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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예레미야묵상

예레미야서묵상 101 -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면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예레미야 42:1-7

오늘 본문을 조금 설명하겠습니다. 성경을 읽어도 한눈에 잘 안 들어오시죠? 이야기로 좀 풀어서 설명하면 좋겠다 싶어 전후 사정을 설명드리겠습니다. 설명이 더 어려우면 안 될 텐데…. 

이스마엘이 그달리야를 죽이고 암몬으로 도주하면서 미스바에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을 끌고 갔습니다. 특별히 공주들을 붙잡아 갔다는 것으로 보아서는 아마도 백성들을 암몬에 팔아넘기려는 속셈이었던 듯합니다.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스마엘은 암몬과의 내통을 통해 자신의 부나 이득을 취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대목이죠. 그런데 이를 눈치챈 요하난이 그들을 추적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구출합니다. 이스마엘은 암몬으로 도망한 상황이죠. 이렇게 상황이 정리되는 듯한데요. 요하난은 이집트로 도망갈 계획을 세우죠. 그가 이집트로 도망하려 한 이유는 바빌로니아가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바빌로니아에 의해 세워진 그달리야가 암살당하고, 주범이었던 이스마엘이 도주한 상태에서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치 옳은 일을 하고도 뒷 일을 감당하기 두려워하는 모습이죠.

그렇게 이집트로 향하던 그들이 게롯김함에서 쉬게 되었습니다. 게롯김함은 ‘김함의 여관’이라는 뜻인데요. 이곳이 베들레헴 근처입니다. 베들레헴과 여관, 뭔가 생각나는 것이 있으신가요? 어떤 학자들은 예수님이 태어난 곳이 이곳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아무튼 그들이 그곳에서 쉬다가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던 모양입니다. 그것은 예레미야에게 찾아가 자신의 길을 하나님께 묻기로 한 것이죠. 그래서 예레미야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구합니다.

자신의 길을 먼저 주님께 묻는 것은 매우 좋은 모습입니다. 더욱이 요하난과 그 일행들은 그 말씀에 순종하겠다고 다짐도 하죠. 지혜로운 사람들은 떠나기 전에 길을 묻습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기 멋대로 가다가 한참을 헤매고 나서야 그때 길을 묻죠. 제가 그렇습니다. 모르는 길을 가면서도 잘 묻지를 않습니다. 나만의 촉을 믿고 가다가 좌충우돌 헤매어 시간을 허비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나서야 길 가던 사람들에게 묻죠. 그럴 바엔 차라리 먼저 묻고 길을 떠나면 좋았으려니만… 우리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해결사로 생각하기 쉬워요. 자신의 뜻대로 다 하다가 문제가 꼬인 실타래처럼 꽉 막히고서야 그제야 하나님께 묻는 경향들이 있습니다. 먼저 그 길을 묻고, 먼저 주님의 뜻을 찾는 것은 믿음의 지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주님의 생각을 읽기 위해 말씀과 묵상을 하는 것이죠.

그런데 오늘 제 눈에 들어온 본문의 말씀은 이것입니다. 

‘열흘이 지난 뒤에’ 

주님의 뜻을 알기 위해 예레미야에게 기도를 부탁합니다. 그들의 요청을 받아들인 예레미야는 기도를 시작하는데요. 그 기간이 열흘이 걸렸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님의 뜻을 구하고 얻는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내가 결단을 하고, 믿음을 세워도 그것이 실현되는 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어제 김형기 집사님 병원 심방을 했습니다. 주님께 맡기고 의지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집사님의 믿음이 느껴졌어요. 그러나 내가 오늘 당장 믿고, 오늘 결단하고, 오늘 순종해도, 그것들의 결과를 얻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고치시겠다고 약속하신 일들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우리가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여전히 고통의 흔적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시간 동안 불안이 엄습할지도 모르죠. 그럼에도 그 시간을 견뎌내야 합니다. 이 기다림의 시간에 아픔의 상처와 흔적을 바라보면 안 됩니다. 그것을 바라보는 순간, 여전히 존재하는 아픔, 여전히 느껴지는 고통이 크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이 기다림의 시간에는 ‘기대’가 필요합니다. 곧 주실 회복, 요동치는 고통이 사라질 그 날을 꿈꾸는 것이 기다림의 시간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신앙은 그 기다림의 시간인지도 몰라요. 우리의 인생이 그 열흘인지도 모릅니다. 그 시간 동안 불안과 공포, 아픔과 상처보다 기대와 소망, 주님의 음성을 기다리는 마음을 갖는 것이 우리의 임무 인지도 몰라요. 조급해하지 마세요. 우리가 소망을 품는 순간, 하나님은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결단을 한순간,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되었습니다. 다만 그 역사를 이루고, 다스림이 임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열흘’을 잘 기다리세요. 그 ‘열흘’ 평안을 지키세요. 그 열흘은 어쩌면 가장 어두운 순간일지도 몰라요. 그러나 그 순간이 새벽이 가장 가까이 다가온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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