이 갖고 싶어 하죠?
늘 말씀드리지만 그것은 필요해서가 아니라 편해서 그렇습니다.

가끔 세일을 하는 물건을 살려고 줄을 서게 되죠.
긴 줄이 줄어들 줄을 몰라요.
무덥거나 추우면 그 줄에 서 있는 자체가 서럽죠.
마트에서 특판이라고 몇 백 원, 혹은 몇 천 원 싸게 살 기회가 생기면 뛰어갑니다.
옆에 같이 뛰는 사람보다 더 빨리 가려고 젖먹던 힘까지 내기도 하죠.
그러다 지쳐 쓰러지거나 기회를 놓치기라도 하면 허망한 마음까지 듭니다.
그리고 생각하죠.
“나도 돈 있으면 이 짓 안 한다…”

병원에서 줄서는 것보다 특진비 더 내고 바로 의사선생님 만나 치료받기 원하죠.
아는 선생님이 계시면 더 좋고요.
그래서 병원에 입원을 하면 아는 선생님이 계신지 작은 연줄이라도 찾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하는 것이 있죠.
“우리 집안에 의사 한 명 있으면 좋겠다…”
왤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권력은 사명의 도구이지 편안함의 도구가 아닙니다.
최근 우리는 또 다른 전직 대통령의 구속을 바라보았습니다.
권력을 사유화하고 자신의 편안함의 도구로 만든 모습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끊임없이 추구하고, 오르려고 애쓰는 권력은 내려놓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얻은 권력이고, 어떻게 쌓은 권력인데
순순히 내려놓을 수 있겠습니까?
대제사장이던 안나스나 가야바 또한 그렇습니다.
어떻게 그 자리까지 올라왔는데요.
어떻게 그 권한과 막강한 권력을 얻었는데요.
어느 때는 민족의 원수인 로마에 빌붙어서,
어느 때는 자기 민족을 억압해서라도 얻은 권력입니다.
자신의 부와 명예를 위해서는 민족도, 가족도, 친구도 없습니다.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는 양심도, 신앙도 져버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옳은 말을 하는 세례요한을 멀리해야 했고,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는 이들은 어떻게든 없애야 했습니다.
권력 때문이죠.

이것이 어디 그들만의 일입니까?
우리 모두 권력을 추구합니다.
우리 모두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만 해야 하는 것이 있어요.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죠.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왔느냐? 하늘에서냐? 사람에게서냐?”

정말 묻습니다.
세례요한의 사역은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그가 세례를 주는 특권, 그리고 용감하게 사회를 비판하며 회개를 선포하는 특권은 어디서 왔나요?
그가 광야에 사는 특권은요?
그것도 권력입니다.
좋은 말로는 영적인 권력이라고 하죠.
그게 어디서 왔습니까?
아마도 이 질문에 여러분은 모두 “하나님에게서”라고 대답하시리라 믿습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는 권력은 모두 하나님에게서 나와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사명으로 주어지는 권력이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하시면 권력을 주십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사명에 그 권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사명이 다하거나 바뀌면 그 권력 또한 바뀝니다.
내가 추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권력이기 때문에 또한 내려놓는데 하등 문제없습니다.

우리의 생명이 그렇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우리가 추구해서 얻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내가 필요하셨고, 나의 사명이 있기에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 생명은 사명을 이루도록 주신 것입니다.
사명이 다하면 이제 주님이 가져가셔도 아무 이의가 없는 생명입니다.
그런데 생명을 내가 추구해서 얻으면 결코 놓을 수가 없습니다.
죽기를 두려워하고, 거부합니다.

저는 여러 번 여러분에게 주기도문의 순서를 말씀드렸습니다.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에는 주님의 이름을 높이는 말씀이 맨 먼저 나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겨지도록 제가 하겠습니다.”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제가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이 “일용할 양식”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양식, 즉 권력은 주님의 이름을 높이는데 필요할 때 주어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 권력, 명예 나쁜 것이 아닙니다.
다만 부와 권력은 내가 추구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셔야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높이는데 부가 필요하면 하나님이 주십니다.
주님이 주신 사명을 이루는데 여러분에게 권력이 필요하면 하나님이 주십니다.
따라서 권력은 내가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키십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주님의 뜻을 이루는 일 뿐입니다.

권력을 얻기 위해 기도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주시는 사명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이 사명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 나갈 때 주님은 여러분에게 권력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할 때, 여러분의 곳간에 기름이 마르지 않을 것이고, 나누어도 나누어도 줄지 않는 12광주리의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권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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