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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예레미야묵상

예레미야서묵상 105 - 나의 행동의 결과가 상이 되기도 하고, 벌이 되기도 합니다. 예레미야 44:1~14

예레미야서 44장은 이집트로 간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 있습니다. 내용은 상상하시는 대로입니다. 불순종한 이스라엘이 어떤 결과를 낼지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재앙과 멸망이 그 답이죠. 그 결과가 처참하리만큼 구체적입니다. 전쟁과 기근, 염병이 덮을 것이며, 그로 인한 원망과 저주들이 넘쳐날 것이라는 말씀은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이런 말씀을 듣노라면 사랑이 하나님이 맞나 싶을 정도죠.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착각하는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잘못을 하면 벌을 받는 것이 지당하죠. 이를 권선징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을 가만히 곱씹어보면 내가 한 일에 대한 대가로서 복과 벌이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니까 나는 나의 일을 하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셈이죠. 그러다 보니 내가 한 일에 대한 변명을 하게 됩니다. 잘못을 하고도 이를 잘못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항변하기도 하고, 잘하면 잘하는 대로 자랑을 하기도 하죠. 내가 얼마나 신앙이 좋은지, 좋은 일을 했는지 드러내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상을 주는 주체가 외부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와 하나님이 각각의 주체로 따로 존재합니다. 이것이 당연해 보이죠? 그런데 조금만 더 생각을 해 보자고요.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면 하나님이 왜 복을 주실까요? 우리가 선한 일을 한다고 하나님께 무슨 이득이 있으신가요? 반대로 우리가 악하면 하나님께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단도직입적으로 답을 내자면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좌지우지할 방법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는다고 하나님이 계시고, 우리가 안 믿는다고 하나님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듯 말이죠. 그런데 왜 하나님은 우리의 악함에 대해 그리도 반대하실까요? 선함에는 왜 그리 축복을 약속하시고, 악함에는 그렇게 끔찍한 경고를 내실까요? 그 이유를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비근한 예로 부모가 자식에게 공부를 강조하죠. 왜 그럴까요? 아이가 공부한다고 부모에게 무슨 득이 있을까요? 물론 그런 부모 있죠. 공부 잘하는 자식 두어서 자신이 칭송받고 싶어 하는 부모 말입니다. 자식이 잘되면 자신에게 유익이 돌아올 것이라고 여기는 부모도 있겠죠? 그러나 대부분의 부모가 자식에게 공부를 강조하는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그것이 자식에게 유익한 것을 알기 때문이죠. 자식은 모르는, 그러나 부모는 이미 아는, 그렇게도 싫어하는 공부가 얼마나 인생에 유익을 줄지 알기 때문에 공부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공부 잘해서 부모가 맛난 것 사 주는 것이 공부한 결과의 전부일까요? 공부 안 했다고 혼나는 것이 공부하지 않은 결과의 전부입니까? 아닙니다. 공부를 잘하면 그 공부가 그 아이를 평생 따라다니며 유익을 줍니다. 반대로 공부하지 않은 결과는 그 자체로 그 아이에게 평생 꼬리를 물고 다니죠. 다시 말해서 누군가에 상을 받고, 벌을 받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공부한 자체가 상이 되고, 공부하지 않은 자체가 벌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선함과 악함은 어떨까요? 우리의 순종과 불순종은요? 우리가 순종해서 하나님께 상을 받는다 함은 우리의 순종이 늘 우리의 삶을 아름답고 평안하게 이끄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자체가 우리에게 복이고 상인 셈이죠. 반대로 우리의 불순종은 늘 우리 삶의 발목을 잡습니다. 잘못된 판단, 잘못된 선택, 잘못된 길, 그 자체가 우리에게 고통이고, 짐이 되죠. 그것이 벌입니다. 하나님은 그 벌을 받게 하지 않기 위해 우리에게 강하게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벌을 받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잘못된 선택이 늘 우리에게 씻을 수 없는 벌이 됩니다. 그 벌은 잔혹하죠. 한번 빠져들면 헤어 나오지 못하는 늪과 같습니다. 자신의 세계에 빠지면 아무것도 들리지 않습니다. 자기 고집, 자기 최면에 빠지면 다른 것이 보이지 않아요. 그것이 정말 재앙이고 멸망입니다.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들리지 않습니다. 아무리 권면하고 다독여도 무엇이 옳은지, 누가 사랑을 하는지조차 깨닫지 못합니다. 그것이 전쟁이고 기근이죠. 나의 행동의 결과가 상이 되기도 하고, 벌이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벌, 징계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불순종하면 우리 안에서 그 벌과 징계가 나와요. 주님을 떠나면 우리의 행동에서 전쟁과 기근, 염병과 저주가 나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경고하고 계신 거죠. 우리 안에 강퍅함이 들어오면 그것만큼 지옥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나쁘게 보이고, 모든 것이 짜증이 됩니다. 우리 안에 감사를 잃으면 그것만큼 참혹한 현장이 없어요. 모든 것이 억울하고, 모든 것이 불만입니다. 그보다 더한 벌이 없어요. 주님을 잃으면 무뎌집니다. 무뎌짐이 재앙이에요. 주님을 떠나면 강퍅해집니다. 강퍅함이 벌이예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아집과 고집에 사로잡힙니다. 그 고집이 전쟁이죠. 주의 길은 내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주의 길을 떠나면 내 마음이 강퍅해집니다. 그것이 만고의 진리예요. 그 마음이 나를 복의 길로도 인도하고, 벌의 길로도 인도하죠. 나의 선택 자체가 복과 벌을 가름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우리의 선택이 우리를 인도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품고 선한 마음을 선택한 사람은 선하고 좋은 것만 보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주님을 떠나 강퍅함에 자신을 맡기면 보이는 것은 잘못됨이오, 들리는 것은 욕이며, 말하는 것은 저주뿐일 것입니다. 그렇게 지옥이 펼쳐집니다. 사생결단하고 좋은 것만을 보세요. 사랑만 선택하세요. 긍휼만 품으세요. 아무리 많은 것이 보여도 볼 것을 가르세요. 그러면 정말 좋은 것만 보게 될 것입니다. 사랑을 선택하면 사랑받을 일이 펼쳐지고, 긍휼을 품으면 긍휼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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