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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예레미야묵상

예레미야서묵상 100 - 착한 일이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본질인지도 모릅니다. 예레미야 41:1-18

오늘 본문은 어제 본문의 연속입니다. 요하난의 첩보가 사실로 드러나는 순간이죠. 그달리야가 그렇게 믿었던 이스마엘은 그달리야와 그의 친위부대를 다 죽이고 암몬으로 도주합니다. 그가 암몬 왕의 사주를 받아 행한 짓이었다는 것이 드러난 셈이죠. 여기서 어제 본문에서 이해 못 할 의문이 하나 풀립니다. 그것은 그달리야가 왜 그리 근거도 없이 이스마엘을 믿었나 하는 점이었는데요. 1절에 보니 이스마엘이 왕족이었다고 되어 있네요. 그러니까 왕족이 반역을 하겠느냐? 생각했던 것이겠죠? 아무튼 이스마엘은 그달리야를 죽이는 데 성공합니다. 이렇게 그달리야의 시대는 남유다의 총독이 된 지 몇 개월도 되지 않아서 막을 내립니다.

이런 사건이 왜 벌어졌는지 자세한 내막은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암몬은 패망한 남유다를 점령할 야심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때 왕족으로 남유다 통치의 자리에서 밀린 이스마엘의 마음을 이용했을지도 모르죠. 혹시 돈을 받았거나 아니면 암몬이 남유다를 차지할 때 총독의 자리를 약속받았는지도 모르죠. 그런 비루하고 흑막의 거래 역사는 언제나 더럽습니다. 굳이 이를 묵상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다만 오늘 말씀을 통해 들리는 음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달리야의 모습에서입니다. 

나름 그달리야는 짧은 시간 속에서도 유다 백성들의 인정을 받았던 모양입니다. 많은 이가 그달리야의 주변에 모인 것을 보면 알 수 있죠. 아마도 짧은 시간 동안 그는 비록 바빌로니아의 총독이었지만 유다 백성들의 마음을 잘 다독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존경도 받았던 것 같습니다. 문제는 이런 좋은 일들이 왜 멈추는가? 죠. 왜 좋은 일에는 고난이 많을까요? 왜 착한 사람에게는 나쁜 일들이 더 생기는 것일까요? 이런 의문들이 계속됩니다. 이런 제목의 책도 있죠. [왜 착한 사람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왜 유독 착한 사람들에게 나쁜 일들이 벌어지는지, 올바르게 살려는 사람들에게 왜 시련이 더 많은지… 그래서 더 안타깝고, 혹은 착하게 살면 안 되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있습니다. 그것은 착한 사람이라고 예외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착하게 살겠다는 것은 그만큼 지어야 할 무게가 있다는 말입니다. 다른 이들과 다르게 살겠다는 것은 평범한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그만큼의 용기가 필요하고, 힘이 필요합니다. 착하게 산다고 저절로 세상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착하게 살수록 더 기도해야 하고, 올바르게 살수록 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좋은 생각, 좋은 견해가 힘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좋은 생각, 좋은 견해를 하나님께서 도우시기 때문에 힘이 있는 거죠. 그래서 착하게 살려면 더욱 기도하고, 더욱 믿음 있어야 하고, 더욱 견고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그걸 자꾸 놓치는 것 같아요. 그냥 착하게 살면 자연스럽게 모든 일이 잘될 것이라고 느끼죠. 그러나 착하게 사는 것은 용기입니다. 옳은 일을 하는 것은 사명이고요. 바르게 걷는 데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 힘은 하나님께로부터 흘러나오죠. 그래서 더욱 매달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 좋은 일이 주어졌습니까? 그러면 더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에게 책임이 주어졌고, 해야 할 일이 생겼습니까? 그렇다면 더욱 주님께 매달리라는 신호입니다. 올바른 일을 하고 싶다면 더욱 주님의 지혜가 필요하고요. 착한 일을 해야 한다면 더욱 믿음과 용기가 필요하죠. 어쩌면 착한 일은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이 본질인지도 모르겠네요. 마지막으로 축복의 말씀으로 마칩니다.

빌 1:6    선한 일을 여러분 가운데서 시작하신 분께서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그 일을 완성하시리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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