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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사무엘서묵상일기

사무엘서묵상일기212 - 가까운 사람을 소홀히 대하지 마세요.

삼하 19:11~14   온 이스라엘이 하는 말이 다윗 왕에게 전달되었다. 다윗 왕은 두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에게 사람을 보내서, 이렇게 말하였다. "유다 장로들에게 나의 말을 전하여 주십시오. 그들이 어찌하여 왕을 다시 왕궁으로 모시는 일에 맨 나중이 되려고 하는지, 그들은 나의 친족이요 나의 골육지친인데, 어찌하여 왕을 다시 모셔 오는 일에 맨 나중이 되려고 하는지,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아마사에게는, 그가 나의 골육지친이면서도, 요압을 대신하여 군대 사령관이 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나에게 무슨 벌을 내리시더라도, 내가 달게 받겠다고 하더라고 알려 주십시오." 이렇게 다윗이 모든 유다 사람의 마음을 하나같이 자기 쪽으로 기울게 하니, 그들이 왕에게 사람을 보내서 말하였다. "임금님께서는 부하들을 모두 거느리고, 어서 빨리 돌아오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의 정치력이 발휘되는 이야기로 채워져 있습니다. 짧은 본문이지만 정말 여러 가지 속셈들이 집약된 이야기가 담겨 있죠. 다윗은 자신을 다시 왕으로 옹립하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성경은 '온 이스라엘이 하는 말'이라고 표현하고 있죠. 여기서 이스라엘과 유다를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단일 왕국시대 이후 갈라지는 남북의 경계가 이미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죠. 다시 말하면 다윗의 왕위 복귀를 북부 지역인 이스라엘은 원하고 있는데 남부 지역 유다는 미루고 있는 형국인 거죠. 이에 다윗은 유다의 장로들에게 메시지를 보냅니다. 그들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아마도 다윗은 유다의 지원이 없이는 왕으로 복귀를 한다 하더라도 권위가 약화될 것을 두려워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정치적 기반이 바로 유다이기 때문이죠. 그는 유다 출신이며 그의 첫 왕으로서의 시작이 바로 유다였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유화책으로 아마사를 요압 대신 군대 총사령관에 임명을 합니다. 아시다시피 아마사는 반란군의 군대를 책임졌던 인물이죠. 이런 결정이 옳은가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겠습니다. 정치라는 것이 생물이어서 옳고 그름의 기준을 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죠. 다만 분명한 것은 다윗은 지금 반란군에 대한 잘못을 덮겠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보입니다. 특별히 압살롬은 유다에서 반란을 시작하였고, 유다는 그 중심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패했죠. 이제 다시 다윗이 왕이 된다면 그들의 앞날은 어떻겠습니까? 그래서 불안할 수밖에 없었겠죠. 그런 그들의 불안을 다윗은 잠재울 필요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유다가 다윗에게서 돌아섰을까? 에 주목해야 합니다. 유다의 중심지역은 헤브론이죠. 거기서 다윗의 왕으로서의 길을 시작했습니다. 헤브론의 지도자로 성장한 다윗이 이스라엘 전 지역의 왕이 된 것이죠. 그런데 그런 헤브론이 압살롬이 주도한 반역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다윗을 키우고 세운 그들은 왜 다윗으로부터 돌아섰을까요? 

 

정확히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습니다만 부분적으로 추측은 가능합니다. 이스라엘은 12지파로 나뉘어 있는데 그중 유다는 세력의 크기와는 관계없이 한 지파일 뿐입니다. 나머지 지파의 의견이 전체 비중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셈이죠. 이렇게 통합된 국가를 이끌기 위해서는 다른 의견을 더 따라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더욱이 유다는 다윗의 고향입니다. 그가 전체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고향의 대변자가 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고향이기에 더 두둔할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이것을 역차별이라고 하죠. 어쩌면 고향이니까 이해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을 테죠.

 

이런 경우가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가족들이 그렇습니다. 가족이니까 시간을 더 못 갖고, 가족이니까 말을 더 안 합니다. 당연히 이해해 주겠지, 당연히 넘어가 주겠지, 당연히 내편이겠지 하는 생각이 있는 거죠. 심지어는 가까운 사람이어서 더 무시하고, 가까우니까 함부로 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너무 가까워서, 너무 흔해서, 너무 당연해서 그냥 넘어가는 수가 많죠. 밖에서는 그렇게 친절하고 말도 잘하고 상냥한데 집에만 들어오면 말도 안 하고 성질부리고 틱틱거립니다. 엄마니까 아빠니까 가족이니까 그렇다는 말을 합니다. 아마도 다윗 또한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가족이어서 챙기지 못하기도 했지만 가족이어서 또 소홀하기도 한 것이었죠.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 귀중한 것을 몰랐고, 언제나 내편이라고 생각했으니 신경도 못 썼을지 모릅니다. 그런 중에 가까운 가족들은 서운함과 상처와 아쉬움으로 병들어 갔을지도 모르죠. 그것이 압살롬의 반란으로 이어졌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의 가까운 가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연한 줄 알았던 것도 언젠가는 사라집니다. 그렇게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갔던 부모들도 늙고 언젠간 사라집니다. 영원한 친구는 없어요. 내가 당연하게 여길 가까운 사람도 없습니다. 가까워서 무시하고, 가까워서 신경 안 쓰고, 가까워서 막말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가까운 것이 아니라 낮게 보는 것입니다. 

 

가까운 사람을 소홀히 대하지 마세요. 가까울수록 소중하게 대하세요. 가까울수록 정성을 기울이세요. 가까울수록 말을 조심하시고, 가까울수록 더 사랑하세요. 그렇게 가까운 사람이 되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이 누구나 가능한 일도 아니에요. 나에게 있는 가족은 그들뿐이고, 내가 인생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도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 가까워진 친구가 있다면 그들은 나에게 특별한 사람들이고 귀하게 보내주신 선물들입니다. 그런 이들을 가깝다는 이유로 함부로 대하지 마세요. 언제나 머물 것 같은 친구는 없습니다. 언제나 내편이 돼주는 가족도 없어요. 내가 그들을 무시하고 소홀하면 말입니다. 그러니 지금 내 곁에 있는 이들을 특별히 생각하세요. 소중히 챙기세요. 지금 이런 관계까지 만들어진 것이 특별한 것입니다. 그 특별함을 쉽게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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